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는 남자가 있다. 한때 작가로서 명성을 높였으며 파리에서 화려한 생활을 하던 해리. 그가 새로운 시작을 위해 찾아왔던 아프리카에에서 죽어가고 있다. 괴저가 시작되었던 다리는 지독한 악취를 뿜어내며 썩어문드러지고 있다. 죽음을 앞두고 그는 공포보다는 피로와 분노의 감정에 사로잡혀 있다.
오늘밤 자신이 죽을 거라는 말을 하는 그에게 아내는 제발 수프를 먹으라고 말한다. 그는 아내의 친근하고 아름다운 미소에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또다시 느낀다.
"기분은 좀 어때요? 그녀가 물었다. 목욕을 마치고 텐트에서 나오는 참이었다.
"좋아요."
"그럼 식사할까요?" 그녀 뒤에서 몰로가 접이식 식탁을 들고 있었고, 다른 소년은 수프가 담긴 접시를 들고 서 있었다.
"글을 쓰고 싶군." 그가 말했다.
"수프라도 좀 들고 기운을 차려야 해요."
"난 오늘 밤 죽을 거예요. 그러니 기운 차릴 필요는 없어요." 그가 대꾸했다.
"해리, 제발 과장 좀 하지 마요."
"당신 코는 도대체 어디에 쓸 작정이죠. 내 넓적다리는 이제 반쯤 썩어 문드러졌다고. 빌어먹을, 수프 따위를 뭣 때문에 먹어야 하지? 몰로, 위스키소다를 가져와."
"제발 수프를 들어요." 그녀가 상냥하게 말했다.
"그래, 먹을게요."
수프는 뜨거웠다. 먹기 좋을 만큼 식을 때까지 컵을 손에 들고 있어야 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군소리 없이 수프를 삼켜 넘겼다.
"당신은 훌륭한 여자예요. 나한테 신경 쓰지 말아요." 그가 말했다.
-<킬리만자로의 눈> 중
해리는 아내와 아프리카 여행 중이었다. 그는 2주 전에 영양 떼가 도망칠 태세로 서 있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다가 가시에 무릎을 긁히고 만다. 그때 상처가 났는데 소독약을 잊고 바르지 않아 상처가 악화되었는데, 다른 방부제가 없어서 석탄산액을 사용했던 것이 화근이 되었다. 상처를 중심으로 모세혈관이 마비되었고 그의 다리에 괴저가 발생한 것이다. 다리는 냄새를 풍기며 썩어갔다. 하지만 괴저가 발생한 이후로 고통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공포감도 사라져버렸다. 죽음을 앞두고 그가 느끼는 감정은 격심한 피로감과 이렇게 끝나는 것에 대한 분노뿐이었다.
특히 그는 자신이 쓰고 싶다고 생각을 해두었던 작품들을 영원히 쓸 수 없다는 생각에 가장 크게 사로잡힌다.
작품으로 쓰려고 간직해두었던 소재 중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눈'이었다.
불가리아의 산에 눈이 쌓인 것을 바라보았을 때, 난센의 비서가 노인에게 저것이 눈이냐고 묻자 아니라고 대답을 했고, 그것이 눈이 아니라고 믿어서 주민 교환 계획을 전개할 때 , 그는 그들을 눈 속으로 보냈고 모두 그해 겨울 사망했던 일.
가데르 탈 고지대에 눈이 퍼붓던 어느 날 발이 피투성이가 된 탈영병 한 사람에게 털양말을 주어 달아나게 했던 일.
슈룬츠에서 스키를 타고 내려올 때 케이크에 입힌 설탕처럼 부드럽고 흰 가루처럼 가벼웠던 눈.
눈보라가 쳐서 일주일 동안 산장에 갇혀 담배 연기 속에서 트럼프 놀이를 할 때 "상 부아르"라고 말하며 패를 열던 코가 길쭉한 사내. 해리는 그런 것들을 쓰려고 했지만 결국 쓰지 못했다.
죽음이 다가올수록 해리의 머릿속에서는 자신이 쓰려고 했으나 쓰지 못했던 기억의 소재들이 되살아났다. 특히 파리에서의 일은 특별히 또렷했다. 자신의 공허한 감정을 억제하지 못해 창녀들과 어울려 다녔고 첫사랑을 그리워하는가 하면 격투를 벌여 여자를 데리고 달아났던 일들, 파리의 뒷골목에서 봤고 겼었던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하지만 그는 그런 것들에 대해 하나도 쓰지 못했다.
작품으로 쓸 것은 참으로 많았다. 그는 이 세상이 변하는 모습을 보아 왔다. 그것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었다. 수많은 사건을 보고 사람들도 관찰해 왔지만, 그것보다는 세상의 미묘한 변화를 읽었던 것이다. 그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사람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기억할 수 있었다. 바로 그 현장에 있었고 그것을 관찰해 왔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쓰는 것은 그의 의무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에 대해 영원히 쓰지 못할 것이다.
