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이제 퇴근하는 거지? 못 보는 줄 알았네. 하루 종일 서있느라고 고생했어."
준이 계단으로 후다닥 뛰어오며 내게 인사를 건넸다. 아까보다 헝클어진 머리칼이며 하얀 셔츠 곳곳엔 얼룩덜룩 오염이 되어있었다.
"아냐 뭘, 너가 더 고생이지. 돈도 받았어."
"이제 돈도 벌고, 기특하네?"
장난기 가득한 얼굴의 준은 내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단정히 묶었던 머리칼이 헝클어져 나는 툴툴거리며 머리를 풀었다.
"너는 퇴근 언제 해?"
"음, 오늘 도망간 친구들이 있어서... 10시?"
"10시? 출근 12시에 했잖아."
준은 웃음을 지으며 이내 가슴을 탕탕 쳤다. 자신은 괜찮다는 표현이었다.
"내가 누구야! 이런 일 익숙하지. 돈 많이 벌고 좋지 뭐. 집 못 데려다줘서 미안. 집 가면 연락해."
"응, 너도 고생해. 몸 조심하고. 다치지 마."
준을 안으려고 하자 준은 옷에 음식물이 묻었다며 손사래를 치더니 다시금 머리를 톡톡 쳤다. 나는 그 길로 웨딩홀을 나왔다.
웨딩홀 밖으로 나오자 나와 비슷한 차림을 한 20대 초반의 사람들이 줄담배를 피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콜록, 콜록 기침을 하기 바빴다. 그들은 바닥에 침을 뱉으며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양아치들 같다, 꼭.'
주머니에 넣어둔 돈을 꽉 쥐었다. 아마도 준이랑 같이 일하는 3층 근무자들인 것 같았다.
'담배를 많이 핀다곤 하던데...'
주말에 준을 만날 때 은은하게 나던 담배향을 기억했다. 준은 3층에 골초들만 있다며 난색을 표했었다. 하긴 저렇게 많이 피면 준에게도 담배향이 나겠지. 이런 생각을 하며 버스를 타러 느릿느릿 걸어갔다. 다리가 아파서 속도가 나지 않았다. 검정 슬랙스 안으로 퉁퉁 부은 다리가 보이는 것도 같았다.
-
버스가 도착하곤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오래 서있다 자리에 앉으니 여러 복잡한 감정이 밀려들었다.
다리가 저릿해왔다. 나도 모르게 다리를 다시금 두드렸다. 이게 오늘의 고통이겠지 생각하며 피곤한 눈을 깜빡였다. 집까지 가는 길이 멀었다. 무선 이어폰을 끼려다 주변을 둘러보니 할머니가 보였다. 다리를 한 번, 할머니를 한 번 바라봤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여기 앉으세요, 할머니."
"아이고, 안 비켜줘도 되는데..."
할머니는 고맙다고 인사하시곤 털썩 주저앉으셨다. 나는 다리를 한 번 더 바라보았다. 욱신거리는 통증이 멈추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애써 웃어 보였다.
"저는 괜찮아요."
-
집에 가는 길에 '빵사모' 빵집이 보였다. 저 집 빵 엄마가 참 좋아하시는데 하는 생각에 무작정 빵집으로 향했다. 난생처음 돈을 벌어온 딸을 본 엄마는 뭐라고 하실까.
기분 좋은 빵냄새가 코끝을 감쌌다. 어둡고, 차갑던 웨딩홀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포근하고 따뜻하다는 생각이 날 감쌌다. 빵을 두어 개 집었다. 벌써 만원 돈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아니, 이거 두 개 사는데 내 한 시간을 태워야 해?'
무심코 빵집의 빵가격을 보니 모든 것이 시급으로 계산되는 것만 같았다. 저건 30분 근무하면 살 수 있겠구나. 막상 계산을 하고 나오니 허무감이 느껴졌다.
'한 시간 꼬박 일했는데, 겨우 빵 두 개.'
