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맛이 흐르는 달콤한 자두맛 캔디
손원평 <아몬드>
두 사람이 자두맛 캔디를 좋아하는 이유는 좀 유별났다. 그 사탕은 '단맛과 피 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다. 오묘하게 반짝이는 흰 바탕에 빨간 줄이 쓰윽 그어진 자두맛 캔디. 그걸 입 안에서 굴리는 건 둘의 소중한 즐거움 중 하나였다. 그 빨간 줄은 유독 빨리 녹아서 먹다 보면 혀를 베기 일쑤였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게 말이야, 짭조름한 피 맛이 단맛이랑 어우러지는 게 그럴듯하거든.
엄마가 오라메디를 찾을 동안 할멈은 사탕 봉지를 품에 안은 채 환하게 웃으며 말하곤 했다. 할멈의 얘기는 이상하게 몇 번을 들어도 지루하지 않았다.
-<아몬드> 중
자두맛 캔디를 처음 맛보았던 날을 기억한다. 여름방학이 되기 며칠 전, 목요일 5교시 음악시간이었다. 훅훅 찌는 더위가 교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점심을 먹은 뒤라 무척 졸렸는데, 그날따라 자장가 비슷하게 고요한 노래를 배우고 있어서 더 졸렸다. 음악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두성과 가성 사이의 어딘가를 헤매면서 점점 더 무거워지는 눈꺼풀 사이로 전날 꾸다 깼던 꿈의 후반부가 시작됐다. 눈이 감기고 꿈이 밀려들어오고 고개가 심하게 꺾이려는 순간, 누군가 팔을 툭툭 쳤다. 눈을 겨우 뜨고 쳐다보니 옆에 앉아있던 (지금은 이름도 얼굴도 생각나지 않는) 같은 반 아이였다. 그 아이는 내게 사탕 하나를 건넸다. 자두맛 캔디였다. 나는 입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책상 밑에서 사탕 봉지를 벗겼다. 기온이 높은 날씨에 그 아이의 주머니 속에서 녹기 시작한 사탕은 봉지에 붙어 잘 떨어지지 않았다. 겨우 봉지를 떼내었을 때 내 손은 끈적끈적해졌다. 음악선생님의 눈을 피해 사탕을 입에 넣었다. 살짝 녹은 표면은 이로 갉아내자 낡은 각질처럼 혀로 떨어져 녹아서 사탕의 단단한 알맹이는 작아졌다. 나는 사탕을 입안에서 굴려가며 먹었다. 복숭아와 자두가 뒤섞인 맛이 혀를 자극하며 잠을 깨웠다. 노래를 불러야 하는데 입을 제대로 벌릴 수 없었다. 입만 작게 벙긋거리며 노래를 부르는 척하는 동안 입에 침이 고였다. 소리가 크게 날까 봐 참고 있다가 음악선생님이 피아노에 앉는 순간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자두맛 사탕의 단물이 한꺼번에 식도를 타고 넘어왔다. 밀려들어오던 꿈을 깨웠던 것처럼 달콤하고 씁쓸한 맛이었다.
<아몬드>에서 자두맛 캔디는 피맛과 단맛이 어우러지는 맛으로 표현된다. 이 소설적으로 인생을 하나의 자두맛 캔디로 표현한다면, 그 안에는 고통스러운 맛과 달콤한 맛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소설에서 자두맛 캔디는 행복과 불행이 동시에 일어나는 순간에 자주 등장한다.
자두맛 캔디는 윤주인공 윤재의 열여섯 생일에 처음 나온다. 윤재의 생일은 크리스마스이브였다. 할머니와 엄마는 윤재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많은 인파로 붐비는 시내까지 나와 저녁을 먹기로 한다. 십 년 만에 찾아온 화이트 크리스마스였고 윤재의 생일이었으니 축하할 이유는 충분했다. 세 사람은 냉면집에 들어가 사이다 맛이 나는 냉면과 탄내가 나는 왕만두를 시켜먹는다. 시종 미소를 짓고 있는 할머니와 엄마는 윤재에게 "태어나줘서 고마워."라고 말한다. 식사를 마친 뒤 할머니와 엄마는 먼저 바깥으로 나갔고, 윤재는 카운터 옆에 놓인 자두맛 캔디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직원이 새 사탕 봉지를 가져와 바구니에 쏟아붓자 윤재는 두 주먹 가득 사탕을 움켜쥐었다. 함박눈이 내리고 캐럴이 울려 퍼지는 그 순간 한 남자가 사람들을 향해 양손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남자의 한 손에는 칼, 다른 손에는 망치가 들려 있었다. 남자는 망치로 엄마의 머리를 내리찍었고 칼로 할머니의 배를 찔렸다. 윤재는 밖으로 나가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할머니가 문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와 할머니가 당하는 동안 모두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날 할머니는 죽었고 엄마는 식물인간이 되었다.
그날 남자는 범행을 저지르기 위해 유서를 써놓고 나왔다고 한다.
"오늘 누구든지 웃고 있는 사람은 나와 함께 갈 것입니다."
