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에 놓인 음식의 종류와 무관하게 상 앞에 앉은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마주 앉은 사람의 우주는 형태와 질감을 달리하며 변화한다. <우럭 한 점 우주의 맛> 에 나오는 횟집 장면에서 무심한 듯 툭 던진 남자의 말은 주인공의 우주를 통째로 흔들었다. 그러니 그에 대해 미처 알기도 전에 쫄깃한 우럭과 투명한 광어의 세계로 인해 벌어진 그의 우주에 빠지고 풍덩 빠져버린 건 당연하다.
-둘 중에 살점이 더 투명한 쪽이 광어다. 생각하면 구별하기 쉬울 거예요. 더 쫄깃한 쪽이 우럭.
-그럼 오늘부터 저를 우럭이라고 부르세요. 쫄깃하게.
술 취한 나는 인간도 아니다. 방금 무슨 말을 내뱉은 거야. 정말 돌았군. 하는 생각을 하는 와중에 남자가 또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니요. 광어라고 부르겠습니다. 속이 다 보이거든요.
술 취한 남자는 가뜩이나 느릿느릿한 말투가 더 느려져 조금 더 귀여워져 있었다. 나는 남자의 귀엽고 어눌한 목소리를 듣다가 광어인지 우럭인지 모를 투명한 회를 한 점 먹는 것을 반복했다. 금세 알싸하게 취해버린 나는 왜인지 엄마를 떠올렸다. 암 확진을 받은 뒤로는 날것을 먹는 게 금지돼, 벌써 육 개월 가까이 그 좋아하는 회를 먹지 못하고 있는 그녀. 수술이 끝나고 완치가 되면 같이 와야겠다는, 나답지 않게 효자 같은 생각까지 했다. 그리고 이미 다 헤집어진 꽁치 살을 뒤적이며 혼잣말을 했다.
-엄마가 생선 가시는 진짜 잘 발라줬는데......
그가 갑자기 생선 가시를 바르기 시작하더니 두툼한 꽁치 살을 내 밥공기에 쓱 얹어놓았다.
-아이고, 그런 의미는 아니었는데. 아이고, 죄송해라.
-좋아하는 거 같습니다.
-저도 좋아해요. 꽁치 맛있죠.
-꽁치 말고. 당신이라는 우주를요.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중
'꽁치 말고 당신이라는 우주를요.'
꽁치 살을 밥공기에 얹어주며 이토록 온 우주를 통틀어 손발이 급격히 오그라드는(그럼에도 설렐 수 있는) 고백을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꽁치, 우럭, 광어가 놓인 상 앞에서 '당신이라는 우주'를 꺼내 드는 사람에게 빠지지 않을 이유는 수백 개도 더 댈 수 있었을 것이다. '나'도 처음에 그가 우주 운운하는 것을 듣고 개똥철학이라고 생각했었으니. 하지만 '당신이라는 우주'라니. 우주에서 아마도 유일할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되는 고백을 듣는 순간,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처음부터 '나'는 그의 모든 것. 저음에 또렷한 목소리, 툭 튀어나온 눈썹 뼈에 속내를 종잡을 수 없는 작은 입술, 선크림 따위 생전 한 번도 바르지 않은 듯 군데군데 기미가 낀 피부마저도 모두 마음에 들었다. 첫눈에 반했다고 말해도 될 정도였다.
인권 단체에서 주최하는 아카데미의 인문학 교양강좌인 '감정의 철학' 수업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내가 그의 손목에서부터 길게 이어진 문신의 끝을 궁금해하고 있을 때, 그가 '나'의 커피를 마셨다. 그걸 계기로 두 사람은 수업이 끝난 뒤 함께 밥을 먹는 사이가 되었다.
그는 자의식 과잉이 느껴질 정도로 자신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의 대부분을 채워갔고 불행한 가정사를 자주 언급했고 미제국주의를 증오했다. 그는 실패한 학생운동의 그림자를 덮어쓰고 다니는 것 같았고 동성애자이면서도 세상의 눈에 그렇게 비춰지고 싶지 않아 늘 경계했다. 그런 점이 불편하기는 했지만 이미 사랑에 풍덩 빠진 '나'는 그런 그의 행동 하나하나를 관찰하는데만 신경을 쏟았다.
처음부터 둘의 관계는 대등하지 않았다.
내가 그에 대해 더 알고 싶어 관찰하는 위치에 있었다면, 그는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었다. 그는 틈만 나면 '나'의 생각이나 행동을 교정하려고 했다. 끝까지 그런 관계는 별로 변하지 않았다.
서로를 향한 애정의 무게와 방향이 맞지 않은 관계는 오래가기 힘들다. 우주를 들먹이는 거창한 고백을 받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수차례의 갈등과 다툼 이후 둘은 결국 헤어진다.
