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일생에서 단 한 번, 무지개 빛깔을 내는 사람을 만난단다. 그런 사람을 발견하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게 되지." -<플립> 128페이지
브라이스는 할아버지가 해준 이 말을 듣고 처음으로 줄리가 나온 신문기사를 꺼내 읽는다. 줄리가 스쿨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 근처에 있는 플라타너스 나무를 지키기 위해 전기톱을 들고 온 남자들과 맞서는 내용의 기사였다. 브라이스는 과잉된 감상적인 말만 늘어놓은 기자의 기사에는 헛웃음이 나왔지만, 줄리의 말을 인용한 부분을 보았을 때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줄리는 나무 위에 앉아 있으면 기분이 어떤지 이야기하면서 제한된 공간을 초월한 기분이라고 했다. 줄리는 "땅에서 높이 올라가 뺨을 스치는 바람을 느낄 때면 아름다움이 내 심장에 입을 맞추는 기분이에요."라고 말했다. 대체 어떤 중학생이 이런 표현을 쓴단 말인가? 내가 아이들 중에는 단연코 없었다. -130페이지
줄리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던 브라이스의 껍질이 깨지는 순간이며 세계를 향한 시선의 각도가 바뀌는 순간이다.
세상을 보는 시선은 각자 다르다. 마찬가지로 각자의 시선에 가닿는 세상의 접촉면도 다를 수밖에 없다. 내 경우에는 달콤한 것 씁쓸한 것 따뜻한 것 시원한 것 크고 맑은 것 아롱거리며 번지는 것들에 시선을 자주 두는 편이었다. 내 시선이 닿았던 부분은 편안하고 다정하고 맨질맨질한 윤기가 흐르고 다른 곳에 비해 모서리가 닳아있었다.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시선을 두지 않았던 부분은 역시 불편하고 무관심하고 거칠고 각진 모서리가 날카로웠다. 내 시선을 받은 세상의 접촉면은 나를 향해 있었고 나 역시 그곳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내 일상에 사소한 균열이 생기면 내 시선은 살짝 각도를 틀게 된다. 살아오면서 그런 균열은 찾아올 수밖에 없었고 그럴 때마다 쉽지 않았지만 나는 각도를 틀어 세상의 다른 면을 볼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몰랐던 시절, 모든 것이 밝게 빛나던(사실 그럴리는 없었겠지만 그렇다고 착각하며 기억했던) 시절이 좋았다는 말은 손에 넣을 수 없는 허망한 말풍선에 불과하며 오래된 입버릇일 뿐이다. 각도를 틀었던 순간에는 아프고 힘들었던 시간들에 감사한다. 만약 그런 순간과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여전히 작은 쳇바퀴를 굴리며 해바라기씨에 만족하며 살아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른 쳇바퀴 혹은 철창 밖을 내다볼 수 있는 균열을 만나서 시선의 각도를 튼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플립>은 생기 넘치고 사랑스러운 소설이다. 특히 줄리와 브라이스, 두 사람의 시각을 교차해서 보여주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하나의 사건에 대해 각자 어떻게 생각하고 기억하고 있는지에 대해 차이를 보여준다. 동일한 사건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면 그 사건은 전혀 다른 색상과 방향성을 지니게 된다.
처음 만났던 일곱 살부터 중학생이 될 때까지, 브라이스는 줄리와의 첫 만남에서 줄리는 '예의도 눈치도 없고 어수선한 집에 살며 자신을 따라다니는 귀찮은 먼지투성이 여자아이'로 규정지었다. 반면 줄리는 브라이스를 '수줍고 귀엽고 좋은 냄새를 풍기며 까만 속눈썹에 파란 눈동자가 아름다운 첫사랑'으로 마음 깊이 각인시켰다. 브라이스와 줄리가 세상을 바라보고 사람을 대하는 방식을 따라서 소설을 읽어가다 보면 행복을 결정하는 내 속의 가치 기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이 소설은 줄리와 브라이스, 줄리의 가족과 브라이스의 가족의 대조적인 모습을 통해 가식적인 껍질 아래 숨어있는 세상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 줄리와 브라이스가 자신들의 세계에서 미쳐 볼 수 없었던 세상을 보는 눈을 뜨도록 도와준다.
제목인 '플립(Flip)은 '열중하다'라는 뜻과 '뒤집다'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는데, 소설을 보면 줄리와 브라이스가 서로에게 열중하는 입장이 어느 순간 뒤집혀서 바뀌게 되는 과정이 생생하면서도 재미있게 표현되어있다.
