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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지 Oct 09. 2020

죽은 새를 묻다

 줄넘기에 빠져있었다. 두발로 뛰기 하나밖에 모르다가 2단뛰기, 구보뛰기, 뒤로뛰기, 십자엇갈려뛰기를 알게 되어 신이 났다. 시멘트를 바른 마당에서 날마다 줄넘기를 했다. 할머니께서 애지중지 키우고 있는 꽃나무에 줄이 닿아 잎사귀가 찢기고 꽃이 떨어져도 멈추지 않았다. 줄넘기가 끝난 다음이면 처참하게 떨어진 꽃의 잔해가 보였다. 할머니가 눈치채기 전에 떨어진 꽃잎들을 화단 흙에 파묻어 감췄다.


 마당 한가운데서 줄넘기를 하면 우리집 초록대문과 마주 보는 구조였다. 뒤로넘기에서 자꾸 발이 걸려 예민해져 있는데, 초인종이 시끄럽게 울렸다. 플라스틱 함에 들어있지 않고 동그란 버튼만 대롱대롱 매달려있던 초인종은 고장이 나서 너무 세게 누르면 딸각 소리가 나도록 빼기 전까지 계속 울려댔다. 그날도 초인종은 길고 긴 소리를 토해냈다. 참다못해 줄넘기를 내려놓고 대문을 열었다. 밖에는 아무도 없었고 우편함에 쪽지 모양으로 접힌 종이 하나만 달랑 들어있었다. 나는 초인종 버튼을 원래대로 빼내고 쪽지를 펼쳐보았다. 쪽지에는 어떤 내용도 없이 시간과 장소만 적혀있었다. 앞뒤를 몇 번이나 돌려봐도 아무것도 없었다. 동네 애들 장난인가 싶어서 대문 안쪽에 있는 쓰레기통을 향해 쪽지를 던져버렸다. 쪽지는 쓰레기통과 대문 사이로 떨어졌다.


 며칠이 지나 줄넘기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 골목을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막다른 골목에는 우리집 아니면 옆집밖에 없었다. 어떤 집일까. 잠시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옆집은 계단이 없고 우리집은 다섯 개의 계단을 올라와야 대문이 있었다. 계단을 오르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뒤이어 우편함이 달각하더니 초인종 소리가 이어졌다. 나는 후다닥 달려가 대문을 열었다. 골목이 꺾이는 지점에서 누군가의 옷자락이 재빨리 사라졌다. 낯익은 옷자락이었다. 골목 안은 초인종 소리로 가득 찼다. 나는 대문 바깥쪽에 걸려있는 초인종의 버튼을 빼내어 소리를 멈춘 다음 우편함에 손을 넣었다. 이번에도 쪽지였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시간과 장소가 적혀있었다. 그리고 시처럼도 노래처럼도 보이는 글이 적혀있었다. 자꾸 장난을 치는 범인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줄넘기를 하면서 골목 밖으로 나갔다.  골목 밖에는 동네 꼬맹이들이 공차기나 딱지치기를 하며 놀고 있을 뿐이었다. 다시 줄넘기를 하며 골목 안으로 들어온 나는 쪽지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줄넘기를 몇 분 더 하다가 집안으로 들어갔다.


 쪽지에 적힌 날짜가 한참 지난 어느 날, 해가 지는 마당에서 줄넘기를 하고 있었다. 그때 초인종이 울리는가 싶더니 대문 안쪽으로 무언가 툭 떨어졌다. 작고 가벼운, 그 무게에 맞는 소리가 전해졌다. 마당에서 대문까지는 일곱 발자국 정도. 그 정도 거리에서도 떨어진 것이 쪽지가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대문을 향해 걸어갔다. 내 예상이 틀리기를 바라면서 속도를 늦추며 걸었다. 하지만 세 발자국도 걷지 않아 알 수 있었다. 누군가 던진 그것이 죽은 참새였다는 걸. 바깥에서는 초인종 소리가 지치지 않고 울려댔고 대문 앞 계단에서는 누군가 서성이는 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대문을 열려다가 멈춰 섰다. 문을 열면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두려움 속에서도 호기심이 앞섰다. 대체 누가 참새를 우리집에 던진 건가. 나는 두려움을 지우기 위해 대문을 빠르고 세게 열었다. 낯익은 얼굴이 서있었다. 놀리는 말투에 욕을 달고 다녔던 아이. 그 아이는 화난 얼굴로 씩씩거리며 서있었다. 한 손에는 죽은 참새가 다른 손에는 쪽지가 들려있었다.


