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기록의 증표로 남은 진흙빵

김동식 <회색인간>

by 페이지

영화 <설국열차>에서 주인공 커티스가 했던 고백을 듣고 일시정지했던 기억이 난다. 지구가 얼어붙었고 겨우 열차에 올라탔는데, 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기차칸에 갇혀버린 것이다. 열차 운영진은 그들에게 마실 물을 조금 줄 뿐 음식은 없었다. 결국 그들은 서로를 잡아먹기 시작한다. 노약자와 여성이 대부분 희생되었다. 커티스는 심장을 쥐어짜는 심정으로 나머지를 고백한다. 그때 어린아이의 살점이 가장 맛있었다고. 어린아이를 뺏기 위해 아이 엄마를 죽였다고. 그때 자신은 가장 적극적으로 살인을 했었다고. 그때 한 노인이 자신의 팔을 잘라 내밀었다. 이걸 먹고 아이를 살려달라고. 그 뒤 커티스는 살육과 식인을 멈추었다. 자신이 인간임을 다시 깨우친 것이었다.




그 무엇보다 형편없었던 것은 먹을 것이었다.

지저 인간들이 제공한 음식은 진흙 맛이 나는 말라비틀어진 빵이었다. 사실 맛은 상관없었다. 그보다는 양이 문제였다. 음식량이 매번 턱없이 부족했다. 사람들은 단 한 번도 배가 불러본 적이 없었고, 단 한순간도 배가 고프지 않은 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지쳐 있었고, 항상 배고파 있었다.

그런 사람들 사이엔 웃음이 없었다. 눈물도 없었다. 분노도 없었다. 사랑도 없었고, 여유도 없었고, 서로를 향한 동정도 없었으며, 대화를 나눌 기력도 없었다.

-<회색인간> 중


소설 속 세계에는 지상에 사는 인간과 지하에 사는 지저인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어느 날 지저 인간들은 대도시에서 만 명의 사람들을 하룻밤 사이 납치했다. 지저 인간들은 마음만 먹으면 지상 인간을 한순간에 멸망시킬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납치한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지저세계가 꽉 찼으니 자신들이 살아갈 땅을 파줘야 한다'라고 한다. 사람들이 반발하자 지저 인간들은 지상으로 진출하지 않는 대가라고 하면서 '너희의 노동력으로 지상 인류가 구원받았으니 영웅'이라는 헛소리를 했다.

사람들이 반발하자 지저 인간들은 웅얼거리는 것만으로 사람들의 머리에 고통을 주었다. 지저 인간들에게는 그런 능력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은 곡팽이 하나로 땅을 파야만 했다. 처음에는 반기를 들며 탈출을 시도했지만 머리가 수박처럼 터져나가는 참혹한 결과를 맛보게 된다. 사람들은 더 이상 꿈꾸지 않았고 체념했고 강제 노동을 받았들였다.

사람들은 집도 화장실도 옷도 없었고 마실 물도 부족해서 오줌을 받아 마셔야만 했다. 그중에서도 음식이 부족한 것이 가장 힘들었다. 지저 인간들은 '진흙 맛이 나는 말라비틀어진 빵'을 제공했다. 그마저도 턱없이 부족했다. 지치고 배고픔의 연속에서 사람들은 사람다운 감정을 잃어갔다.


사람들은 모두 마치, 회색이 된 듯했다.

그것이 흩날리는 돌가루 때문인지, 암울한 현실 때문인지는 몰라도, 사람들은 무표정한 회색 얼굴로 하루하루를 억지로 살아가고 있었다.

-<회색인간> 중


다치고 병들고 자살하고... 무엇보다 배고픔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사람들은 나무로 되어 있는 곡괭이의 자루 부분을 씹어먹을 정도로 배가 고팠다. 남의 곡괭이 자루를 훔쳐 먹다가 곡괭이에 찍혀 죽은 사람이 생겨나도 지켜보는 사람들은 모두 '죽어도 싸다'라고 생각했다. 만 명의 사람들은 절반으로 줄어들었을 즈음, '땅을 많이 판 사람이 우선적으로 빵을 먹는다.'는 암묵적인 룰이 생겼다. 아직 희망이라는 것을 믿고 있었지만, 시간이 더 흐르자 사람들은 감정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하는 회색인간처럼 변해버렸다.


회색인간들의 입은 말을 할 줄 모르는 것 같았고, 귀는 듣지 못하는 듯했고, 눈은 그저 죽어 있는 것만 같았다.

인간들을 살아있는 송장이라고 표현하기에도 아쉬웠다. 이곳을 무의미의 지옥이라고 부르기에도 아쉬웠다.

-<회색인간> 중


어느 날 한 여인이 노래를 부르다 따귀를 맞았다. 사람들은 미친 여자라고 생각했다. 여인은 쓰러졌다 일어나 다시 노래를 불렀다. 누군가 돌을 던졌고 여인은 머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그날 다른 남자는 몰매를 맞았다. 벽에 돌멩이로 그림을 그렸다는 죄목이었다. 사람들은 분노했다. 땅을 파기에도 모자랄 힘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었기 때문이다.


