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음 그게 고삼 무렵이었나 아직도 잊지 못하는 말이 있다. 그녀와 나는 고등학교2학년 그러니까 이제 막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선택하고 각 두 반씩 합반을 하는 첫 수업이었다. 그전부터 이 친구를 알고 있었지만 딱히 친하진 않았다 그녀는 그날 검은색 바탕에 실버 큐빅이 박힌 게스 반팔 티를 입고 하복 셔츠를 풀고 긴 머리를 묶은 채 갈색 안경을 끼고 있었다. 이 친구의 첫인상은 사실 기억은 안 난다. 교복 안에 하트는 빨간 큐빅 레터링은 은색 큐빅으로 된 티를 입는다니. 그 티를 보고 난 뒤 놀란 기억밖에. 일본어 선생님은 흉내내기 쉬운 큰 특징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고 나도 모르게 흉내를 내고 그녀가 거기에 터져버린 것. 아니 친구가 좋아하니까 웃겨주려고 수업시간에 종종 흉내 내며 실없는 농담을 던지곤 했는데 나중에 듣기로는 웃어주는 게 그렇게 귀찮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본인은 일본어를 좋아해서 집중하고 싶은데 내가 옆에서 자꾸 웃겨 들려고 하니 친하진 않아서 그만하라 말은 못 하겠고 그런. 사실 그러다 참다못한 내 친구가 귓속말로 코를 만지며 머쓱한 표정으로 야 좀 이제 닥쳐라야,,, 결국 한소리 들었다. 그 뒤 그 친구가 속에 있는 말을 결국에는 해버린 뒤로 엄청 친해져서 일주일에 잠자는 시간만 빼면 7일 내도록 붙어 다니면서 거의 자매처럼 지냈다. 나는 이 맘 때쯤 우울증을 좀 심하게 갖고 있었는데 가만있다가도 속이 답답해 한숨을 쉬거나 무언가에 심히 자책을 하거나 눈물이 흐르곤 했다. 스스로에 대해 심하게 회초리질하면서 자존감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그런 건강하지 못한 학생이었다. 그녀와 얘기하다가도 그런 말이나 표정이 문득문득 나오곤 했는데 그때마다 화윤이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웃으며 아니 뭐가 그래 힘드니 맨날 니는 이러면서 막 웃었다. 처음엔 나도 민망스러 웃음이 나와서 아 뭐 그냥 모른 체해라 새끼야 했다가도 얘는 내가 슬픈 것도 웃긴가 싶어 돌아보면 어이가 없었다. 사실 그런 모습들을 남들한테 숨기기 급급했지만 그녀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웃겨 죽겠다는 듯이 막 웃으니까 나도 그게 웃겨서 같이 웃곤 했다. 그게 인간으로부터 받은 안도감의 시작이었다. 나와 그 친구의 사이는 모르겠다. 친구라기보다 배 다른 쌍둥이 같은 느낌이다. 어찌 됐건 결국은 사랑하는 마음을 버릴 수 없는 자매사이라고나 할까. 그 친구 결혼식을 못 갔다. 딸아이 출산도 놓쳤다. 지난달 오 년 만의 한국 방문에 놓친 것들을 따라잡으려 작정하고 그 친구를 만났다. 회포를 풀 생각에 세상에서 제일 편한 옷을 입고 가장 긴장한 얼굴로 벨을 누른 뒤 기다렸다. 여전히 웃겼다. 딸을 안고 문을 연 그녀는 나에게 말도 걸지 않고 이모 안냐세요 해야지~~~~ 하고 야 들어 온나 한마디 남기고선 휙 들어가 딸아이를 아빠에게 안기고 설거지를 시작했다. 야 그래서 한국 어떤데 오랜만에 오니까 이게 두 번째 마디 그러더니 야 니 그렇게 살찐 건 아닌데? 건강해 보이는데? 이게 세 번째.
이 자식을 만나면 편한 이유가 있다. 내가 사랑하는 내 친구. 하루만 묵으려 갔던길에 일주일 내내 묵으며 같이 육아하고 수다 떨고 지친 기색을 보고 웃고, 옛날 우리가 했던 이상한 짓을 하다가 놀란 딸아이가 악을 쓰고 울어버려 아 이제 이런 건 하면 안 되는구나 하고 멋쩍게 웃었던 우리다.
그녀는 내가 나중에 다 버리고 이 인생 등지고 떠날 때 가득 찬 마음으로 잘 살았다 말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