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가장 맛있었던 식사
파트리크 쥐스킨트 《비둘기》
조나단은 속옷 바람으로 침대가에 쪼그리고 앉아 저녁을 먹었다. 의자를 끌어다가 그 위에 가방을 얹은 다음, 사 온 물건 봉지를 펼쳐놓아 식탁 대용으로 썼다. 쬐끄만 정어리를 주머니칼로 가로로 잘라 반쪽을 찍어 빵 조각에 얹어서 한 입을 먹었다. 물컹물컹하고 기름에 절은 생선살이 싱거운 빵과 함께 뒤섞이며 기막히게 맛 좋은 덩어리가 되었다. 레몬을 몇 방울 떨어뜨리면 맛이 더 훌륭하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였지만, 한 입 먹고 나서 포도주를 병째로 들어 조금 마신 후 그것을 이 사이로 지그시 물면서 잠깐 물고 있으면 생선의 진한 뒷맛이 포도주의 약간 신 듯한 향료와 어우러지면서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맛을 자아내고 있었기 때문에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조나단은 식사를 하고 있는 그 순간보다 더 맛있게 음식을 먹어 보았던 적이 일생에 단 한 번도 없었을 것 같다.
-《비둘기》 중
속옷 차림으로 침대가에 쪼그리고 앉아 의자에 올린 가방을 식탁 대용으로 하여 저녁을 먹고 있는 조나단의 식사는 아주 특별하다. 그는 지금 자신의 방이 아닌 호텔 방에서 평소에는 먹지 않았던 음식-기름에 절인 정어리 통조림 하나, 염소 젖으로 만든 치즈 한 덩이, 배 하나, 포도주 한 병과 아랍식 빵 하나-들을 잔뜩 사 와서 먹고 있다.
평소의 조나단이라면 근무시간이 끝나면 늘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직접 만든 음식을 먹었을 것이다.
주로 오믈렛이나 햄을 섞은 달걀 프라이, 치즈 가루를 뿌린 국수, 따뜻한 수프 같은 따뜻한 음식. 거기에 샐러드와 커피 한 잔까지. 하지만 지금 조나단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갈 수 없었기에 직접 음식을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그날 점심때만 하더라도 혐오에 가까운 눈으로 보았던 많은 양의 음식을 맛을 음미하며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먹고 있다.
일생에서 가장 맛있는 식사. 조나단은 인생의 마지막 식사를 하고 있는 중이다.
자신의 방이 아닌 곳에서 마지막 식사를 마친 조나단은 식탁을 치우고 모든 것을 제자리에 정리한 다음 침대에 눕는다. 그리고 불을 끄고 한 줄기 빛도 들어오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누워 이렇게 말한다.
"내일 자살해야지."
비둘기.
조나단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호텔에서 마지막 식사를 하고 자살을 결심하게 된 것은 모두 비둘기 때문이었다. 비둘기 한 마리 때문에 자살을 결심하다니!
비둘기는 우리가 걷는 인도나 사람들이 많은 모이는 공원이나 광장에서 언제든지 볼 수 있을 정도로 흔한 새다. 닭둘기라 불릴 정도로 살이 쪄서 잘 날지 못하고 온갖 배설물을 흩뿌려놓고 때때로 먹이를 쪼다가 로드킬을 당해 창자가 터져 죽기도 하지만 우리가 두려움에 피해 다녀야 할 존재는 아니다. 혐오스럽고 지겨운 존재라는 인식에는 동의하지만 두려워서 자살까지 생각해야 할 존재라니? 물론 조류 공포증이 있으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그런 경우에도 비둘기라는 대상을 피하는 대신 자신이 죽어야 한다는 생각은,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는 아무도 하지 않을 것이다.
조나단은 왜 비둘기를 이렇게도 두려워하는 걸까.
그는 어린 시절 전쟁통에 부모님이 차례로 수용소로 끌려가고 어린 누이동생과 기차를 타고 친척 아저씨에 집에 가서 살게 된 이후, 농사일과 군대까지 마친 그는 단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단조로운 평화를 맛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에 친척아저씨가 정해준 여자와 결혼을 한다. 하지만 결혼 4개월 만에 여자는 사내아이를 낳았고 그해 가을 튀니지 출신인 과일 장수와 도망치고 만다. 전쟁이 진행되던 시기부터 그 이후까지 조나단은 자신의 의지대로 선택했던 인생이 단 하나도 없었다. 도망치고 피하고 밀려서 어떤 곳에 놓이는 삶을 살아왔던 것이다. 전쟁에서 부모를 상실한 이후부터 그에게는 생의 선택지 없이 오직 떠밀리는 삶만 이어졌다.
