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라고 대답해 - 3

Ep2

by 유월

'더부룩해'

아무래도 욱여넣은 디저트들이 체한 것도 같았다. 맛을 느끼기도 전에 입을 벌려 음식을 밀어 넣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식사는 십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한 시간을 준대도 더 먹을 수 없었다.

3층에서 나오기 직전, 내 또래 직원들이 수군거리는 걸 보았다. 자세하게 듣진 못했지만, 언뜻 5층 초짜라는 말을 들었던 것 같았다. 5층 알바생은 나뿐이니, 내 이야기인 것이 분명했다. 그들의 표정을 떠올렸을 때 좋은 이야기도 아닌 것 같았다. 울렁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우르르 쏟아져내리던 음식물들이 생각났다.

'아, 토할 것 같다.'

분수에도 안 맞는 뷔페로 배를 채운 게 문제였던 걸까. 체기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블리스 웨딩홀입니다."

결국, 또 반복되는 음성. 그래 생각은 내게 사치였다. 체하더라도 뷔페값을 해야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
3시가 지나고 오늘은 대충 눈치를 보다 조심조심 다리를 두들겼다. 어제보단 빠른 퇴근이었다.
내려가 정산실을 바라보니 직원분은 근무 종이가 없다며 3층에 올라가 받아오란 말씀을 전하셨다. 일찍 퇴근한 보람이 없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대답은 늘 먼저 나갔지만.

"네, 금방 가지고 내려오겠습니다."

쭈뼛쭈뼛 3층에 서있자 부장님이 먼저 아는 체를 해주셨다. 늘 한결같아 보이던 부장님이었지만 지금은 좀 헝클어진 것 같기도 했다.

"어, 벌써 퇴근?"
"네, 3시 마치고 내려왔어요. 정산실에서 근무 종이를 가지고 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게 어디에 있을까요?"
"3시에 가게? 원하면 4시에 가도 되는데."

내 질문은 가벼이 무시하고, 본인의 말을 하시는 부장님을 보곤 헛웃음이 나왔다. 퇴근이 3시인데 날 잡아두려는 연유가 무엇인지 정말 물어보고 싶었다.

"오늘은 3시 웨딩이 마지막 아닌가요?"
"응, 그렇지. 원하면 뷔페에서 일해도 된다는 거야. 오늘 바쁘거든."
"아..."

문득 수군거리던 직원들과, 준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난 비위가 좋지 않았다. 이렇게 갑작스레 뷔페에서 일하리란 생각도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퇴근을 앞두고 추가근무라니 달갑지 않았다. 그때 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
"지금 퇴근해?"

준은 옷이 엉망이 되어 그릇을 정리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도와달란 눈으로 준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런 바람이 통한 것인지 준은 이내 그릇 정리를 마치고 내 앞으로 걸어왔다.

"5층, 추가근무 시키시려고요?"
"돈 더 벌고 좋잖냐. 너랑 같이 일하면 되겠네."
"아 뭐 그렇죠."

아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에 준을 다시금 빤히 쳐다보았다. 준은 영문을 모르겠단 눈으로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준은 내 마음을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내가 식사를 언제 마쳤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처럼 굴었다. 속은 여전히 더부룩하고 체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고민 끝에 말을 더듬었다.

"저, 저... 오늘은 3시에 퇴근하겠습니다. 부모님께 3시에 퇴근한다고 말씀드려서."
"그래? 돈 더 안 벌어도 되겠어? 돈 벌어오는 딸을 더 좋아하실 텐데?"

또 호탕하게 하하 웃는 부장님을 보니 더 체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애써 웃으며 종이를 찾았다.

"걱정하실 것 같아서요. 첫 주부터 더 일한다고 하면... 종이 위치만 말씀해 주시면 제가 챙겨 내려가겠습니다."
"그래, 그럼 가~ 다음 주엔 연장 근무 생각해 보고."

부장님은 서랍에서 근무 일지 종이를 꺼내 들더니 가슴팍에 탁 던졌다. 나한테 지금 짜증 내는 건가 하는 생각에 불쾌했지만 다시금 애써 웃음을 보였다.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부장님은 대충 고개를 까딱하며 인사를 생략했고. 준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내게 손을 흔들었다. 어서 3층을 벗어나고 싶은 기분이었다.

