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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지 Jul 02. 2020

블로그, 빈방 없습니다.

블로그는 나의 것

 이메일을 확인해서 답장을 보내고 오랜만에 메일함 정리를 했다. 하루 한두 번 열어보는 메일함에는 정작 중요한 메일은 별로 없고 뉴스레터, 보험 자동이체 결과, 신용카드 결제내역, 인터넷쇼핑 주문 접수, 도서관 대출도서 연체 등의 안내 메일과 광고성 메일이 들어차 있다. 특히 블로그 임대를 해달라는 메일은 하루에 2개에서 4개까지 올 때도 있다.

  처음 네이버 블로그를 시작할 때가 2011년 5월이니 벌써 9년이 되었다. 아이러브스쿨과 싸이월드를 지나 카카오스토리로 소통의 장이 바뀌었을 때 나는 명칭만 바뀌었을 뿐 기본적인 틀은 고스란히 이어가는 새로운 놀이터에 좀 질려있었다. 맛집과 육아를 공유하며 신나게 공감하고 댓글을 달며 수다를 떠는 일은 즐거웠으나 한 장의 사진을 위해 일상을 인위적으로 설정하는 노력이 계속될수록 허전함이 더 컸다.

카카오스토리에서 슬쩍 발을 빼내면서 멀어져 갈 때 네이버 블로그가 눈에 들어왔다. 나를 밝히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로 채워가는 공간. 나를 아는 사람들의 공간에서는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편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블로그를 처음 시작할 때 어떻게 하는지 몰라 헤맸던 기억이 난다. 스킨과 글꼴 배경화면 같은 기본 틀을 지어놓은 다음 카테고리 설정에 들어갔을 때 한참 망설였다. 어떤 이야기를 적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카테고리에 제목을 붙일 수 없었다. 내가 가장 자주 재미있게 적을 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책 이야기'라는 카테고리를 하나 만들었고, 그다음에는 '영화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렇게 살림 모으듯 카테고리를 늘려가며 이어나갔던 블로그 활동을 2년 정도 열심히 하다가 바쁘다는 핑계로 방치해두고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들어가 보지도 않았던 블로그에 가끔 들어가면 누군가 오래전에 남겼던 댓글이나 이웃신청이 보였다. 답글을 달기에도 이웃신청 수락을 누르기에도 너무 늦어버려서 미안했다.


 작년 봄, 블로그에서 찾아볼 것이 있어서 들어갔다가 흘러나오는 배경음악이 좋아서 한참 듣고 있었다. 옥상달빛의 '수고했어 오늘도'와 에픽하이의 '커피', 에피톤 프로젝트의 '환절기', 브로콜리너마저의 '유자차'. 블로그의 시작을 함께 했던 노래들이다. 

카테고리에 있던 글들을 하나씩 읽어보며 시간이 참 많이 흘렀다는 걸 실감했다. 그리고 다시 블로그에 글을 쓰기로 했다. 처음 시작했을 때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글을 써나갔다. 배경음악은 그대로 두었고 닉네임만 바꾸었다. '책 이야기' 카테고리에 글이 조금씩 쌓여갔다. 일상이야기에도 글이 늘어갔고 새로운 카테고리를 추가하기도 했다. 다시 시작한 블로그에 애정이 붙을 즈음 블로그 임대에 대한 이메일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독서 감상이나 영화 감상 같은 소소한 기록을 남기는 블로그, 하루 평균 방문자가 이제는 두 자릿수에서 맴돌고 있는 블로그로 홍보를 하겠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블로그 마케팅에 대해서 들어본 적은 있어도 아는 바는 없다. 블로그로 홍보를 하려는 생각이 없었으니 관심도 없었다. 내게 이메일을 보낸 업체들은 대부분 '선입금' '100만 원-350만 원 사이'  '법적문제 없음' '계약서 송부'라는 문구와 함께 자신들이 직접 운영하고 싶으며 함께 일할 생각이 있으면 카톡이나 전화를 달라고 했다. 신종사기인가 싶었는데 블로그 운영자들에게 수시로 오는 이메일이라고 했다. 이렇게 블로그를 임대해달라는 내용의 이메일 때문에 아예 블로그를 닫고 브런치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블로그 마케팅 섭외팀'이라는 문구가 붙은 메일을 볼 때마다 나는 열심히 지운다. 스팸신고를 하고 삭제한다. 그래도 다음날이 되면 블로그를 임대해달라는 이메일이 도착해있다. 얼마나 많은 이름으로 마케팅 섭외를 하고 있기에 스팸으로 차단을 해도 또다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보내고 있는걸까.



 오늘도 블로그 마케팅 이름으로 온 이메일을 스팸신고하고 삭제했다. 나는 내 블로그를 누군가에게 임대해줄 생각이 추호도 없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내 시간의 기록이 담긴 소중한 공간을 병원과 식당과 화장품을 홍보하는 영업장으로 전락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쿨하지 못한 옛 애인이 한밤에 보내는 "자니?"라는 메시지처럼 끊어내도 계속되는 블로그 마케팅의 이메일을 쿨하게 끊어내는 목요일 오후 네 시. 이런 답장을 보내려다 그만둔다. "블로그 임대하지 않습니다." "흘러가는 기록을 담기에도 부족한 블로그에 당신들의 글을 담을 방은 없습니다."

 방문자도 별로 없는 작은 블로그, 내게는 바꿀 수 없는 시간으로 가득한 소중한 공간이다. 내일도 모레도 내 공간을 빌려달라는 제안을 열심히 지우고 쿨하게 끊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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