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라고 대답해 - 1

Ep2

by 유월

"잘할 수 있을 거야."

탈칵 소리를 내고 쿠션을 닫는다. 어제보단 잘 된 것 같은 화장. 거울 속엔 낯선 내가 있어서, 모르는 사람에게 어색한 말을 거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쿵, 현관문을 닫고 무선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오늘 출근곡으론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가 좋을 것 같았다. 정규앨범이 많은 가수지만, 오늘은 1집 앨범을 골랐다. 그게 좋을 것 같았다.

알아차리지도 못하게
얼음이 다시 녹아내리듯
떠오르네 저 깊은 바다에
어느덧 수면 위로

노래를 속으로 따라 불렀다. 어색한 내 얼굴과, 익숙한 노랫말을 조율하듯 어제 출근길을 따라 걸었다.

-
"안녕하세요."

교통카드 태그 삑 소리, 그와 함께 건넨 인사에 기사님은 아이고, 안녕하세요 하고 호응을 해주셨다. 버스를 타면 항상 인사를 건넸다. 사람이 사람을 대면하는데 자연스러운 행동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받아주지 않는 분들도 많은데 오늘 기사님은 인사를 받아주셨다. 오늘은, 왜인지 기분 좋은 하루가 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
한 번 와봤다고 익숙해진 것에 웃음이 났다. 화장실에 가서 한 번 더 용모를 확인하고 목을 큼, 큼 가다듬었다.
어제 저녁 잠이 오지 않아 배운 내용을 정리해 두었다. 출근 전에 보면 좋겠지 하는 생각에 그 종이를 꺼내 들었다. 스마트한 세상에 핸드폰 메모장을 사용하면 될 것인데 굳이 난 꼬깃꼬깃 종이에 정리해 두었다. 글씨를 잘 쓰지 못해서 삐뚤빼뚤 쓰인 글씨였지만 그것이 보기 좋았다.

'공부는 종이로 하는 게 좋단 말이지.'

학교에서도 남들이 시키지 않은 것까지 해내던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누군가는 재수 없다고 나를 욕하곤 했지만, 그것이 손해 보는 일은 아니라 떠올렸다. 그것은 눈치 보는 내 성격 탓이기도 했다. 더 잘 해낼 수 있는 방도가 없을까 하는 오랜 고민이었다.
오늘은 출근은 더욱 일렀다. 긴장감에 더 재촉하여 일찍 나온 것도 있지만, 부장님의 음성이 귀에 들리는 것 같아서가 큰 이유였다. 부장님은 밤새 꿈에 나와 요즘 것들을, 요즘 것들은 이라는 말을 반복하셨다. 티비 방송에서도 15분은 일찍 나와서 준비를 해야 한다고 들었던 것도 같았다. 신입인 나는 20분은 일찍 나와야겠지 하는 생각을 했었다. 종이를 펴보며 한 번 주르륵 눈으로 훑어 내렸다.
이내 셔츠를 탁탁 정리해 내고 근무를 시작하러 나섰다.

"안녕하세요, 블리스 웨딩홀입니다."

-
10시 웨딩은 상대적으로 한적하다. 손님들도 여유 있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한 분, 한 분 응대를 해내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큐알체크는 이쪽에서 해주시면 되고요, 손소독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손소독? 아까 했는데 또 해요?"
"네, 고객님. 저희 매뉴얼이라서 한 번씩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깐깐하긴 더럽게 깐깐하네."

툭, 어깨를 밀치고 가시는 고객님 때문에 순간 욱한 감정이 들었지만 이내 숨을 고르고 참아냈다. 어쩜 저렇게 무례하게 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 대답이 더 빨리 나갔다.

"감사합니다, 고객님."

그래, 내가 고객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두 번째 출근날부터 잘리는 건 사양이었다. 엄마도 돈을 벌어오는 막내딸을 기특해하셨는데 실망시켜드리고 싶지도 않았다. 학교에서도 이런 무례한 친구들은 많이 겪었다. 이들은 어른이고, 나는 더 어린 학생이니까 참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 어른, 나는 저런 어른은 되지 말아야겠다. 성인이 되면 저러지 말아야겠어.'

속으로 되뇌며 다시금 손님을 응대하기 시작했다.
오늘도 부장님은 11시가 조금 지나고 모습을 보이셨다. 어제와 같은 단정한 차림새, 어쩜 사람이 저렇게 한결같을까 하는 생각이 뒤따랐다.

