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라고 대답해 - 4

Ep2

by 유월

'우습지도 않지.'

집 가는 버스 올라탄 뒤 창문을 바라보며 속이 진정되길 기대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속은 나아지지 않았다. 진상들 때문이라기에도 부족했고, 부장님의 무례한 태도 때문이라고 하기에도 부족했다. 믿었던 준의 말? 그것도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정답은 아닌 것 같았다.

스스로는 그런 결론을 냈다. '분수에 맞지 않은 식사를 급히 해낸 것' 그 외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결국 한 정거장을 남기고 하차를 택했다. 나는 그 무엇도 삼켜내지 못했다.

-
입을 헹구어내고, 거울 앞에 서 낯선 얼굴을 바라보았다. 화장은 다 뜨고, 붉게 충혈된 눈. 머리마저 다 헝클어진 내 모습은 볼품없어 보였다. 이 모습은 교복에 어울리지 않는단 생각을 했다. 전혀 학생답지 못하다고. 그게 왜인지 날 울적하게 만들었다.

어릴 때부터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순종적인 아이라던지, 말을 잘 듣는다던지. 어릴 땐 그런 말들이 참 좋게 들렸던 것 같은데. 오늘은 그런 말이 기시감이 드는 것도 같았다. 다시금 입을 우글우글 헹구어 뱉어냈다.
무심코 핸드폰을 확인하니 알림창에 연락이 두통 와있었다. 하나는 예상했던 대로 준의 연락이었고. 하나는 처음 보는 이름이었다. 신경질적으로 준의 알림은 손으로 밀어버리고. 낯선 이름의 연락을 확인해 봤다. 그의 연락은 장황한 듯 간결했다.

- 아까 제대로 인사를 못 드렸네요. 3층 오신 게 반가워서 인사드린다는 게... 저는 이도훈입니다, 3층 캡틴을 맡고 있어요. 편하실 대로 불러주시면 돼요. 다음 주에 기회 되면 봐요.-

"뭘까, 이런 연락은."

캡틴이라면 준이 말하던 중요한 사람일 텐데. 굳이 나한테까지 연락을 하다니. 사회생활은 알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결국 부장님처럼 중요한 사람이라면 무시할 순 없겠지. 한숨을 깊이 내쉬며 답장을 써 내려갔다.

"네, 안녕하세요. 5층에서 근무하게 된..."

아차 하고, 나도 모르게 작성해 낸 '네'를 지웠다. 더 이상 '네'라고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이러한 행동은 준에 대한 반발심에 가까웠지만 의식하지 않으려 애썼다. 막상 지워내니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도 같았지만, 네라고 도저히 적고 싶지가 않았다.
쉽사리 보내지 못하고 수정을 거듭하다 문득 그의 프로필을 눌러보았다. 익숙한 이 느낌은 뭘까. 그의 프로필의 사진 속 남자는 왜인지 낯이 익었다. 머릿속으로 그 얼굴을 계속 그렸다. 스쳐 지나간 누군가가 있었던 것 같은데. 하얀 얼굴의 날씬한 체격의 사람을 계속해 떠올리다 보니 끝내 기억을 되살려냈다.

'아까 인사한 그 멀끔한 사람'

준이 아까 '형'이라 부르던 그 사람인듯했다. 잠시 마주쳤지만 생생히 기억했다.

이도훈, 캡틴은 잊기 어려운 특징을 더러 갖고 있었다. 그는 무척 잘생긴 용모를 갖췄을 뿐만 아니라, 생글생글 웃는 표정을 장착한 사람이었다.

그는 그때도 생긋 웃으며 말을 걸어왔었다. 준이 제지한 터에 잠시 까먹었지만, 강렬한 첫인상이었다. 캡틴은 피부가 제법 하얗고, 곱상하게 생겼기에 그 당시에도 문득 잘생긴 사람이구나 떠올렸던 것 같다. 하기야 그 당시에는 외모보다야 오지랖이란 생각에 집중했지만. 식사 한 번에 인사를 건네오고, 카톡까지 보내오다니. 근무 일지에 연락처를 적어뒀던 것 같지만... 그래도 이건 오지랖이 맞았다. 물론 직장상사한테 이런 걸로 질책하고 들수는 없었다.


캡틴이란 직책에, 이미 얼굴까지 본 사이라면 답변을 미룰 순 없다. 고심 끝에 답변을 적어내기 시작했다. 준에겐 어떤 답장도 보내지 않았지만. 아니 오늘은 준에게 답장을 보낼 의지조차 없지만.

- 안녕하세요, 먼저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 적응 중이라 직원분들 이름과 직책을 미처 외우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다음 주에 뵈면 캡틴께 먼저 인사드리겠습니다. -

비틀비틀 걸어 집으로 걸어갔다. 아무래도 게워내고 나니 속이 편해진 것도 같았다. 속이 편해지니 다리가 아파와 느릿느릿 집으로 향했다. 그때 다시금 진동이 울렸다. 캡틴의 연락이었다.

- 그렇게까지 예의 차릴 필요 없어요. 갑자기 연락드려서 당황했을 텐데. 친해지려고 연락드린 거예요. 인사는 제가 먼저 할게요. 수고했어요. 담주에 봐요 -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수고했단 이야기는 처음 들은 것 같은데.
여기서 답장을 더 해야 하나 고민을 하다 답장을 하지 않았다. 이런 연락엔 어떻게 답장을 해야 하는지 학교에선 알려주지 않는데. 고등학교 졸업도 하지 못한 내가 모르는 일들 투성이었다. 사회생활은 공부보다 더 어려운 것 같았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작은 웃음이 나왔다. 생각해 보면 주말간 내게 인사를 해준 사람이 있었나. 버스기사님밖에 없던 것 같은데. 웃음 끝, 프로필을 클릭해 이름을 저장하기로 다짐했다.

'이도훈, 블리스 웨딩홀 캡틴'

성의 없는 저장이었지만, 그게 나쁘지 않았다. 웨딩홀에 출근한 이틀 동안 신랑, 신부의 이름은 수십 개를 보았는데. 직원들 이름은 전혀 몰랐던 게 낯설게 느껴졌다. 그래서 캡틴의 이름을 저장하는 것이 내겐 큰 의미로 다가왔다.

'그래, 사람 이름도 모르고 일한다는 게. 인사도 없이 일한다는 게...'

너무 삭막하단 생각이 들었던 것인지. 나에겐 이런 사람 간의 연락이 필요했던 것 같았다. 어쩌면 무척 내가 힘들었었다는 뜻이겠지만.
준보다, 처음 본 캡틴이 위로가 된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하진 못했다. 그럼에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음 주 출근이 정말 자신이 없었는데. 누군가는 날 기다려주는구나 하는 씁쓸한 마음이었다. 다음 주에 보자는 캡틴의 말에 대답 아닌 대답을 홀로 전했다.

"... 네."

이 대답만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답변이란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내 의지로 답할 말들은 얼마나 있을까.
가벼이 웃다 눈을 깜빡였다. 내일은 학교에 가는 날인데, 교복이 잘 맞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