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제 영원히 원하고 있는
나는 관계의 폭에 예민하다. 관계에 정의되는게 두려워 마음을 닫은채 가식적이라는 말과 함께 살아왔다. 몇번의 실연과 몇번의 따돌림 그리고 몇번의 패배감을 겪으며 마음은 함부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는걸 깨닫고 그것이 깨달음이라 믿어왔다. 한창 힘들때 직장상사가 말을 걸어온적 있었다. 아 내가 너무 티를 냈나 싶어 각오를 하고 문을 열었다.내가 말문을 열 수 있게 기다려주었다. 다정한 침묵이었다. 침묵을 깨고 꽤 오랜시간동안 얘길 나누었지만 가장 뚜렷이 기억나는 말은 너는 사람을 너무 좋아하는데 그걸 스스로 외면하는거 같아. 너가 나와 너무 닮아있어 나는 너가 그렇게 하면 날 보는것과 같아 너무 속상해. 나중에 분명 괜찮아질것이고 더 단단해질거야. 였다. 엉망진창이 되어있던 비참한 사람에게 가장 멋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건낼 수 있는 가장 예상밖의 가장 따뜻했던 위로였다. 나는 새로운 사람은 불편하다. 내 아주 오랜 친구가 아니면 다 그저 그렇다. 사실 저 말을 들었을때도 아니요 저는 사람이 제일 무섭고요 사람을 좋아하는걸 숨기는게 아니라 그냥 사람들이 불편해요 하는 반박을 마음에 묻었었다. 하루, 몇 주, 몇 달, 어느새 몇 년을 지나오면서 그 안에 생각하지도 못했던 사람들이 그리운적이 있었다. 가끔은 예상하지 못한 이들에게 연락을 받곤하는데 그게 너무 반갑고 너무 보고싶어진다. 가까운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이들이 좁디좁은 내 관계에 고스란히 피어있다는게 너무 소중하다. 마음은 함부로 나누는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은 그대로 믿어도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