지상에서 노래를 부르던 사람이든, 그림을 그리던 사람이든, 소설을 쓰던 사람이든, 이곳에서 예술은 필요가 없었다. 인간이란 존재가 밑바닥까지 추락했을 때, 인간들에게 있어 예술은 하등 쓸모없는 것이었다.

-<회색인간> 중


그럼에도 여전히 인간의 감정과 예술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멈추질 않았다.

여인은 다시 노래를 불렀다. 돌이 날아왔고 여인은 쓰러졌다. 노래를 부르고 돌에 맞아 쓰러지기를 반복하던 중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누군가 빵을 준 것이다. 그다음 날에도 누군가가 여인에게 빵을 가져다주었다. 여인은 노래를 불렀고 빵을 먹었다. 신기한 일은 계속되었다.

한 노인이 벽에 그림을 그리다가 돌에 맞았던 화가에게 자기 몫의 빵을 주었다. 노인은 이곳의 모습을 그려달라고 했다. 그때 옆에서 자신을 소설가라고 말하는 청년이 중얼거렸다. 자신은 이곳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써낼 수 있다고. 그에게 중년 여인이 다가가 '내가 얼마나 배가 고픈지 네가 써낼 수 있냐'라고 물었다. 청년은 중얼거렸다.


"그녀는 정말로 배가 고팠다. 정말 정말로 배가 고팠다. 그녀가 얼마나 배가 고팠냐면, 그녀의 사랑하는 아들이 죽었을 때, 그녀는 아들의 죽음을 숨기고 싶었다. 지저 인간들이 아들의 시체를 회수해가기 전, 아들의 손가락 하나라도 뜯어 먹고 싶었다. 아들의 귓볼 한 입이라도 베어 먹고 싶었다. 그녀는 그 정도로 배가 고팠다. 정말, 정말로 그녀는 배가 고팠다."

-<회색인간> 중


여인은 청년에게 자기 몫의 빵 한쪽을 떼어주며 '너는 살아남아서 우리의 이야기를 세상에' 남겨주라고 부탁했다. 그 뒤로 청년에게 두 여인이 더 찾아왔다. 여인들은 자신의 이름과 가족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진흙빵 한 덩이씩을 쥐여주었다. 청년은 정말 배가 고팠지만 그 빵을 쉽게 먹지 못하였다. 빵이 지닌 무게를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여인들의 말을 잊지 않기 위해 계속 되뇌었다.

여인이 노래하고 화가가 그림을 그리고 소설가가 모든 일을 기억하기 시작한 이후, 사람들은 조금씩 변했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고 여전히 배가 고팠지만 더 이상 그들은 회색이 아니었다.


처음 김동식 작가의 <회색인간>을 읽을 때 단순하고 명료함에 푹 빠졌다.

단편소설보다 짧았고 이야기가 기묘한 방식으로 재미있어서 빠른 속도로 금세 다 읽었다. 그렇게 쉽고 재미있게 읽었는데 책을 덮자 수많은 인간들의 모습이 머릿속을 떠돌았다.

쉽게 읽어도 쉽게 덮지 못하는 책.

내가 살아가는 것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 그 안에 있었나보다.


'사람다움이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인가?' '누구를 살릴 것인가?'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윤리와 공정의 문제는 개개인에게 선택의 주사위를 던진다.


표제작인 <회색인간>에 대해 줄거리로 말하자면 단순하고 쉽다. 짧게 끊어지는 문장들 사이에서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면 머뭇거릴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만 명이 모이면 만 개의 생각과 만 개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만 명의 삶이 밑바닥까지 추락했을 때, 그 생각들과 가치관은 하나의 방향으로 모아질 가능성이 크다.

불행하게도 좋지 않은 쪽으로.


<회색인간>에서 사람들은 처음에 좋지 않은 쪽으로 흘러가 인간다움을 상실했다. 하지만 여인의 노래가 울려퍼지는 사이 회색인간들의 마음에서 무언가 깨져갔다. 회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가수, 화가, 소설가에게 진흙빵을 나누어주기 시작했다. 노래하고 그리고 쓰는 행위를 통해 그들이 이 세상에서의 겪었던 모든 일을 기억하여 각자의 방식으로 진실되게 기록해주기를 바랐다.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고통을 겪었던 이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들이 겪었던 일을 역사나 사회가 잊는 것이다. 또한 그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털어놓으며 말할 수 없어 침묵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보가 넘치는 시대에 살고 있는데 이상하게 망각하는 속도는 더 빨라지고 망각하는 내용은 더 많아진다.

사회에서 역사에서 잊혀지고 침묵을 강요당할 때 사람은 어떻게 해야하나.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폴 발레리의 말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무엇부터 해야할지 기억하고 기록하고 행동해야 할 것이다.


회색인간은 특정한 계층이나 특정한 지역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상황에 따라 회색인간처럼 변해갈 수도 있다. 그럴 때 나는 빵을 건넬 수 있을까. 신은 어떠한지. 회색인간의 의미가 건네는 빵의 의미가 더욱 절실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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