-<킬리만자로의 눈> 중
해리는 치열한 경험과 날카로운 통찰력을 통해 뛰어난 작품들을 쓴 뒤 서서히 재능을 소진해갔다. 그가 지금의 아내에게 접근했을 때는 이미 작가로서의 생명이 끝나가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처럼 거짓말로 그녀의 관심을 얻었다. 일찍 남편을 잃은 그녀는 당시 비행기 추락사고로 두 아이 중 하나를 잃고 상심하던 시기라서 다른 삶을 살고 싶어했다. 그녀에게는 존경을 바칠 남자가 필요했고, 해리는 그런 그녀에게 딱 맞는 남편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와 결혼한 뒤 해리는 더욱 재능을 소진해갔다.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상류층의 사람들과 어울리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 생활 속에서도 해리는 언젠가는 상류층의 엄청난 부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리라고 생각했다.
생각만으로는 쓸 수 없다. 해리는 결국 아무것도 쓰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아프리카로 왔다. 자신이 잘 나가던 시절에 행복하게 지냈던 곳이라 새 출발을 하기 위해 왔던 것이다. 안락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여행을 시작했다.
고생스러운 일은 없었지만 호화스러운 사치도 없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다시 단련된 생활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 그는 마치 권투 선수가 자기 육체의 지방을 없애기 위해 산속으로 들어가 노동하고 훈련하듯이 자신도 영혼에 붙은 비곗살을 제거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킬리만자로의 눈> 중
한때 자신이 가장 행복했던 아프리카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려고 했던 해리. 그는 그곳에서 죽어갔다. 수프를 먹고 밤이 될 때까지 그는 자신이 쓰고자 했던 이야기들을 떠올렸다. 쓰지 못했던 이야기를 남기고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그는 모든 것이 다 귀찮아졌다. 죽음마저도.
아내와 이야기를 하다가 그는 갑자기 죽음이 형체도 없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는 아내에게 "놈더러 저리 가라고 해요."라고 한다.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죽음에게는 "넌 입김이 지독하구나. 이 고약한 냄새를 피우는 후레자식 놈아."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무도 그가 내뱉는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아내는 그가 잠들었다고 생각하고 소년들들로 하여금 해리를 텐트 안으로 옮기라고 한다. 그동안 그는 죽음의 무게에 짓눌려 있었다. 그러다가 소년들이 그를 텐트로 옮기기 위해 그가 누워있는 침대를 쳐든 순간 가슴의 중압감은 사라졌다.
다음날 아침 옛 친구가 해리를 데려가기 위해 비행기를 몰고 왔다. 해리는 비행기에 실려 어디론가 간다. 처음에 그는 병원으로 가는 줄 알았지만 비행기는 다른 방향으로 날아갔다. 분홍빛 엷은 구름을 올라 남쪽에서 날아온 메뚜기 떼를 지나 폭풍우를 뚫고 비행기는 계속 나아갔다. 마침내 킬리만자로의 네모난 꼭대기가 보였다.
잠시 뒤 비행기의 주위가 어두워지더니 폭풍우 속으로 들어갔는데, 비가 굉장히 많이 쏟아져 마치 폭포 속을 꿇고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마침내 그곳을 빠져나오자 콤프턴은 뒤를 돌아보면서 싱긋 웃고는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앞쪽에 보이는 것은 전 세계처럼 폭이 넓은 데다 거대하고 높이 솟아 있으며 햇빛을 받아 믿을 수 없을 만큼 하얗게 반짝이는 킬리만자로의 네모난 꼭대기였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지금 가는 곳이 바로 그곳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킬리만자로의 눈>
이 소설은 헤밍웨이의 단편집에서 가장 선명한 이미지로 다가왔던 작품이다. 작가로서 명성을 잃은 그가 새로운 출발을 위해 찾아간 아프리카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내용.
소설의 표면적 스토리를 걷어내고
무릎에 난 상처 때문에 다리가 썩어가고 그로 인해 죽게 되는 것은 그의 물러진 정신을 잘라내고, 그 자리에 차갑고 날카로운 정신을 이식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해리가 죽음을 앞두고 처음 회상한 기억, 즉 소설의 소재로서의 이야기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나타난 이미지는 '눈'이었다.
차갑고 맑은 눈은 멀리서 보면 깨끗하고 명징하며 피부에 닿으면 순식간에 본래 형태를 잃고 녹아버린다.
물이 되어버린 눈을 킬리만자로의 훼손되지 않은 단단한 눈으로 빚어 다시 새로운 생을 만드는 작업을 하는 거라고 스스로 해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