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상담을 종결해도 괜찮아요

by 유월

여전히 집안일을 미루고, 우울증세는 여전했지만. 그래도 요즘은 삶의 여유를 즐기는 순간이 늘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상담의 종결이 머지않았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울증이 지금처럼 심하지 않았을 때 나는 산책하며 노래 듣기를 좋아했고. 서점에 가서 맘에 드는 책을 읽었다. 가끔은 카페에 가서 예쁜 디저트 먹기를 좋아했다. 한동안은 집밖으로 나가는 것이 두려워 외출을 하지 않았지만. 요즘은 다시 산책을 시작했다. 가끔 길거리에 고양이를 보고 웃기도 했으며. 남들 눈에 꽤나 밝은 사람처럼 비쳤다. 혼자서도 너무 잘 지내는 사람이 되어있었고. 나는 그 기대에 부응할 책임감이 있었다.

상담 회기가 10회기를 훌쩍 넘어, 종결과 연장을 고민하던 차에. 더 이상 호전은 없다는 판단하에 상담 종결을 고민했다. 상담을 받는다고 해도 더 나아지진 못할 것 같았다. 상담사분의 역량 문제가 아닌 내 문제였다. 이 정도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고민할 시간을 주시며 MMPI(다면적 인성검사) 재검사를 요청해 주셨다. 그걸 재검을 하며 과거엔 어떤 답변을 했는지 떠올렸지만, 막상 검사를 하니 결과가 좋을 거라는 생각은 잘 들지 않았다.

다음주가 되어 상담 종결에 대한 의사를 밝혔다. 상담사분은 내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걸어오셨다.

"나아지셨다고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예요? 어떤 이유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요즘은 그래도 노래를 자주 들어요. 가끔 산책도 가고요.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 생겼어요."

"그럼 다른 순간에는요? 우울감은 그대로 느끼시는 것 같은데..."

"사실 우울감이 사라지진 않았어요. 행복한 순간 뒤엔 꼭 죽을 것 같은 우울감이 따라와요. 그래도 견딜만해요. 행복한 순간이 있으니까."

상담사분은 그런 이야기를 하셨다. 조금도 나아지지 못했다고. 오히려 악화된 모양새를 보인다고. 간극이 커지며 더 큰 상실감과 우울감을 보이는 것 같다고. MMPI 결과 역시 나아진 점이 없다는 것이었다. 불안척도가 상승했으며, 우울대신 만성 우울 점수가 높다는 것이 이유였다. 본인을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질문, 나는 더 이상 대답할 수가 없었다.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자체가 '거짓'이라는 점이 나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나는 스스로를 속이며 버텼음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나아지는 것은 무엇일까. 오히려 만성우울이 높아져 우울감을 우울감이라 느끼지도 못하는 내가 싫어서. 이렇게 오래 상담을 받아도 나아지지 못하는 한심한 내가. 이보다 더 악화되고 있다면 이보다 심한 절망은 내게 또 어떤 상처로 다가올지. 감이 오지 않았다. 심장이 차게 식는 기분이 들었다. 결국 상담은 종결하지 못했다.
이런 나를 두고 종결하는 것은 상담사의 도의가 아니다는 답변이었다.

그날도 똑같이 무선 이어폰을 끼고 길을 걸었다. 좀 걸었다. 난 걷는 걸 좋아하니까. 고양이를 보고 사진도 찍고. 좋아하는 노래 가사를 음미했다. 나 괜찮은데, 정말 괜찮은데. 되뇌며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차를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차에 치여 죽고 싶어. 더 이상 살아갈 자신이 없어.'

울컥 눈물이 나왔다. 왜 난 괜찮지 못하지. 언제쯤 나아질 수 있지. 행복은 깊은 우울로 바뀌고. 걸음은 무겁고. 그렇구나, 난 조금도 나아지지 못했구나. 나의 우울을 인정하지도. 악화된 사실을 받아들이지도 못하는구나.

상담을 종결하고 싶던 것 오만이었다. 아직 끝낼 때가 아니라는 걸, 그날 차가 말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