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
"3층 호출, 이만 간다."
"네, 알겠습니다."
아까부터 부장님 무전기는 쉴 틈이 없긴 했다. 치지직 소리가 계속 들렸으니 3층도 무척이나 바쁜 것 같았다. 하물며 5층에서 웨딩을 마치면, 다 3층 결혼식 뷔페로 내려가 식사를 하니 그 인파는 더욱 많을 것이다. 간혹 가다 식은 보지 않고, 뷔페만 먹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던 것 같았다. 문득 준 생각이 났다. 준도 무척 바쁘겠지 하는 그런 생각이었다.
예전에 준이 무전기 이야기를 해줬던 것이 기억났다. 캡틴, 부장, 준, 고참, 예비로 빼두며 사용하고 있으며. 자신이 무전기를 받은 건 대단한 거라는 자랑 아닌 자랑이었다. 일이 늘어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지만 준은 꽤나 자랑스러워 보여서 말을 줄였던 기억이 났다. 무전기를 받는다고 돈을 더 주는 건 아니었지만. 돈을 많이 받는 사람들은 무전기를 차는 것도 같았다. 준은 그게 맘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무전기의 무게, 책임감은 어떤 것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벌써 준도 출근했을 시간인데. 5층에 와 인사를 하지 않은 걸 보니 지각을 한 건 아닐지 걱정이 되었다. 준은 어제 문자로 꼭 5층에 올라오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그다지 모범적인 알바생의 모습을 아닐 테지만. 부장님이 자리를 비우시곤 힐끔힐끔 준이 오진 않을까 괜스레 기대를 품었다.
'하긴 오고 싶다고 5층을 막 오나.'
입사를 확정 짓기 전 준은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이 자리에 오고 싶어 하는 애들이 많았는데 부장님이 다 거절했단 그런 이야기. 문득 그런 생각이 들긴 했다. 왜 하필 아무 경력도 없는 나였는지.
부장님은 날 본 적이 없었다. 끽해봐야 준의 프로필에 있는 커플 사진, 그 작은 사진이 전부였다. 인상을 보기에 사진이 그리 큰 것도 아니었을 텐데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상하긴 하지. 나라면 굳이 프로필 사진 하나로 채용을 결정하진 않을 텐데.'
생각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엘리베이터를 주시했다. 이런 생각을 해봐야 내 자리엔 변함이 없을 테니까. 잡생각은 여기서 멈춰야겠단 생각이었다.
"어, 준이다."
그때 멀리서 준의 모습이 보였다. 준은 대게 웃는 얼굴로 날 맞이했는데 오늘은 전처럼 활짝 웃는 얼굴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럼에도 준은 다정하게 말을 건넸다.
"밥 안 먹었지, 어제도 밥 못 먹었잖아."
"여기까진 무슨 일이야! 어 아직 못 먹었어. 원래 밥시간을 줘?"
"오늘 웨딩 비어있잖아. 이럴 땐 밥시간 줄 때도 있어."
"진짜? 어디서 먹는데?"
어제는 긴장하느라 밥을 못 먹은지도 몰랐는데. 밥 이야기가 나오니 배가 고픈 것도 같았다. 생각해 보니 빡빡하게 차있던 어제의 웨딩 일정과 달리 오늘은 여유로운 듯 보였다. 1시의 웨딩이 공석이니 12시가 좀 지난 지금은 한산한 듯 보였다. 12시 웨딩에 하객이 정말 많았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
"원랜 직원 식당이 있는데. 넌 5층 직원이라 해당은 없어. 근데..."
"근데?"
"부장이, 오늘 뷔페 먹이라고 했어"
"뷔페?"
"응, 3층 내려와서 한 접시 원하는 걸로 받아가. 부장이 너 진짜 맘에 들었나 보다. 이런 건 처음 보네."
준은 손짓하며 나를 불렀다. 자신을 따라오라는 뜻이었다. 나는 다급히 말했다.
"그러면, 화... 화장실만 얼른 다녀와도 될까?"
생각해 보니 오늘 화장실도 간 적이 없었다. 어제도 퇴근하고 나서야 겨우 갔었지. 오늘은 사람답게 기본 욕구는 채울 수 있는 하루가 되겠구나. 기쁜 기분이 들었다.
