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은지심이 아니라니까요?
내 생각에 나는 굉장히 예민하다.
예민한데 단순하고, 단순한데 예민하다.
조금 고민해 보니,
귀차니즘이 있어서 분노의 감정을 길게 끌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isfp랍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벗어나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책을 읽고,
자연 속을 걷다 보면
금세 또 이해되기도 한다.
그래 그 사람은 그럴 수도 있지.
나랑 다를 수 있지.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게 힘들 수 있겠네.
모든 상황이 내 맘처럼 될 순 없지.
하고 말이다.
나는 이력서 자기소개에
통찰력이 있다.
라고 작성한 적이 있다.
지금은 그렇게 단언한 것이 부끄럽기도 하고, 건방을 떤 거 같아서 민망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것저것 겪어보니 사람이 모인 이 세상은
참으로 입체적이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라는 모감독의 영화 제목처럼 어제는 맞았지만,
오늘은 아닐 수도 있다.
이 가능성은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사람에 대한 감정으로 예를 들자면,
어떤 사람을 몇 개윌 동안 함께 시간을 보내고 겪다 보면
그 사람이 자주 쓰는 단어나 말투, 표정에서
그 사람의 냄새를(향기를) 맡을 수 있다.
누군가는 늘 타인을 비난하는 말을 한다.
그것도 한두 번이지, 남을 판단하고 미워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이는 사람은 나에게 매력이 없게 다가온다.
자신의 것이 없구나?
생각이 든다.
조금 격한 표현을 쓰자면 한심하게 느껴진다.
그런 감정이 들면서 동시에
내가 그런 생각을 할 자격이 있는 것인가?
나도 저렇게 누군가를 비난했던 적이 없단 말인가?
나는 떳떳한가?
내가 정의인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늘 사람이 안쓰럽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은 없을 텐데
모두가 살아내려 애쓰는 그 모습이
사랑스럽기도, 밉기도, 답답하기도.
결국은 참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각자 서로를 온전히 알 수 없구나.
서로를 품기 위해 닿기 위해
늘 부지런히 애를 써야 하는구나.
하고 말이다.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네가 그러는 건, 모성애고 측은지심이야~
이 말을 한 친구에게는 그냥 대충 그래그래 하고
넘겼는데, 사실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난... 아직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