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온도는 햇살

미지근한 온도

by 유월

햇살이 제법 따사롭다. 추운 날씨를 이겨내고, 흐릿한 날을 이겨내고 봄이 와버렸다. 개구리야 일어나라, 재촉하다 보니 내 눈꺼풀 무거운 건 보지도 못한 봄. 나 몰래 불쑥 온 봄에 조금, 들떠 웃음이 나버렸을지도.

손을 들어 햇볕을 맞는다. 따사로와. 햇볕을 쬐는 고양이마냥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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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나? 그날 민들레는 말이야."

"오랜 사랑을 담았지."

무의미한 말을 주고받았다. 봄이다, 이런 말에도 들뜨는 마음은 봄이다 떠올렸다.
내가 생각하건대 너는 제법 사랑을 닮았고, 사랑은 봄을 닮았다. 네 이름은 몹시 사랑을 담았고, 봄은 사랑하기 좋았다. 달디 단 이름을 불렀다. 너는 그런 존재가 되었다.

나는 비단 엉망인 사람이었다. 일평생 누군가 날 키워낼 수 없으리라 떠올렸다. 꽃들은 곱디고운데, 나는 너무 추하니까. 봄이 오면 나 혼자 잿빛 옷을 입고 나돌기 일수여서. 누군가 날 찾아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세상은 봄을 좋아하니까. 아름답디, 고운 걸 찾고, 찬미하니까. 나는 그 속이 잿빛 무언가이고, 누구도 날 발견할 수도 찾을 수도 없으리라 생각했다.

너는 민들레를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남들은 노랗게 물든 단정한 민들레를 사랑하였지만. 너는 하얗게 변한 자유로운 민들레를 애정하였다.
남들 다 지나치고 말, 하얀 민들레 한송이를 기어코 찾아 후 바람을 불었다. 날아가는 순간을 네 눈에 가득히 채웠다. 너는 내 자유로움이 민들레 같다고 했지만. 영원히 머물 수 없는 것이 꼭 으레 모두의 사랑처럼 보이기도 했다.

"손을 내밀어."

민들레 홀씨 겨우 하나? 비웃으려다가 진지한 네 표정에 웃음이 터진다.

"민들레를 간직하려고?"

"그럴 리가. 사랑은 그렇게 가두는 것이 아니지. 그 자체를 사랑하는 거야."

"날 날아오르게 하려고?"

"그게 사랑이지."

너는 날 붙잡지 않아. 민들레에 마음을 날려. 근데 그게 두렵거나, 조급하지 않아.

"손을 잡아줘."

맞닿은 손은 뜨겁기보단, 미지근한 온도를 안긴다. 꽉 쥐지 않고 편히 잡은 손. 깍지 대신 느슨히 잡은 그 안정감. 이 온도는 꼭 햇살 같아. 햇살을 담은 손이 떠올랐다.

날아오르는 민들레 홀씨를 잡으려던 순간은 어땠는지. 너무 달궈 익어버리지 않았는지. 지금은 어떤가. 가벼운디 가볍지 못하고. 은은한 것이 따사로워서. 이 온도는 뭐랄까. 제법 햇살 같다고 여겼다.

"누군가는 우리 보고 미쳤다고 할지도 몰라. 이런 게 사랑이냐고 되물어볼지도 모르겠어."

"봄은 그래, 모두 제각기 온도를 찾아. 누군가는 코트를, 누군가는 반팔을 입을 수도 있겠지. 근데, 여름이 오잖아? 그러면 모두 얇디얇은 반팔을 입을 거야."

너는 자신만만해서. 맞닿은 손이 조금 더 뜨거웠을지 모른다. 우린 아직 봄이야, 이 온도는 햇살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