-
준은 따라 내려간 3층은 생각보다 무척 넓었다. 내가 응대한 모든 고객님들이 식사를 하고 계셨다. 이 넓은 홀을 가득 채우는데, 나는 어디서 밥을 먹으라는 거지 하는 생각에 준을 빤히 바라보았다. 준도 그런 시선을 느꼈는지 이내 손 끝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물론 너가 먹는 곳은 저긴 아니고. 저기 불 꺼진 곳. 아직 세팅 안 된 홀에서 먹으면 돼. 진짜 아무거나 다 떠서 먹어도 되니까. 30분 정도 식사하고 올라가면 돼."
"진짜? 뷔페는 너무 낯설어서."
"긴장할 거 없어. 부장이 허락해 준 거야."
준은 익숙한 듯 그릇은 내게 건네며, 대충 어디에 어떤 음식이 있는지 설명해 주었다. 그것을 이해하기보단 내 발이 닿는 대로 움직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때마침 준의 무전기에 신호가 들어왔다. 나는 재빨리 준을 등 떠밀었다.
"고마워, 바쁠 텐데. 얼른 들어가!"
"그래, 그래. 더 챙겨줘야 하는데. 맛있는 거 먹고 복귀해!"
"고마워."
그릇을 손으로 꽉 쥐었다. 뭘 먹지 행복한 고민의 시작이었다.
시간이 촉박하니 초밥 코너로 직행했다. 사실 초밥은 두 종류를 제외하고 먹어본 적이 없었다. 언니가 뷔페를 사줬울 때에도 익숙하지 않은 건 담지 못했다. 나는 살며 계란초밥, 새우 초밥이 아니면 먹어본 적이 없었다.
고민 끝에 늘 먹던 새우와 계란을 두 개씩 담았다. 스스로 조금 웃겼지만 익숙한 게 좋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맛있는 건 잔뜩인데, 아는 것이 없으니 디저트 코너로 자리를 옮겼다. 갓 구운 애플파이와 브라우니가 보였다. 저걸 먹어야지 하는 생각에 두어 개를 담았다. 목이 막힐까 걱정되니 음료수도 한 잔. 이만하면 30분 동안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두운 구석에 자리를 잡고 한입을 욱여넣었다. 비싼 뷔페는 다르긴 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뷔페 음식은 고급지구나 하는 그런 저렴한 생각이었다. 나는 시야를 홀에 두고 있었기에 남몰래 3층 직원들을 훔쳐보게 되었다.
'그릇을 한 번에 대여섯 개는 드는구나.'
체구가 작고 여린 여자직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와 비슷한 체격인데도 그릇을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정신없이 돌아다니며 물을 따라주었고, 몸짓은 아주 재빨랐다. 남자직원들은 하나의 서커스를 보는 것과 같았다. 몇 십 개의 그릇을 나르는 모습을 보니 문득 내 모습과 너무 다르단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오래 일한 준은 더 대단한 묘기를 보일 것 같았다.
'근데 준은 어디에 있는 거지?'
준은 항상 중요한 일을 맡았단 이야기를 하곤 했다. 일명 '카트'라고 불리는 업무였다. 그 일은 몹시 어렵고,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그릇을 들고 치우는 이들을 따라가다 보니 그제야 준이 보였다.
준을 보고 손을 뻗으려다 다시금 고개를 내리고 밥을 욱여넣었다. 그냥 보지 않는 편이 나을 것도 같았다. 준이 말한 중요한 일은, 생각보다 더 힘든 일처럼 보였다.
준은 수많은 그릇들을 모아 음식물을 털어냈으며. 그릇을 쌓다 몸 가까이 쏟아내기를 반복했다. 밀려오는 그릇에 정신없이 움직이는데도 직원들이 주는 그릇은 쌓여가기만 했다. 준이 어제 나를 밀어낸 이유가 저거였구나. 보는 데도 비위가 상하는 기분이 들었다. 준은 얼마나 힘들까.
그 뒤론 고개를 내리 박고, 밥을 욱여넣었다. 달달한 애플파이도, 브라우니도 음료수도 그다지 달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곤 준이 끄는 카트에 몰래 넣어두었다. 그냥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내가 전할 수 있는 유일한 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