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은 존재감이 강력하다. 레몬 하나만으로도 방 하나를 가득 채울 수 있다. 조각조각 잘라내면 특유의 냄새가 순식간에 퍼진다. 입에 넣지 않아도 그 냄새만으로도 침이 고일 정도다. 여운도 길게 남는다.
권여선의《레몬》은 해언의 죽음 이후에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다언의 시선을 따라가며 사건을 재조명한다. 동시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변해갔는지를 살펴보고 각자가 짊어져야 하는 고통의 짐을 들여다본다. 해언의 죽음은 그 자체로 종결된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남긴 시간에 발 담그고 있는 사람들은 잃은 줄도 모르고 삶을 잃어갔다.
나는 가스레인지로 가서 불을 끄고 계란을 찬물에 담갔다 꺼내왔다. 탁 소리를 내지 못해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손으로 살살 눌러 껍질을 깠다. 거실 통유리로 쏟아져 들어온 늦은 오후의 햇살에 테이블 위에 얇게 깔린 먼지의 층이 보였다. 반쯤 깐 계란을 한입 베어 물자 쫄깃한 흰자와 촉촉한 노른자의 맛이 섞였다. 나는 반숙된 노른자의 단면을 내려다보았다. 햇살을 받은 흰자 속의 노른자가 영롱한 샘처럼 빛나고 있었다. 아름답구나.
-《레몬》 중
고통스러운 꿈을 꾸고 있는데도 꿈에서 깨려고 하지 않는 것은 꿈에서 깨어나는 현실이 더한 지옥이기 때문일 것이다.그럴 때는 꿈에서 깨어나야 할까, 꿈이라는 걸 알면서도 눈을 감고 있어야 할까.
지금 반숙된 계란의 노른자의 단면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있는 사람은 다언이다. 슬픔과 고통이 뒤엉킨 시간 속에서 현실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던 다언은 이제 깨어났는가. 자신의 삶을 잃은 줄도 모르고 잃었던 그녀는 계란 노른자의 단면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있다. 언니 해언의 죽음 이후 가라앉기만 했고 멈춰 섰던 다언의 시계는 다시 움직일 것인가.
언니 해언은 절대적이고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지녀 모두의 시선을 지닌 고등학생이었다. 그런 해언이 2002년 월드컵 경기가 한창이었던 6월 살해당했다.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유력한 용의자로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던 한만우와 신정준이 지목되었다. 싸구려 월드컵 티셔츠를 입고 홀어머니와 사는 한만우와 아이비 버튼다운 셔츠를 입고 회계사 아버지를 둔 신정준. 형사는 누구를 범인으로 만들 것인지 별로 고민하지 않았다. 하지만 증거불충분으로 한만우는 풀려난다. 소설을 읽다보면 한만우가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소설은 2002년 혜언의 죽음을 보는 다언. 2006년 다언과 우연히 만난 상희. 2010년 다언과 윤태림의 이야기와 한만우를 찾아간 다언. 2015년 윤태림의 독백. 2017년 다시 한만우를 찾아가 진실을 듣는 이야기. 2019년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다언의 현재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구성되어있다.
다만 사건에 있어 중요한 인물인 윤태림은 상희의 서술을 통해 짧게 소개되는 장면 말고는, '도움천사 일공공사'라는 곳에 전화를 걸어 상담을 하는 독백밖에 나오지 않는다. 해언의 죽음 이후 윤태림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일면 보여주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본명을 숨기고 아무도 몰래 전화를 거는 윤태림의 독백 속에서 독자는 그녀가 해언을 죽인 범인에 대해 알고 있으며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언은 해언의 죽음으로 지독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집에 언니가 들어오지 않았음에도 모른 채 지냈다는 사실 때문이다. 다언은 반복해서 해언이 죽던 날의 공원을 떠올린다. 꿈인지 현실인지 알지 못할 정도로 그날의 그장소와 시간에 대해 매달린다.
몇 년 동안 다언과 엄마는 삶을 방치한 채 살아갔다. 어느날 엄마가 청소를 시작하며 모든 것을 정리하려는 듯 일어섰지만, 다시 해언을 기억하려는 행동에 불과했다. 늘 언니만 그리워하는 엄마를 위해 다언은 성형수술을 결심한다. 원래부터 상반된 자매였다. 꿈꾸는 듯한 얼굴에 피부가 희고 키가 늘씬하며 길쭉한 팔다리를 가진 해언, 평범한 얼굴에 키도 작고 조금 통통한 다언. 냉담하고 말도 없고 잘 웃지 않는 해언, 호기심과 열정이 넘치고 매사에 싹싹하고 야무지고 웃음을 자주 터뜨리는 다언. 하지만 늘 통통 튀는 생기가 넘쳐나던 다언은 해언의 죽음 이후 모든 생기를 잃었다. 성형을 반복하는 동안 마음과 함께 얼굴도 표정도 함께 뒤틀려갔다.
상희는 해언의 죽음이 무엇을 변하게 했고 어떻게 비극이 생성되는지를 관찰하는 인물이다. 절대적이고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지녀 다른 아이들을 모두 나머지로 만들어버린 해언, 발랄하고 참신하고 귀엽고 순박한 다언, 눈이 크고 눈꼬리가 비스듬히 놓인 아몬드처럼 치켜 올라가고 입술이 꽃잎처럼 붉은 윤태림까지. 상희는 죽은 이전과 이후의 인물들에 대해 거리를 두며 본다.
