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내리던 비가 저녁이 되면서 잦아들었다. 우유를 사러 마트에 가는 길에 울음소리를 들었다. 평소처럼 그러려니 하고 지나가기에는 몹시도 크고 무거운 울음이었다. 길을 가다가 멈춰선 사람들의 시선이 향한 곳은 버스정류장. 버스를 기다리며 서있는 대여섯 명의 사람들 사이로 정류장 의자에 앉은 여자가 보였다. 얼마나 앉아있었던 걸까. 목덜미까지 내려온 머리카락과 보라색 티셔츠의 양쪽 팔이 젖어있었다.
여자는 사람들의 시선과 몰아치는 비, 젖은 옷과 머리카락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는 듯 천가방을 끌어안고 온힘을 다해 울었다. 울음보다는 통곡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울음이 무거워지면 통곡이 되는 법이니. 여자는 몸 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울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길에서 우는 여자를 보는 것은 처음이다. 어른들은 길에서 잘 울지 않으니까. 눈물만 흘리는 정도의 울음이라면 모를까, 통곡처럼 쏟아지는 울음을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울 수 밖에 없는 상황과 장소에서는 마음 놓고 우는 사람도 사람들이 많은 길에서는 쉽게 울지 못한다. 혼자만의 공간을 찾기 전까지는 울음을 참는다. 하지만 슬픔의 강도가 너무 높아 통제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버린다면. 그때는 울 수 밖에. 다른 방법이 없을 것이다.
여자의 울음은 점점 더 높아졌다. 5분 간격으로 도착하는 버스를 타고 사람들이 떠나가는 동안에도 여자는 울고 있었다. 울음의 벽에 갇혀버린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아서 더 위태로워보였다. 괜찮냐고 물으며 어깨에 손을 얹으면 무너져내릴 것만 같았다.
작년에 오목교역에서도 이처럼 통곡의 무게를 지닌 울음을 들은 적이 있다. 지하철에서 내려 계단을 올라 출입구를 향하는 통로를 따라 이동하던 참이었다. 뒤쪽에서 누군가 크게 울기 시작했다. 돌아보니 안경을 쓴 키가 큰 남자였는데, 백팩을 메고 앞으로 걸어오면서 계속 울었다. 서른 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무슨 일로 저렇게 울음을 터뜨리는 걸까 싶었지만 무빙워크에 올라선 나는 한번 더 돌아볼 여유 없이 앞으로 걸어가기 급급했다.
어떤 울음은 사람을 가두고 어떤 울음은 사람을 누른다. 울음 속에 갇힌 사람은 단절 속에서 고립되고 울음의 무게에 눌린 사람은 압박 아래서 질식한다. 울음은 슬픔을 증명하는 것이기에 슬픔이 가라앉을 때까지 멈출 수 없다.
나는 여자의 울음을 지나 마트로 들어갔다. 유통기한을 살펴 우유를 고르고 울음이 긋기를 기다리는 시간에 대해 생각했다. 체한 듯 가슴이 답답해져 콜라를 바구니에 담았다. 마트에 10분 정도 머물렀을까.
밖으로 나왔을 때 울음은 사라지고 없었다. 버스정류장에는 휴대전화를 보거나 수다를 떨며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몇이 있을 뿐이었다. 비가 들이쳐서인지 의자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다. 여자가 앉아있던 의자 가까이 가보았다. 그곳은 다른 곳에 비해 덜 젖어있었다.
여자의 울음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집에 돌아와서도 '내 귀를 지나서도 변함없이 울음의 왕국에' 있을 여자의 울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마트에서 사온 우유와 콜라를 냉장고에 넣으려다 우유만 넣고 콜라를 따서 마셨다. 너무 급히 마셔 머리가 지끈거리면서 눈과 코에 알싸한 기운이 돌았다. 슬픔을 통과하지 않은 생리적 눈물이 돌았다. 여자의 울음은 어디로 갔을까. 버스를 탄 여자를 따라 집으로 들어가 더한 무게로 쌓여가고 있는 중일까. 그 여자의 울음과 만난 오늘은 장마가 시작되는 날이다.
나는 그 여자가 혼자/ 있을 때도 울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내가 혼자 있을 때 그 여자의/ 울음을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 여자의 울음은 끝까지/ 자기의 것이고 자기의 왕국임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그러나 그 여자의 울음을 듣는/ 내 귀를 사랑한다/(‘그 여자의 울음은 내 귀를 지나서도 변함없이 울음의 왕국에 있다.’ / 정현종의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