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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지 Nov 03. 2021

고향 방문

달콤한 꿈에서 깨어난 오후의 끝에는

 고향을 찾았다. 여덟 살 때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와 함께 오랫동안 외국에서 살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친구를 만나러 ktx를 타고 내려갔다. 멀어서 못 간다는 핑계를 대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빨리 쉽게 도착했다.      

마지막으로 떠나고 나서,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버렸다.


 떠날 때는 홀가분했는데, 다시 찾으니 쓸쓸했다. 내가 이곳에 살았을 때 북적거리던 거리는 손님이 찾아오지 않는 가게를 지키는 불빛만이 도시의 공동을 채우고 있었다.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구도심을 지나는 여러 갈래의 길이 조금 바뀌었지만 기본적인 틀은 그대로였다. 나는 오래되어 희미해진 기억을 더듬으며 이곳에 처음 발을 들인 여행자처럼 인터넷으로 도시를 검색했다. 유명관광명소, 맛집, 카페 등을 훑어보며 내가 살던 때 자주 찾았던 곳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다가 옛날 그대로 있는 가게 이름을 보면 반가우면서도 변함없이 한자리에서 낡아가는 장소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외로워졌다.      


 내가 살았던 동네는 여전히 구도심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도시가 확장되면서 생긴 신도시 쪽으로 대거 이동을 하면서 동네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오래된 집을 지키는 노인들이라고 했다. 유년기를 대부분 보냈던 동네를 찾아가는 길에 허리가 거의 90도로 굽은 할머니 한 분을 봤다. 할머니는 비탈길을 오르다가 갑자기 남의 집 대문 앞에 엎드려 고양이를 불렀다. 나비야 나비야. 어쩌면 내가 어릴 적에 인사를 하며 지냈던 동네 아주머니나 자주 다니던 가게 주인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비를 부르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꿈처럼 아득하게 들렸다.      

 골목이 길었던 초록 대문 집은 공용주차장으로 변해있었다. 우리집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내가 떠난 자리가 예전 모습 그대로 남아있을 거라는 믿음이 스러지는 순간이었다.

 자동차들로 들어찬 주차장을 몇 번이나 돌아보며 내가 잃어버리고 잊어버린 것들이 무엇인지 기억해내려고 했다. 어디서부터 길을 잃었던 것일까. 어쩌다가 여기까지 도착해서도 답을 할 수 없는 것일까. ‘우리집’은 사라졌고 고향은 늙어있었다.     

 



 작은 항구도시에서는 여름이면 선창에서 풍겨오는 비릿한 냄새가 도시를 덮었고 겨울이면 선창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칼바람이 도시를 덮었다. 고향에서는 번화가를 시내라고 불렀는데, 나는 시내 근처에 살았다. 집에서 나오면 오 분도 안 걸어서 시내가 나왔다. 차 안 다니는 거리. 옷가게와 음식점과 카페와 길거리음식이 즐비하게 늘어섰던 거리에는 최신가요가 넘쳐흘렀다. 리어카에서 테이프를 파는 일명 ‘길보드차트’로 불리는 가요들은 계절을 가리지 않고 울렸다. 거리는 풍요로웠다. 노래와 사람들이 넘쳐나니 그렇게 느껴졌다. 친구들과 팔짱을 끼고 시내를 몇 바퀴 돌면 조금 전에 봤던 사람들을 다시 만났다. 사람이 많아서 서로 몸을 피해 가며 걸었다.

 약속 장소로 유명했던 서점은 늘 붐볐다. 나중에는 주인이 책을 안 살 사람들은 서점에 들어오지 말라고 해서 서점 앞이 늘 붐볐다. 놀랍게도, 서점은 같은 이름으로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예전과 다르게 작고 초라한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투명한 유리문 사이로 초등학교 앞에 이는 문방구에서 자주 보이는 싸구려 액세서리나 장난감이 보였다. 예전에는 오로지 책만 팔았다. 책에 대해 해박하고 자부심이 높았던 서점의 품위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따스한 봄날 오후, 마당에서 피어나는 꽃향기와 따스하게 불어오는 미풍에 취해 마루에서 잠이 든 어린 나는 길고도 낯선 꿈을 꾸었는데, 빛과 그림자가 뒤섞인 그 꿈이 점점 미래의 현실로 바뀌고 있다는 불안에 휩싸여서 깨고 싶다고 세 번을 크게 외쳤고, 비로소 꿈에서 깨었는데 꽃향기가 가득하던 마당은 보이지 않고 나는 낙엽이 수북하게 쌓인 어두운 늦가을 밤거리를 걷고 있었다. 다리가 무거워서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는데, 폐업을 한 상점 앞이었다. 불 꺼진 상점 유리창으로 낯선 사람이 보였다. 어린 내가 상상해본 적도 없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주름지고 피로하고, 낡은 사람. 봄날 잠이 들었던 나는 어디로 가버렸는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나 역시 고향처럼 낡아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 기억을 더듬고 있던 내 눈앞으로 쇠락이라는 단어가 겹쳤다.


 과거를 떠올리면 여전히 무언가를 두고 왔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한다. 당일치기 여행을 마치고 다시 ktx를 탔을 때도 나는 그런 생각에 빠져 하루 종일 걸었던 고향의 구석구석을 되돌아보았다. 이번에는 무엇을 잃어버린 걸까. 언제나처럼 제대로 된 답을 꺼내놓을 수 없었지만 서울역이 가까워질수록 지금 내가 머무는 집에 빨리 도착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그리움이었다. 봄날의 달콤한 낮잠은 없지만 그날의 기억을 품고서 꽃이 진 자리에서 먼 곳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이 담겨있는, 다른 시간의 무늬를 만들어내고 색을 입힌 삶의 온기가 남아있는 곳에 대한 생생한 그리움.      

 기대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아서 실패한 삶이라는 자조, 소망했던 것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나이를 먹어서 실격한 인간이라는 혐오는 접어두자. 봄날의 달콤한 낮잠이 눈부시게 빛나는 시절로 기억되는 것은 그 이후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서 나를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고향을 떠난 이후 나는 수없이 많은 빛을 잃었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 사이사이에 또 다른 빛들이 생겨났다. 명명하기에 너무 사소한 빛들. 봄날처럼 환하지 않지만 그 빛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림자의 의미를 알고 난 뒤 자라난 빛들이기 때문이다.


 고향을 다시 찾을 때는 쓸쓸했는데, 떠나올 때는 오히려 담담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세월의 무게만큼 품었던 고향의 풍경들을 조금씩 뜯어서 차창 밖에 내버렸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이 어룽거려 나는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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