특히 소설의 제목 '레몬'은 상희가 고등학교 시절 문예반에서 썼던 <레몬과자를 파는 베티 번씨>에서 시작되었다. 상희가 시에 썼던 '레몬'이란 단어는 다언에게 마치 주문처럼 생의 의지를 불태우게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다언은 한만우가 해언을 죽인 범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레몬은 복수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무엇인가가 아름답다는 생각을 한 지가 아주 오래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몇 해 전에 우연히 만난 상희 언니에게 아직도 시를 쓰느냐고 물었던 기억이 났다. 레몬.... 동그란 노른자의 선명한 빛이 내게 다시 시를 쓰고 싶게 했다. 흰자에 포근하게 감싸인 노른자를 보고 있는 동안 나는 외롭지 않았다. 아프지도 않았다. 요람에 든 아이처럼 편안했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의식의 거대한 부분이 느린 기지개를 켜며 눈을 뜨는 게 느껴졌다. 하안만우우우....
그를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 생각이 계시처럼 나를 찾아왔다.
-《레몬》중
곳곳에 노란색의 이미지가 자주 등장한다. 노란 레몬, 계란 노른자, 노란 참외, 노란 원피스, 노란 햇살.
노란색은 태양과 닮아있는 가장 빛나는 색이다. 따뜻하고 밝고 화사하고 쾌활하다. 긍정적인 의미에서는 지식과 지혜를 동반한다고 한다. 하지만 노란색이 부정적으로 작용하다면 속임수, 기만, 악의 복수심, 정신적인 좌절 등의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
노란색을 받아들이는 온도도 상황과 대상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입에 침이 고일 정도로 시큼한 레몬과 말랑말랑한 따뜻한 계란 노른자의 노랑이 다르듯 이 소설에서도 인물들, 특히 다언이 해언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따라 노란색은 분노와 복수에서 그리움과 회환의 정서로 바뀌기도 한다.
다언은 자신이 범인이라고 확신했던 한만우를 찾아간다.
사실 한만우는 해언을 죽이지 않았다. 사건 당일, 배달 아르바이트를 가다가 해언을 늘 질투하던 윤태림을 태워준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었다. 윤태림은 해언의 행적을 쫓기 위해 한만우를 이용했고 그 결과 범인의 얼굴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경찰조사에서 윤태림은 범인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로 인해 한만우는 범인으로 지목되었다. 태어날 때부터 가난 속에서 힘들게 살던 한만우는 군대에 가서 육종에 걸리고 불구의 몸으로 세탁공장에 취직해서 다림질을 하다 육종이 폐까지 번져 서른 살에 죽게 된다. 열아홉 윤태림이 오토바이에 올라타지 않았더라면 한만우의 인생도 다르게 흘러갔을지 모른다.
한만우를 찾아가 비난하며 몰아세웠던 다언은 그 다음에 갔을 때는 한만우의 여동생 선우를 만난다. 그리고 함께 계란을 먹게 된다. 해언을 닮기 위해 성형을 하고 살이 찌지 않기 위해 점심을 거르고 있던 다언은 계란을 먹겠냐고 묻는 선우의 말에 침을 삼킨다.
"하나는 반숙에 소금 뿌리고요, 하나는 완숙에 케첩 뿌려요. 우리는요, 맨날 그렇게 먹어요."
나는 침을 삼켰다.
"나도 먹어도 돼요?"
"진짜요? 몇 개요?"
"나도 두 개 먹을래요"
여동생이 씩 웃더니 몸을 돌려 가스레인지 위에 프라이팬을 올리고 불을 켰다. 몸을 돌려 냉장고 손잡이를 잡으며 물었다.
"그럼 먹는 것도 우리랑 똑같이 먹을 거예요?"
"네, 똑같이요."
"오케이, 그럼 셋 다 똑같이!"
-《레몬》 중
해언이 죽은 뒤로 계란을 깨서 먹지 못했던 다언은 늘 삶은 계란을 눌러서 껍질을 깠다. 계란프라이는 껍질을 쳐서 깨뜨려야 했기에 먹을 수 없었다. 다언은 한만우의 여동생 선우가 숟가락으로 계란을 깰 때의 순간을 견뎠다. 그럼으로써 자신을 짓누르던 고통의 아주 작은 부분을 깨뜨릴 수 있었다.
처음에 여동생이 숟가락으로 계란을 탁 깰 때 나는 움찔했다. 귀를 막을까도 생각했고 잠시 욕실로 피할까도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두 번째, 세 번째 계란이 탁탁 깨졌다. 나는 여섯 번째까지 견뎌낸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정말 오랜만에 먹은 계란프라이였다.
-《레몬》 중
다언은 한만우와 그의 동생 선우를 만나면서 자신이 무엇을 잃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계란 노른자의 단면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각자 다를 것이다. 고정되어있지도 흘러내리지도 않은 반숙된 계란 노른자의 단면은 내가 가지고 있는 시선에 따라 온도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완결되지 않은 이야기라면 더욱 그 온도가 중요하다.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