불안하고 갑작스러운 삶에서 '평화'를 맛보기 위해 했던 결혼조차 실패로 돌아간 뒤, 조나단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싫어서 그동안 저금해두었던 돈을 몽땅 찾아 파리로 떠나왔다. 그리고 플랑슈 가에 있는 집 7층에 있는 24호실-길이가 3.4미터, 폭은 2.2미터, 높이가 2.5미터-을 평생 살아갈 방으로 선택한다.
24호실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다만 삶의 마땅찮은 불상사로부터 자기 자신을 보호할 수 있고, 어느 누구도 자기를 내쫓을 수 없는 그런 확실한 곳으로써, 온전하게 자기 혼자만의 소유로 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24호실을 처음으로 보았을 때 그는 그곳이 바로 그런 곳이 되리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 바로 이거야. 이런 곳을 언제나 갈망했었지. 이곳에서 살자.> (대부분의 많은 남자들이 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여자가 자기와 일생을 함께 할 여자요, 자기의 소유가 될 여자요, 인생이 다하는 순간까지 곁에 머물러 있을 여자라는 생각을 번개처럼 뇌리에 떠올린다는, 이른바 첫눈에 반한 사랑 같은 감정이었다.)
-《비둘기》 중
조나단이 겪은 모든 경험들은 그를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게 했고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모든 우연으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혼자만의 방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누구에게나 숨어있기 좋은 방이 있다. 누군가로부터 감당하기 힘든 짐을 넘겨받았을 때 세상의 폭력과 강요로 상처 입었을 때... 우리는 그 방으로 들어간다. 짐이 가벼워질 때까지 상처가 아물 때까지 머무른다.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바깥으로 나오는 일은 점점 힘이 들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 방을 나오기 위한 첫발이 너무 버겁다.
조나단이 매일 외치는 기도문이 있다면 아마 이런 글이 적혀 있지 않았을까.
"부디 나의 삶에서 사건이라는 것이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게 해주소서!"
우리가 볼 때는 사건이라고 할 수도 없는 '비둘기 사건'이 터졌을 때 조나단의 나이는 이미 오십을 넘겼고, 은행 수위로 근무한 30년 동안 정말 사건이라고 불릴 수 있는 일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상태였다.
비둘기 한 마리가 그에게 공포로 다가왔을 때 그는 그동안 쌓아온 생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을 느낀다.
새는 고개를 비스듬히 옆으로 누인 채 왼쪽 눈으로 조나단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 눈, 작고 둥그스름한 원반형이었고, 가운데가 까만 갈색의 그것은 보기에 너무나도 끔찍스러웠다. 그것은 마치 머리털에 꿰매어놓은 단추처럼 보였고 속눈썹도 없는 듯이, 광채도 없이, 그냥 무턱대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끔찍스럽게 무표정한 시선을 밖으로 내던지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그 눈속에 교활한 머뭇거림이 숨어 있는 것 같기도 하였다. 또 어떻게 보면 그것은 무표정하거나 머뭇거리는 듯 보이지 않았고 외부의 빛을 몽땅 빨아들이기마 할 뿐 자기 자신은 빛을 전혀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 카메라의 렌즈처럼 생명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떤 광채나 희미한 빛조차도 그 눈에는 나타나지 않았으며, 살아 있는 흔적이라고는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보지 못할 눈이었다. 바로 그 눈이 조나단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비둘기》 중
지난 30년 동안 아침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오후에는 2시 반부터 5시 반까지 은행 앞에서 차려 자세를 하거나 지점장의 승용차나 현금을 운반하는 방탄차를 통과시키면서 경례를 하는 단순한 업무를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해왔던 조나단은 경비원이 스핑크스 같다는 생각을 해왔다. 스핑크스의 '내가 너를 막을 수 없지만 넌 반드시 나를 통과해야 한다.'는 '상징적인 권위에 대한 자각'으로 조나단은 30년도 넘는 시간을 은행 앞 대리석 계단 위에서 버틸 수 있었다.
비둘기. 하지만 비둘기를 만난 아침부터 조나단은 스핑크스적인 평화를 유지할 수 없었다. 몸의 중심을 제대로 잡을 수 없고 몸은 점점 가려워지며 그는 자신의 몸과 육체가 엉망으로 변해간다고 생각했다.
점심시간이 되어도 그는 평소처럼 방으로 돌아가 따뜻한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없었다.
'똥과 바람에 하늘거리는 작은 깃털에 둘러싸인 채 빨갛고 갈퀴발톱처럼 구부러진 발로 복도 끝에 앉아 있을 비둘기' 때문이었다.