윤재의 생일이자 크리스마스이브에 할머니의 죽음과 엄마의 의식불명이 동시에 일어났고 그 순간에 자두맛 캔디가 있었다
윤재는 태어날 때부터 머릿속의 아몬드라 불리는 편도체가 작아서 감정을 잘 느끼는 못한다. 남들이 자연스럽게 느끼는 감정에 대해 이해하지 못해 학습을 통해 익혀야만 한다. 엄마는 '희노애락애오욕'이라는 감정을 글자에 인쇄해서 가르치고 상황별로 가이드라인을 설정하고 반복해서 감정을 연습시킨다. 윤재는 엄마의 학습에 따라 조금씩 평범의 범주에 비슷하게 들어오는 듯했지만 다양한 변수를 지닌 사람의 감정에 대처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혼자가 된 후 윤재는 2층 빵집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엄마가 운영하던 1층 헌책방을 계속 운영한다. 윤재는 학교에서 돌아오며 엄마가 입원한 병원에 들르고 책방을 지키는 일상을 반복한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에서 아내의 곁을 지키던 윤교수의 부탁으로 아들 노릇을 한다. 그 뒤로 윤교수의 진짜 아들인 곤과 얽히게 된다. 곤은 어릴 적 잃어버렸다가 최근 다시 찾은 윤교수의 아들이고 어린 시절부터 여기저기 떠돌아 살아서 불안정한 상태다. 실제로는 약하면서 강해 보이려고 걸핏하면 욕을 하고 폭력을 썼다. 곤은 감정에 민감한 아이였다. 그래서 아무런 감정도 못 느끼는 윤재에게 더 집착했다.
곤이는 나를 매섭게 쏘아봤다. 그러곤 이를 악물더니 남아 있던 나비의 한쪽 날개마저 떼어냈다. 표정이 변하는 건 내가 아니라 곤이 쪽이었다. 눈썹이 눈에 띄게 움찔거리기 시작했고 비웃듯 올라갔던 입술은 이빨에 꽉 물려 있었다.
-어때. 이제 좀 맘이 움직이냐? 이래도 불편해 보이기만 하냐고. 그게 네가 느끼는 전부냐고.
곤이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이제는 아플 거라고 생각해, 몹시. 근데 불편해 보이는 건 너다.
-그래, 난 이런 거 좋아하지 않거든. 화끈하게 패든가 죽여 버리는 게 낫지. 이런 식으로 미적거리면서 고문하는 거 아주 질색이다.
-그럼 왜 하는데. 난 어차피 네가 원하는 걸 보여 줄 수가 없어.
-닥쳐. 병신아.
-<아몬드> 중
곤이는 자신을 쉽게 판단하지 않는 윤재를 자주 찾아왔고 나중에는 윤재가 곤을 찾아간다. 둘은 자주 만났지만 너무 달랐다. 하지만 윤재는 곤은 단순하면서 연약했지만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뭉쳐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원래부터 문제아로 낙인찍혔던 곤은 학교에서 더 평가가 나빠졌고 그로 인해 더 나빠지기로 결심한 듯 그런 행동들만 해나갔다.
겨울이 시작되었을 무렵 수학여행 도난 사건을 계기로 학교에서 사라져 버린다. 윤재는 곤을 찾아 나섰고 항구도시의 시장 골목에 있는 더럽고 낡은 방에 웅크리고 있는 곤을 구하기 위해 행동한다. ....윤재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병원에서 깨어난다. 그동안 꿈을 꾼다.
누워 있는 동안 같은 꿈을 자주 꿨다. 운동회가 한창인 운동장이다.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태양 아래 나와 곤이가 서 있다. 무척 뜨겁다. 앞에서 달리기 시합이 펼쳐지고 있다. 곤이가 씩 웃으며 내 손에 뭔가를 쥐여 준다. 손을 펼치자, 반투명한 구슬이 손바닥 위를 도르르 구른다. 중간에 웃는 표정 같은 둥근 선이 붉은색으로 그어져 있다. 구슬을 굴리자 붉은 선이 방향을 바꾸며 울었다 웃었다 한다. 자두맛 사탕이다.
사탕을 입 안에 넣는다. 달콤하고 새콤하다. 침이 고인다. 혀로 사탕을 굴린다. 이따금씩 사탕이 이빨고 부딪혀 딱딱 소리를 낸다. 갑자기 혀가 저릿하다. 짭짜름하고 시큰하다. 비리기도 하고 쓰기도 하다. 그 사이로 다디단 향이 올라와 나는 정신이없이 코를 킁킁댄다.
-<아몬드> 중
두번째이자 마지막 자두맛 캔디가 나오는 부분이다. 혼수상태에 빠져있던 윤재는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꾼다. 운동회. 곤이 쥐어준 자두맛 사탕. 윤재는 사탕을 입에 넣고 그 맛과 그 향을 '느낀다.' 꿈의 다음은 출발 신호가 울리고 곤과 윤재가 달리기를 시작하는 장면이다. 꿈에서 윤재는 이렇게 말한다.
"시합이 아니라, 그저 달리기다. 우린 그냥 몸이 공기를 가르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만 하면 된다."
소설을 읽다 보면, 메마른 감정의 사막 같던 윤재의 마음에 할머니의 죽음 이후 일어난 일들과 만난 사람들 속에서 조금씩 비가 내려 촉촉하게 적셔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곤과의 만남에서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고 도라와의 만남에서 생전 처음 느껴보는 떨림을 '느끼게' 된다. 종이에 적고 연습하여 배운 학습된 감정이 아닌 사람들과 직접 부딪힘으로써 체득한 감정들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의식을 차렸을 때 윤재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일단 죽음에서 돌아왔고 처음부터 없다고 여겨왔던 감정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식물인간이었던 엄마가 깨어났다.
행복과 불행이 함께 찾아올 때마다 이중의 맛을 내던 자두맛 캔디는 마지막에 윤재가 죽음에서 살아나면서 처음부터 결핍되어 있었다고 생각했던 감정 또한 탄생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장치로 사용되었다.
한동안 자두맛 사탕을 자주 먹었다. 그러다 입천장이 너무 까져 피맛이 느껴진 뒤로 다른 사탕을 먹었다. 부드럽고 달콤한 맛만 나는. 다른 사탕을 먹는 동안에도 나는 자두맛 사탕의 이중적인 맛을 기억해냈다. 피맛과 단맛이 섞인 묘한 맛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