"어, 어. 왔네. 잘했어. 안 내빼고 잘 왔어."
"아닙니다. 당연히 와야죠."

순간 속으로 내가 출근을 안 했다면 이 한 시간의 공백을 어쩌려고 한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티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어제부터 느낀 것이지만 부장님은 그다지 책임감 있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할 만하지?"
"네,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그래요, 네네 하는 태도가 중요한 거거든. 오늘은 3시에 퇴근하고. 정산실 가고 알지?"
"네, 알겠습니다."

툭, 툭 어깨를 치고 부장님은 시야에서 사라지셨다. 어깨를 슬쩍 쳐다보는데 왜인지 울컥하는 것도 같았다. 어제도 똑같이 받은 어깨 토닥임이 왜 이리 불쾌한 건지. 아까 손님이 치고 간 어깨가 이제 와서 아픈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책임감 없는 사람의 격려 따위 달갑지 않았던 것인지.
그냥 혼자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왜인지 지금은 스스로에게 괜찮아라고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도 응대는 크게 변화가 없었다. 화장실을 안내하고, 자동응답기 같은 멘트들을 목이 쉬어라 내뱉고 나면 생각이 들어올 틈이 없었다. 인간 확성기가 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두어 시간 지나니 다리가 욱신거리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견딜만한 통증이었다. 또 어제보단 공기가 조금 따뜻한 것도 같았다. 입김이 조금 나오긴 했지만, 이것 역시 견딜만한 추위가 되었다.

"네, 고객님 필요한 거 있으실까요?"

정신없이 자동응답기처럼 대답을 내뱉는데 한 손님이 날 확 잡아당기셨다. 놀라 휘청이다 자리에 겨우 섰는데 손님은 날 빤히 쳐다보셨다.

"야, 이걸 우리가 어떻게 해."
"고객님, 어려우시면 도와드릴게요."
"진작에, 해준 다고 해야지. 앵무새처럼 해달라는 말만 하고 어휴. 요즘 애들이란."
"죄송합니다, 금방 해드릴게요."

손님이 점점 밀려들었다. 압박감이 느껴져 허둥지둥 빨리 해결하려고 안감힘을 썼다. 손으론 손님폰으로 방문등록을 하고 있지만, 입으론 끊임없이 멘트를 내뱉기 바빴다.

"해드렸어요. 입장 전에 손소독만 해주시면 돼요. 안녕하세요, 블리스 웨딩홀입니다. 큐알..."
"아저씨 것도 해줘야지."
"네?"
"아저씨 것도 해달라고. 우린 할 줄 모른다니까?"
"고객님, 그러면... 지금 손님들이 밀려서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아니, 우리는 시간이 많아요? 우린 손님 아니야?"
"아, 아... 네 일단 주세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서 어버버 하고 손님 핸드폰을 또 받아 들었다. 손이 조금 떨리는 것도 같았다. 별 말 아닌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모욕적인지. 그 와중에도 계속 앞을 바라보며 앵무새처럼 말할 뿐이었다. 속으로 한숨을 푹 쉬며, 그래 앵무새 같단 게 틀린 말은 아니구나 한탄을 할 뿐이었다. 그때 구세주처럼 부장님이 오셨다.
조금의 기대감을 품고 부장님을 바라보았다. 부장님은 조용히 속삭이셨다.

"뭐 해, 응대 안 하고."
"아 부장님, 고객님께서 해달라고 하셔서."
"적당히 쳐내야지. 뭐 하는 거야 참. 그거 해드리고 이쪽 라인 집중해서 쳐내."

그러면 그렇지라는 생각이 단박에 들었다. 본인도 고객 눈치가 보여서 귓속말로 속닥인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더 욕을 먹을 순 없었다. 그래 빨리 해결하는 수밖에.

"... 네. 알겠습니다."

정신없이 해내고 손님께 내미니 탁 소리 나게 폰을 챙겨가셨다. 황당해서 손님을 쳐다보니 이미 손님은 뒤돌아 본인의 갈길을 가고 계셨다. 그 뒷모습에 어찌나 울컥하던지. 고맙다는 말까지는 바라지 않았지만, 저렇게 낚아챌 것도 없을 텐데.

'아... 정말, 오늘 운수 좋네.'

옆에는 능숙하게 손님을 응대하는 부장님의 모습이 보였다. 결국은 또 내 탓, 내가 아직 익숙하지 못한 탓이겠지. 나도 다시금 말을 내뱉는다.

"안녕하세요, 블리스 웨딩홀입니다..."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