끝의 온도(외전)

라떼와 아메리카노

by 유월

식은 아메리카노니까 라는 생각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잘못이 컸다. 나는 그가 건넨 뜨거운 핫팩을 잡고 집에 돌아갔을 뿐이고. 냉수 한 번 뿌린 적 없었으니까. 나는 손에 조금의 물집이 잡혔다. 조금 흉측히, 조금 따갑게. 찰칵하고 사진으로 남겨보았지만, 꽤나 추한 것도 같았다. 결국은 손의 통증에 그런 잡다한 생각은 비워버렸다. 어쩌면 커피는 꽤나 뜨거웠구나 하는 생각만이 내 머리에 남았다. 물집을 낫게 해 줄 사람은 없다. 시간이 지나길 바랄 뿐이었고, 이 외로움을 이겨내야만 했다.

그에겐 연락이 오지 않았다. 물집이 잡혔다고 연락을 보내볼까 하다가 결국 보내지 않았다. 보내지 않은 건 알량한 자존심이 아니었다. 일말의 죄책감, 그에게 부채감을 안겨서 뭐 하나라는 그런 마음이었다. 보낸다고 한들 식은 마음을 달굴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결국 비겁한 자의 변명이었지만.

가끔은 그런 생각을 했다. 봄에 너를 조금 더 사랑하거나, 덜 사랑했다면 어땠을까. 너무 사랑해 그를 질리게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아니면 너무나도 사랑이 부족해 그가 내 사랑을 알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떠올렸다. 결국 답은 나오지 않았다. 우리의 계절은 끝이 났으니까.
난 결국 날 찾던 그를 버렸다. 그는 내게 화 한 번 제대로 낸 적 없었다는 그런 사실이 나를 아프게 만들 뿐이었다. 어쩌면 그 어떤 고통보다도 깊은 상처로 남았다.

겨울이 정점에 서, 나는 겨울의 끝을 기다린다. 그래 어쩌면 우리가 더 치열하게 사랑했다면 결말이 이보다 못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모든 계절이 아름다운 건 그런 이유라고 생각했다. 봄이 좋대도, 무한한 봄은 너무도 들뜨고. 여름은 너무도 뜨거워 멀미할 테고. 가을이 오래된다면 사계의 아름다운 빛을 보지 못했겠지... 겨울이 계속된다면, 그래. 겨울이 계속된다면 너무나도 시리게 아플 것 같다. 무한한 겨울을 떠올리는 건 물집 잡힌 손의 고통을 떠올리는 것과 같았다. 역시나 봄의 반복이 나을까. 하기야 결국 내가 떠올리는 것은 모든 계절이 끝이 있기에 아름다웠다는 것이었지만.

카페에 가서 따뜻한 라떼를 시킨다. 오늘도 그려진 하트 모양의 아트.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닌데 마셔도 사라지지 않는 이 아트. 뜨거운 목 넘김, 은은히 번져오는 그 온기.
너는 어떤 마음으로 그날 이 커피를 마셨니. 마지막까지 그 한 잔을 비웠는지. 아니면 식어버릴 잔을 기다리며 머물렀는지. 나처럼 당황하며 그 잔을 쏟아버렸는지. 라떼는 뜨겁다, 어쩌면 영원히 뜨거울 것처럼. 끝나는 계절은 없는 것처럼. 우리의 끝을 대답하지 않을 것처럼.

만약에 말이야, 그날 커피를 쏟지 않았다면. 너는 라떼를 비웠을까. 물집 잡힌 두 손으로 커피잔을 쥔다. 이번엔 쏟지 못할 것 같아. 쉽게 식지 않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