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아 이게 그러니까... 안녕하세요, 블리스 웨딩홀입니다. 뭐 하니, 응대마저 해야지"
"네! 죄송합니다, 네 고객님..."
인수인계를 하는 중에도 손님이 들어오셨고, 부장님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대충대충 응대를 이어갔다. 어찌 보면 그것이 가장 프로다운 모습이었지만, 성의 없어 보인단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10분은 걸렸을까 내 첫 인수인계는 허무하게 끝이 났다.
"궁금한 거 지금 물어봐야지."
"아, 네... 그 잘 설명해 주셔서 추후 생기면 말씀드리겠..."
"모를 게 있을 수가 없지. 이거 완전 꿀 빠는 거거든."
말을 툭툭 끊고도 호탕하게 하, 하 하며 웃는 부장님을 보니 이곳이 영 좋은 곳은 아니구나 떠올렸다. 하지만 손님들은 그런 나를 기다려주지 않으니 서둘러 생각을 비워야만 했다.
'화장실 위치는 뒤편... 가까운 ATM기기는... 나가서 편의점...'
생각보단, 움직임이 빨랐다. 엘리베이터 문이 또 우르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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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 웨딩까지 마치고 나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10시, 11시 30분, 1시 요즘 결혼 많이 안 한다더니 웨딩홀은 북적였다. 열을 내서인가 더 이상 춥진 않았다.
손님이 적을 땐 다리를 툭툭 두들기기 바빴다.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서 공부할 땐 전혀 모르던 고통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왜 이 일이 꿀이라고 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인수인계가 형편없어도 금방 익힐 만큼 업무는 단조로웠고, 가끔 밉게 말하는 분들이 계셨지만 대체적으로 어려운 일은 없었다.
"야, 이거 좀 해"
"네, 고객님. 핸드폰 주시면 도와드릴게요."
간혹 이렇게 폰을 넘기며 네가 해라 바로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셨지만. 이 정도는 감당할 수 있지. 빙긋 웃어 보였다.
'근데, 도대체... 언제 퇴근하는 거지?'
생각해 보니 인수인계 때 퇴근시간에 대한 전달조차 못 받았음을 깨닫게 되었다.
'웨딩은 3시까지 있긴 한데... 그러면 3시 퇴근? 아닌가 4시 퇴근?'
3시가 다 되어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부장님 모습에 점점 답답함이 늘어갔다.
'돈도 안 주는 거 아니야? 일처리가 이래서야 원...'
다리를 툭툭 치며 다 나가버린 목소리로 엘리베이터를 응시하고 있는데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준이었다.
"준아!"
"고생했겠다. 오늘 퇴근 3시에 하는 거 맞지?"
"응? 아니 난 몰라... 전달 안 해주셔서..."
"어? 전달 못 받았어? 오늘 너 첫 출근이라 부장님이 4시까지 계실 거야. 너 슬슬 갈 준비 하라고 와본 건데. 근데 부장님은?"
내가 당황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준은 한숨을 푹 쉬더니 무전기에 손을 뻗었다.
"부장님 들리세요? 5층 퇴근 언제입니까?"
-야, 얌마. 여친 왔다고 바로 5층 갔냐. 보내라 그러면 아니면 4시에 보내던지. 곧잘 하더만."
"그게 무슨 말이십니까, 4시에 보내면 되겠습니까?"
-4시에 1층으로 보내라. 이상
업무 지시를 저렇게 주먹구구식으로 하는 게 맞나? 생각을 하며 준을 바라보자 준이 머쓱한 듯 웃음을 보였다.
"부장이 가끔 좀 이상해. 그래도 너 맘에 들었나 봐. 첫날부터 4시에 보내라 그러네? 4시에 손님들 있어도 그냥 1층으로 내려가면 돼. 그때 나도 휴게 갈 거거든. 잠깐 보자."
치지직 소리가 들리자 준은 당황하며 재빨리 인사를 건넸다. 부장이 나 찾나 봐 갈게 이 말을 끝으로 준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사라졌다.
'이런 곳에서 일하고 있었다고?'
준이 대단하게 느껴지다가도, 어쩌면 내가 나약한 건 아닌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뭔가 설명할 수 없는 찝찝한 기분. 끝 마무리를 하는 그 4시까지도 그런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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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가 땡 되자마자 가도 되는 건가에 대한 의문이 풀리질 못해 4시 5분까지 우물쭈물 손님들을 더 응대했다.
'이렇게 정각에 가서 예의 없다고 하시면 어떡하지?'
10분이 되었을 땐 이젠 진짜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도 망설이고 뒤를 자꾸만 쳐다보게 되었다. 요즘 애들이란, 하고 혀를 끌끌 차는 부장님 모습이 보이는 것도 같았다.
무거운 다리를 끌어 터벅터벅 걸어가는데 통증이 느껴졌다. 하루 종일 서서 응대를 하다 보니 다리가 퉁퉁 부은 것 같았다. 5시간을 넘게 서서 근무하는데 의자 하나 주지 않다니. 다리 통증에 조금 얼굴을 구겼지만, 퇴근이라는 설렘이 날 가벼이 만들었다.
정산실에 도착하니 더 서늘한 표정의 직원분이 날 기다리고 계셨다.
"늦었네, 일이 바빴나?"
"어, 네. 그... 그런 건 아니고 낯설어서..."
"잘한다고 하던데. 5층 맞지?"
"네 5층에서 근무하고 내려왔어요!"
"어려울 거 없어. 그냥 출근 시간, 퇴근 시간, 휴게시간 확인하고. 이름, 사인은 작성해. 돈은 천 원 단위로 지급할 거고."
수많은 이름이 쓰여있는 종이에 내 이름이 작게 보였다. 53000원 그날의 급여도 함께 적혀있었다. 무심코 본 준의 이름엔 높은 금액의 급여가 적혀있었다.
'확실히 오래 일하니까 많이 받는구나...'
돈 세는 기계에서 만 원짜리와 천 원짜리들이 드르륵 탁 소리를 내고 멈췄다. 멍하니 그 동작을 바라보게 되었다.
"사인."
돈을 탁 차갑게 건네며 턱짓으로 종이를 가리켰다.
"아, 아. 네!"
"내일 올 거지? 할만하잖아."
"네, 물론이죠. 출근 가능합니다."
"내일 봐. 조심히 들어가고. 수고했다."
어깨를 툭, 툭 내려치며 수고했다는 말을 들으니 퇴근이 실감이 났다. 돈을 절반으로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빳빳한 신권 같은 돈이라 구기기가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안녕히 계세요 말 끝으로 정산실을 나왔다. '53000원...' 나도 모르게 돈을 자꾸 곱씹었다.
내가 돈을 벌었구나라는 단순한 생각 뒤로, 오늘 했던 업무들이 생각났다. 인수인계도 없이 근무에 뛰어든 것, 여러 사람을 만나본 것. 그리고 지금도 욱신거리는 다리. 주머니는 다리만큼 무겁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