정산실에 도착해, 돈을 받아 나왔다. 근무시간이 줄어, 어제보다 돈이 적었다. 부장님 말씀대로 연장근무를 했다면 돈을 많이 벌었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없었다.
준의 낯선 표정이 뇌리에 남았다. 준은 내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준과 같은 곳에 일하는데 오히려 멀어진 기분이 들었다. 준을 기다렸다가 대화를 나눠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
의자에 앉아 준을 기다렸다. 4시가 되자 나와 비슷한 차림새의 사람들이 담배를 물고 우르르 문밖으로 몰려들었다. 매캐한 담배향이 진동하는 것 같았다.
뷔페는 얼굴 보고 뽑는 경우도 있다던데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았다. 다들 제법 키가 크고 훤칠한 용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준을 기다리는데 키 큰 어떤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어 5층이시죠?"
"네?"
"5층 새로 오신 분 아니에요?"
"아, 네. 맞아요. 혹시 누구신지..."
"저 3층에서 근무하는 사람이에요."

대충 얼버무리며 대화를 이어가자 준이 나와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준은 구겨진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형."
"어, 준아. 5층 인사드리고 있었어."
"담배 피우러 안 가세요?"
"가지~ 이따 보자?"
"네, 형."

준은 무언가 주머니에 급히 넣는 것도 같았지만. 이내 나를 보고 차가운 표정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왜 퇴근을 하지 않고 여기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것이냔 짜증 아닌 짜증이었다.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니까, 여기서 왜 이러고 있어? 퇴근은 3시에 했잖아."
"난, 너 표정이 안 좋아서..."
"저 형이랑은 왜 대화하고 있던 건데?"
"대화가 아니라, 저분이 말을 거셔서..."
"그럴 거면 4시에 퇴근하지."
"준아, 나 지금 한 마디도 못했어."

준의 말을 조금도 따라잡을 수 없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내뱉는 준을 보니 욱하는 마음에 가볍게 툭 밀쳤다. 준은 또 한숨을 푹 내쉬더니 머리를 털어 넘겼다.

"아까도 그래. 그냥 네네, 하는 게 어려워?"
"뭐라고?"

나는 당황스러움을 감출 새가 없었다. 방금까진 준과 같은 곳에 서있는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일 하는 거 어렵지도 않잖아. 1시간 더 일하면 나랑도 일할 수 있고."
"준아, 너 지금 평소답지 않다. 나 그만 이야기하고 싶어."
"이해가 안 되어서 그래. 부장이 가란다고 진짜 가? 부장 원래 성격 이상하다고 했잖아."

나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준을 노려보듯 쳐다봤다. 울컥 눈물이 차오르는 것도 같았다. 나는 그저 준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을 뿐이었다. 이런 설교나, 잔소리가 아니라.

"나, 오늘 힘들었어. 너한테... 부장님이나 하실 법한 말 들으려고 여기 있던 거 아니야."

준을 쳐다보고 싶지 않아서 고개를 떨궜다. 어쩌면 목소리가 조금 떨리는 것도 같았다.

"네라고 대답하라고? 어떻게 그런..."

준은 당황한 듯하더니 대충 내 어깨를 토닥이려 들었다. 불쾌하고 매캐한 향기가 날 덮는 것도 같았다. 나도 모르게 기침을 내뱉고 싶었다. 준의 터치가 그렇게 불쾌한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준의 손을 쳐냈다.

"내가 괜한 짓을 했다. 갈게."
"아니, 잠깐..."

'네네라고 대답하라고?'


조금 화가 났다. 네네 하며 비굴하게 대답하라는 것이. 무시받고 싶지 않았는데. 어쩌면 난 누구보다 무시받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준을 밀쳐내고 뒤돌아 나왔다. 나는 비겁하게 돈을 벌지 않았다. 아니, 비겁하겐 돈을 벌고 싶지 않았다. 그 돈이 고작 5만 원이 되지 못하더라도. 눈물을 꾹 참았다. 아직 울 때가 아니다. 체기가 가라앉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구역질을 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