조나단은 달팽이 모양의 빵과 우유팩을 들고 공원에 앉았다. 건너편 벤치에는 오래전부터 조나단과 같은 거리에서 마주치는 거지가 식사를 마치고 만족스러워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건너편 벤치에 있는 거지는 식사를 다 마친 모양이었다. 정어리를 다 먹어치운 다음 빵과 치즈와 배와 과자도 먹었고, 포도주를 크게 한 모금 들이키고는 속까지 시원할 것 같은 트림을 토해 냈다. 그리고는 잠바를 돌돌 말아 베개를 만들어 그 위에 머리를 얹더니 배부르고 게으른 육신을 벤치의 길이대로 쭉 뻗고 오수를 즐길 자세를 취했다. 그는 이내 잠이 들었다. 참새들이 팔딱거리며 다가와 빵 부스러기들을 쪼아먹으며 뒤뚱거렸다. 참새들을 따라온 몇 마리 비둘기도 그의 벤치 주위로 가서 뱉어 낸 정어리의 머리를 까만 주둥이로 연신 쪼아 댔다. 거지는 새들이 그래도 꿈쩍 안 했다. 깊게 그리고 아주 평안하게 잠을 잘 뿐이었다.
-《비둘기》 중
조나단은 오래전부터 지켜보던 거지가 인생을 즐길 줄 아는 것처럼 보였고, 그에 비해 자신은 평생 착실하고 단정하고 성실하게 돈을 벌고 아끼며 살아왔던 자신의 인생은 답답해 보였다. 그러다가 문득 '일생 동안 마음이 평안한 작은 공간을 갖는 것 말고는 절대로, 결코 더 이상의 것을 바라지 않았건만' 비둘기 때문에 인생의 계획이 무산될 위기에 빠졌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고 두려워진다. 비둘기 때문에 방에서 나와 호텔을 전전하다 빈털털리가 되고 은행에서 해고되고 결국은 거리를 떠돌다가 벤치에서 잠든 거지처럼 되어버릴 것 같은 비극적인 모습이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그래서 퇴근을 한 뒤 그는 미리 예약해 둔 호텔 방에 가면서 거지가 먹었던 것과 같은 음식을 잔뜩 사고 그 음식을 먹은 뒤 자살을 결심한 것이다.
호텔 방에서 잠든 조나단은 한밤중 유리창과 벽을 두들기는 듯한 천둥소리와 거센 빗소리에 잠에서 깬다. 그는 모든 것이 끝나간다는 생각을 하다 갑자기 모든 소리가 잦아든 침묵 속에서 공포를 느낀다. 자신 이외의 것은 모두 사라져버린 것처럼 느껴지는 침묵은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조차 불확실하게 만든다.
조나단은 불안에 사로잡혀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손에 잡히는 매트리스를 움켜잡으며 이곳이 '부모님이 살던 집의 지하실'이라는 생각에 빠진다. 그는 '왜 아무도 나를 구출해주지 않는 걸까?'를 생각하다가 소리를 지르기 직전 이런 생각까지 한다.
'다른 사람들이 없으면 나 혼자서는 절대로 살 수가 없단 말이야!'
도대체 누구의 방이란 말인가? 그것은 분명 그의 방이 아니었다! 평생 동안 그런 방에서는 살아본 적이 없었다! 그의 방에는 창문이 침대 발치 쪽에 있고, 천장에 닿을 만큼 그렇게 높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친척 아저씨네 집에서 살았던 방도 아니고, 샤랭통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집에 있던 방도 아니었다. 아니, 그것은 어렸을 때 쓰던 방이 아니라 지하실, 정말 부모님이 살던 집의 지하실 같았다. 어른으로 성장했다는 것과 파리에서 늙어빠진 경비원이 된 것은 다 꿈이고, 어린아이가 되어서 집의 지하실에 갇혀 있는 것이 사실 같았다. 밖에는 전쟁이 나서 집은 파괴되었고 사람들은 그를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비둘기》 중
혼자만의 방에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평생을 살았던 조나단에게 지금까지와는 180도 다른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아침에 복도에 내려앉은 한 마리 비둘기 때문에 방에 돌아가지 못하고 호텔방에서 마지막 식사를 하고 자살을 생각했던 조나단.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지나친 간섭도 싫어서 혼자만의 틀에서 30년 동안 쳇바퀴 돌듯 살아온 그가 '살기 위해' 드디어 '다른 사람'을 필요로 했다.
다행히 호텔 방에서 먹었던 식사는 조나단의 마지막 식사가 되지 않을 것 같다.
자신의 방이 있던 복도에 비둘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고 바닥의 오물과 붉은색 타일 위의 깃털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으니 자살의 이유는 사라졌다.
별개로 조나단이 24호실에 계속 살 것인지는 모르겠다. 더 이상 '온전하게 자기 혼자만의 소유'인 방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