53000원 중, 만원 짜리 지폐를 한 장 빼니 초라한 것도 같았다. 별 거 없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름 고생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구나 하는 허무감이 들었다.
집에 가니 가족들은 거실에 모여 티비를 보며 떠들고 있었다. 주말 근무를 한다는 것은 사실상 가족들과 단절되는 거구나 하고 생각이 이어갔다. 내가 주말에 근무를 한다면, 이 주말 풍경에 나는 낄 수 없겠지. 그래도 큰 목소리로 가족들을 불렀다.
"저 빵 사 왔어요! 빵 드세요들."
언니는 무심히 쳐다보더니 벌떡 일어나 빵 봉지를 챙겼다.
"너가 크긴 했나 보다. 알바해서 빵도 사 오고."
"언니도 참, 나도 이제 한 달 뒤면 성인이야."
"그래봤자 지금은 고딩 아니냐?"
빙긋 웃으며 날 바라보던 언니는 내 얼굴에 손가락을 쓱 들이밀더니 볼을 마꾸 문질렀다. 화장했네? 하며 날 비웃는 것도 같았다.
"학생이 뭔 화장을 하냐."
"너무 어려 보일까 봐 그러지 뭐."
"너가 풀메해도 똑같아."
빵 봉투에서 빵을 꺼내든 언니는 능숙하게 빵을 썰어 접시에 내어왔다.
"막내가 빵도 사 오고 다 컸어요 그쵸?"
그만 놀리란 말을 꺼내려, 입을 움찔움찔거렸다. 언니는 내 입에 빵을 넣어주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할지 다 안다는 듯이. 언니는 무심히 말했다. 나도 무심히 답했다.
"돈 벌기 힘들지? 고생했다."
"... 아냐, 고생은 무슨. 빵 먹어."
-
준에게서 연락이 온 건 10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오늘 하루 종일 너무 바빠서 연락을 못했다며 미안하단 연락이었다. 사실 다리가 아파서 준의 연락을 신경 쓰지도 못하고 있었다. 나 역시 피곤해서 연락을 보내지 않은 것이었는데. 준은 내가 화가 나서 연락을 보내지 않았다고 생각한 것도 같았다.
'난 괜찮아.'라고 보내려고 타닥 키패드를 치자 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많이 화났어? 연락 못해서 미안해. 오늘 너무 바빠서.
"화 안 났어. 나도 피곤해서 연락 안 보낸 거야.
-정말? 그것도 그거대로 문젠데. 내가 뭐라도 사갈까?
"아냐, 너도 내일 출근 일찍 하잖아. 괜찮아."
-첫 출근인데 챙겨주지도 못한 게 걸려서..."
"지하철 안 타? 난 진짜 괜찮으니까 얼른 집 가서 쉬어."
수화기 너머 안절부절못하는 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말 괜찮은데, 생각보다 일은 할만했고. 다리의 통증도 나아졌다. 부장님은 조금 재수 없어 보이기도 했지만 나쁘지 않아 보였고. 정산실 직원분 역시 사회생활에 찌든 사람처럼 보였을 뿐이다.
대충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전화를 툭 끊었다. 언니의 물건들을 빌려 화장을 지웠다. 얼룩덜룩 묻어 나오는 화장품들, 낯선 얼굴이 지워지니 그제야 나처럼 보이는 것 같았다. 언니말대로 어른 흉내를 벗어낸 아이처럼 보였다. 가장 나다운 나를 곱씹었다.
잘 준비를 마치니 모든 피로감이 몰려왔다.
'내일은 11시 출근이었지.'
눈을 깜빡거렸다. 밝은 집 조명 아래 눈이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도 같았다. 이제 아프지 않은 다리를 괜히 주물주물 마사지를 한다.
'괜찮아. 잘했어. 실수도 없었고.'
잘할 수 있다 되뇌는 밤. 주말이 사라진 내 삶. 나는 내일 또 출근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