 네가 참새를 던졌냐고 물었다. 그 아이는 그렇다고 했다. 네가 초인종을 눌렀냐고 물었다. 그 아이는 그렇다고 했다. 네가 지난번 쪽지를 두고 갔냐고 물었다. 그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씩씩거리며 나를 쳐다보더니 죽은 참새를 나를 향해 던졌다. 참새는 내 몸에 닿아 바닥에 떨어졌고 나는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에 집에 계시던 할머니가 뛰쳐나왔고 그 아이는 뒷걸음질치며 도망갔다.


 할머니께서는 어떤 나쁜 놈이 죽은 새를 던지고 갔냐며 엄청 화를 내셨다. 바가지머리에 얼굴이 까만 남자애라고 대답했더니 할머니는 범인을 잡겠다며 빗자루를 들고 골목을 뛰어나가셨다. 활짝 열린 대문 안쪽에 혼자 남은 나는 참새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생명이 빠져나간 참새는 너무 작았다. 참새가 숨을 멈춘 순간 세상의 일부분이 멈춘 것 같았다. 그때까지도 초인종은 계속 울리고 있었다. 참새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처럼 끊어지지 않고 길게 울렸다. 나는 초인종 버튼을 딸각 눌러 소리를 멈췄다. 대문과 골목 사이에 적막이 흘렀다. 시간도 멈춘 것 같았다.

 잠시 뒤 돌아온 할머니께서는 범인을 못 잡았다며 다음에 잡으면 가만 안 둔다고 하셨다. 그리고 쓰레받기에 참새를 옮기시며 구더기를 걱정하셨다. 무슨 구더기냐고 묻자, 할머니는 "짐승이고 사람이고 죽으면 구더기가 끓잖아. 그런데 쓰레기통에 버리면 쓰레기 가져갈 때까지 구더기가 생길 텐데, 그걸 어떻게 하냐."라고 하셨다. 짐승이고 사람이고 죽으면 구더기가 생긴다는 말에 내가 알고 있던 세계가 딸각 소리를 내며 다시 한번 멈췄다.


 나는 참새를 꽃밭에 묻어주자고 했다. 할머니께서는 당신이 꽃밭이라고 부르며 정성스럽게 가꾸고 있는 화단에 죽은 새를 묻는 게 마음에 걸렸는지 선뜻 허락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내가 앞으로는 줄넘기를 해서 꽃을 망치지 않고 화단이 마르지 않도록 물을 잘 주겠다고 하며 계속 조르자 허락하셨다. 꽃삽으로 흙을 깊이 파서 참새 두 마리가 들어갈 만한 크기의 구덩이를 만들었다. 도저히 맨손으로 참새를 만질 수 없어서 할머니가 옮겨주셨다. 흙속에 누운 참새들은 조금 전보다 더 납작하게 꺼져 몸체는 더 작아졌고 더 이상 날지 못하는 날개는 무거워 보였다. 흙을 덮어 묻은 자리를 평평하게 만들고 꽃잎 하나를 올려두었다. 처음에는 참새를 묻은 자리를 기억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잊어버렸다. 꽃잎은 날아갔고 참새를 덮었던 흙도 구별할 수 없게 되었다. 열두 살 가을이었다.


 내게 죽은 참새를 던졌던 그 아이는 학교에서 계속 나를 피했다. 대문에서 멀어지며 도망쳤던 것처럼 도망 다녔다. 한 번은 마음먹고 끝까지 쫓아가서 말해주었다. 다시는 우리집에 얼씬거리지 말라고. 우리 할머니가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당시 우리 할머니는 동네에서 알아주는 무서운 할머니였다) 그리고 너는 생명을 죽인 나쁜 놈이라고 말해주었다. 그 아이는 변명을 했다. 자기가 죽인 것이 아니라 죽은 새를 가져온 것뿐이라고. 나는 어차피 마찬가지라고 했다. 대체 죽은 새를 던졌던 그 아이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들어있던 걸까. 죽은 새 말고 다른 손에 들었던 쪽지에 무엇이 쓰여있었을까. 궁금하지도 않다. 암호처럼 시간과 장소를 적어놓고 무엇을 바랐던 걸까. 그 아이. 생명이 깃든 존재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세상 아무것도 사랑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사람은 텅 빈 마음으로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텅 빈 글자만 적어가다가 결국 함부로 참새를 던질 것이라고. 부디 그렇게 살지 않았기를.


 변한 것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자꾸 흙을 파서 죽음 이후를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뿐 행동으로 옮긴 적은 없다. 그리고 참새 두 마리를 묻었던 화단에서는 다음 해에도 그다음 해에도 어김없이 목련이 피고 철쭉이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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