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에 비친 세상을 좋아했다. 빛이 반사되어 경계를 넘어오는 순간 나는 눈을 감았다가 뜨곤 했다. 똑같은 세상인데도 거울 속에서는 어딘가 달라보였다. 고개를 돌리면 전날과 다름없이 다소 남루하고 지루한 일상이 펼쳐져있었다. 하지만 거울로 들어간 일상은 빛과 색을 달리하며 경계를 넘나들었다. 내가 속한 시공간을 넘어서는 이야기가 숨어있을 것만 같았다. 거울에 나를 비추는 일은 거의 없었다. 경계에서 이쪽과 저쪽을 지켜보며 세계의 질감이 미묘하게 변하는 순간들을 지켜보는 일이 즐거웠을 뿐이다.
어릴 적 안방에는 엄마가 쓰던 흑단 경대가 놓여있었다. 흑단 자체의 무게에 서랍이 두 개나 달려있는 경대는 꽤나 무거웠다. 내 기억에 당시 우리집에는 두 개의 거울이 있었다. 마루에 놓인 커다란 전신거울과 엄마의 흑단 경대. 거울에 들어간 하늘이 보고 싶었던 나는 경대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서랍을 빼어놓고 거울을 세워 품에 안았다. 거울이 위를 향하도록 방향을 맞춘 다음 조심조심 걸었다. 안방의 어두운 천장이 보였고, 몇 발자국 뒤에 마루의 높은 나무천장이 보였다. 발을 내딛을 때마다 거울에 비친 천장을 밟고 있는 것 같아 다음 발을 떼기가 두려웠다. 경대를 안고 높은 마루에서 마당으로 내려섰다. 거울에 조각구름이 찍힌 파란 하늘이 보였다. 내가 서있는 마당에서 올려다본 하늘과 거울에 비친 하늘은 달랐다. 발을 내딛으면 풍덩 빠질 것처럼 거울 속 하늘은 깊었다. 손을 뻗으면 사라지는 하늘을 품에 안고 나는 조금씩 발을 내딛었다. 처음으로 ‘하늘을 걸었던 날’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거울이야기가 길어졌지만 사실 거울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거울에 비친 세상, 그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 그 시선이 말하는 것을 그려내고 싶은 마음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매끄럽고 차가운 거울의 표면을 만져보며 그 안에 담고 있는 것들이 무엇일지 오랫동안 궁금했다. 살아오면서 해야 할 말이나 하고 싶은 말을 삼킬 때마다 거울의 표면을 떠올리는 일이 많아졌다. 하지 못한 말이 너무 차올라 숨을 쉬기 힘들 정도가 되면 거울의 표면을 긁어냈다. 물론 실제가 아니라 거울이야기처럼 상상 속에서 만들어내는 것이다.
거울을 긁어내면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생겨났다. 그리고 가느다란 자국이 남았다. 시간을 들여 반복하면 소리와 자국의 밀도는 높아져서 불쑥 찾아온 단어, 서투른 문장, 어설프게 찍은 마침표를 만들어내곤 했다. 아무런 일도 벌어지고 있지 않았던 세계의 표면을 긁어내어 속살을 들추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단조로운 일상을 반복하는 사이마다 나는 거슬리는 소리와 자국을 찾아내기 위해 눈을 가늘게 뜬다. 일상과 상상의 경계에 서서 갈라진 틈을 이야기로 채우기 위해 어릴 적 거울에 비친 세상을 애써 떠올린다.
가끔은 밋밋하게 누워있던 단어들이 몸을 세우고 머릿속을 맴돌던 희뿌연 덩어리가 일정한 형태를 갖추어가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직 몸에 익힌 단어가 빈약하고 사물의 이름을 붙이는 것을 해본적이 없어서 누군가에게 보여줄 만큼 문장을 적지 못한다. 무엇보다 세상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눈은 밝지 못해 누구에게나 들리는 커다란 파동이 느껴질 때 비로소 알아차린다. 그럼에도 나는 거울의 경계, 일상의 경계에서 이야기를 찾는 일을 계속한다. 언젠가부터인지 알 수 없으며 끝도 알 수 없지만 여전히 이야기의 첫머리만 쓰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차가운 거울 앞에서 하얀 벽 앞에서, 별다를 것 없는 일상에서 이야기를 찾아내는 순간, 비로소 나는 나의 존재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