소설 속에서는 두 사람이 함께 음식을 먹는 장면이 몇 군데 나온다. 감정선이나 관계에서 변화를 맞이할 때마다 두 사람은 무언가를 먹거나, 혹은 먹으려 했으나 먹지 못한다.
가장 먼저 나온 음식은 커피였다. 그가 일방적으로 내 커피를 마시고 그 답례로 커피를 사주기로 하며 관계가 이어졌으니까. 이후 우럭과 광어를 앞에 두고는 그의 우주적인 고백이 있었고, 사귀고 난 뒤 처음 다툰 뒤로 그의 방에 찾아갔을 때는 낙지, 우럭, 소주. 탕수육과 소주가 있었다. 해산물 종류를 좋아하는 그에 맞춰 먹은 음식이 많다. 동시에 소주와 어울리는 음식의 나열로 볼 수도 있다. 소주 한 잔으로 맛을 희석시키는 조합이라고 해야 할까.
많은 음식을 함께 먹은 두 사람이 끝까지 먹지 못한 음식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파스타.
'나'는 그와 파스타를 먹고 싶어했다. 파스타를 너무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가 남자 둘이 파스타를 먹는 건 이상하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남자 둘'이 아닌 '두 사람'의 연애를 하고 싶었던 '나'와 다르게 그는 자신을 이상하게 쳐다볼 단 하나의 시선도 견디지 못했다.
파스타를 함께 먹을 수 없어서 시작된 싸움은 그동안 묵혀있던 감정을 쏟아냈다. 광어와 우럭을 앞에 두고 우주적인 고백을 했던 그들은 서로의 우주를 향해 돌을 던졌다. 둘의 우주는 상처를 입었고 관계는 벌어졌다. 끝내 돌이킬 수 없을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파스타를 해주었던 날, 그는 파스타를 한 가닥도 먹지 않은 채 떠났다. 그에 대한 감정을 사랑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내게 그가 '사랑, 이라고 생각했던 것 아니죠?'라는 말을 했고, 그 말에 분노한 내가 그의 목을 졸랐기 때문이다. 그는 아무말도 없이 떠났다. 그의 뒷모습이 하나의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나'는 그를 보고 보았다.
정신을 차리고 그를 찾아갔지만 연락이 되지 않아 '나'는 그에 대한 감정의 과잉이 잔뜩 들어있는 일기를 우편함에 던져 넣었다. 며칠 뒤 그에게 보낸 일기장에는 빨간 줄로 교정이 되어 돌아왔다. 연애할 때와 마찬가지로 그는 '나'를 교정해야할 대상으로만 봐왔던 것이다.
결국에 우리는 함께 따뜻한 파스타 한 접시조차 제대로 먹지 못했다.
대신에 나는 농약을 먹었다. 차가운 아메리카노에 농약을 부으며, 이 커피조차도 그에게는 미제의 산물이자(이름이 아메리카노이기까지 하니) 제3세계 노동착취의 결과물로 보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게 웃겨서 한참을 웃다가 눈을 감았다.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우럭 한점 우주의 맛> 중
농약을 마셨지만 죽지 않았다. 대신 '나'는 엄마와 함께 공원을 걷고 있다. 엄마는 암에 걸렸다가 완치되었다가 다시 암이 재발했고 살아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이다. 석양을 바라보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엄마에게 사과를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나온 말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아."였다. 그 다음에는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아."라는 말이 새어나왔다. 고등학교 때 아들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엄마에 의해 '나'는 정신병원에 갇힌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질병으로 단정지은 엄마에게 '나'는 큰 상처를 받았지만, 한번도 사과를 받은 적은 없었다.
엄마의 생이 얼마 남지 않은 해지기 직전의 시간.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나'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에게 보냈다가 빨간 색으로 교정이 되어 돌아온 일기를 찢어서 변기에 넣었다.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으로 시작된 사랑은 변기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시간이 걸렸지만....사라졌다.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는 두 사람의 연애가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특별할 것까지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읽어보니 '나'의 설렘과 아픔이 보이기 시작했다. 새벽에 그를 만나고 돌아가는 길, 버스정류장까지 걷는 사이의 설렘. 소설의 현재와 과거 사이의 연결에 매끄럽지 않은 부분들이 있었고 엄마가 아들에게 했던 행동과 그 뒤의 말들도 자연스럽지 않아 보였다. 그건 그대로 소설 속 주인공의 심경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나에게 있어 이 순간 가장 안타까운 건 사실 그들이 끝내 먹지 못한 파스타가 전부다.
파스타는 두 사람의 관계를 드러내주는 음식이자 시선의 굴레에 얽매여 먹을 수 없었던 음식이었으니까. 두 사람이 한 번도 먹지 못했기에 계속 기억에 남는 파스타. '당신이라는 우주'...이렇게 세상에 없을 우주적인 고백도 받았는데 따뜻한 파스타를 함께 먹는 것이 그렇게도 어렵다니. 달리 생각하면 그저 파스타일 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