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네가 사랑하는 나의 모습

by 유월

"넌 참 밝다, 같이 있으면 나도 밝아져. 긍정적인 것 같아."

지겹도록 들은 말이었다. 들을 때마다 황당함을 감출 수 없는 말이기도 했다. 긍정, 밝음 그 무엇도 나의 단어가 아니었는데 곧잘 그런 말을 하다니. 그쯤에는 비웃음도 아닌 무기력함을 느끼곤 했다.

나는 감정에 빠지면 쉽게 헤어 나오지 못했다. 일이 한 번 꼬이면 그 일로 하루 종일 스트레스받는 사람이었다. 일정이 꼬이면 내 인생은 이모양이라고 자책하고 화가 났다. 부정적인 사건이 생기면 그 사건으로 스트레스받느라 다른 일도 부정적으로 여겨졌다. 그런 일들에서 헤어 나오기도 쉽지 않았다. 혼자 있을 때 이런 증상은 더 격해졌다.

'나는 매번 이따위로 꼬여선... 오늘 나오지 말 걸 그랬어. 이따위로 시간을 보낼 거면서 시간낭비 따위나 하고.'

감정이 주체가 안 되어 무언갈 부셔트리고 싶었고. 짓밟고 싶었다. 손 옆의 거스러미를 하루 종일 뜯었고. 앞머리를 손으로 수차례 넘기며 표정이 굳어지길 반복했다. 머리는 산발이 되고 씩씩 거리는 감정에 표정도 곱지 못했다. 내가 보기에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내 검사결과에서 특이한 것은 우울, 대인관계 기피가 심하면서도, 공감 능력이 높다는 것이었다. 타인을 도와주고 싶은 이타심의 점수도 상당히 높았다. 사회성 분야가 뛰어나다고 보였다. 그 안에서 느끼는 스트레스와 별개로 그랬다.
그러다 보니 그런 감정에 빠지더라도 타인에게 티를 잘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런 성향보다, 남 눈치를 보고 비위를 맞추는 성격이 더 두드러졌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상대가 짜증을 내면 그걸 맞춰주곤 했다. 그러곤 집에 가서 한참을 분노하고 짜증을 내기 일쑤였지만.

정서적 어려움이 있더라도 사랑에 있어선 그러고 싶지 않았다. 과거 연애 실패에서 뼈저리게 배운 일이었다. 그래서 애써 더 밝은 척해내고 있다 여겨지기도 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저런 말들에 질려 나를 숨기기 바빴다. 힘들어도 힘들지 않은 척. 화가 나도 화나지 않은 척. 그렇게 감정을 숨기고, 속이니. 혼자 있을 때 그런 성향이 격해졌다.
연애는 온전한 나의 모습으로 해야 하는데 나는 늘 거짓된 모습으로 상대를 맞이했다. 상대가 그런 날 사랑해 줄 때면 숨이 막혔다. 내 실체를 알아도 사랑할까? 네가 사랑하는 밝고, 긍정적인 나는 없다고 이야기해도 당당히 사랑을 이야기할까? 하는 생각이 날 갉아먹었다. 그러다 보니 상대가 조금이라도 짜증을 내면 욱하고 감정이 치솟았다.

'나는 나를 숨기고 사랑을 하는데 왜 그리 감정적으로 구는 거지?'

어느 날 주체를 못 하고 터진 감정에 상대가 당황하는 날에는 극도로 스트레스받아야만 했다. 그냥 혼자 있게 해 달라는 부탁에 돌아오는 답변은"너답지 않게 왜 그래..."라는 말이었고. 그것이 날 가장 비참하게 만들었다. 나다운 나. 네가 사랑하는 나. 그 둘은 어떤 것도 닮은 점이 없었다. 나다운 건 무엇일까. 감정을 숨기고, 비위나 맞추는 그런 사람? 아니면 폭력적이고 충동적인 생각이 드는 나?

너는 날 사랑하지 않는다. 나도 날 사랑해주지 못할 널 사랑하지 않는다. 마지막까지도 난 거짓된 말로 이별을 고하고.

너처럼 온전히 날, 사랑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