소설에서 줄리와 브라이스가 담은 세상이 뒤집힌 큰 사건이 두 개 있다.
하나는 앞서 짧게 언급한 플라타너스 나무 사건이다. 브라이스는 처음부터 버스 정류장 근처에 서있는 플라타너스 나무를 꼴사나운 변종이라고 생각했다.
나무는 분명 구불구불한 가지들이 뒤엉킨 꼴사나운 변종이었다. 그리고 남자들과 입씨름하는 여자아이는 줄리였다. 세상에서 가장 성가시고 가장 거만하게 우쭐대는 아이 말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가슴이 저며 왔다. 줄리는 그 나무를 사랑했다. 정말 어리석은 짓이었지만 줄리는 그 나무를 사랑했고 나무를 베어 내는 건 줄리의 심장을 베어 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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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나무를 지키기 위해 줄리가 전기톱을 든 남자들에 맞서며 슬퍼하는 모습을 본 이후로 마음속에서 조금씩 변화가 생긴다. '미친 원숭이가 날뛰는' 나무에서 '나무를 베어 내는 건 줄리의 심장을 베어 내 는 것과 마찬가지'로 줄리의 마음을 헤아리게 된 것이다.
우리는 잠시 작업 현장을 지켜보았다. 전기톱이 전솔력으로 돌며 나무를 갉아먹자 톱밥이 연기처럼 휘날렸다. 나무는 비스듬히 기울어지고 벌거벗은 것처럼 보였다. 잠시 후 나는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의 팔다리를 절단하는 장면처럼 느껴졌고 정말 오랜만에 울고 싶었다. 그토록 싫어했던 바보 같은 나무 때문에 금방이라도 울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38페이지
줄리는 '전체는 부분을 합친 것 이상이란다.'는 아빠의 말을 플라타너스 나무에 올라간 뒤로 조금씩 볼 수 있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전체는 부분을 합친 것 이상이라는 아빠의 이야기가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왔다. 플라타너스 나무에서 보이는 풍경은 지붕과 구름과 바람과 색색이 합쳐진 것 이상이었다. 그것은 마법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겸허함과 장엄함이 동시에 내 마음을 채웠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어떻게 평온함과 놀라움이 동시에 마음속으로 가득 채울 수 있는 걸까? 이 평범한 나무가 이토록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다니, 이토록 생생히 살아 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다니 놀라운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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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자신에게 부분이 아닌 전체의 아름다움에 눈을 뜨게 해 준 플라타너스 나무가 전기톱에 잘려 한낱 톱밥 더미로 변해버린 다음, 줄리는 나무를 가슴에 묻고 나서야 비로소 아빠의 말을 완전히 이해한다.
'그 나무의 영혼이 늘 너와 함께 하길 바란다. 네가 그 나무에 올라갔을 때 느꼈던 감정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아빠가 준 그림을 줄리는 매일 아침 눈을 뜨고 보고 잠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보았다. 울지 않고 그림을 볼 수 있게 되자 그 속에서 나무 이상의 것이 보였다. 나뭇가지에 앉아 있던 시간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도 깨닫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주변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바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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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는 달걀 사건. 줄리는 과학박람회에 출품하기 위해 선생님의 제안으로 수정란을 받고 부화기를 만들고 부화과정을 기록한다. 알들에게 애비, 보니, 클라이드, 덱스터, 유니스, 플로렌스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매일 알의 무게를 재고 검란을 하고 방향을 바꿔주고 콧노래를 불러주며 애정을 쏟는다. 박람회 당일 알에서 깨어난 병아리들로 줄리는 최우수상을 타게 된고, 그 이후 병아리들은 닭이 되어 달걀을 낳는다. 줄리는 이웃 아주머니들에게 돈을 받고 팔 수 있는 달걀 중에서 최상의 달걀을 브라이스에게 가져다준다. 무려 2년 동안.
하지만 브라이스를 비롯해 이 가족은 줄리의 달걀을 전혀 다르게 받아들인다. 브라이스는 '이 달걀은 어떻게 요리하든 역겨운 맛이 날 것 같았다'라고 했고, 브라이스의 엄마는 '달걀 속에 병아리가 없단 걸 어떻게 알 수 있지' 라며 얼굴을 찌푸렸고 누나는 살모넬라균을 언급한다. 브라이스의 아빠는 브라이스에게 수탉이 있는지 물어보라고 지시했지만 브라이스는 용기가 없어 직접 묻지는 못하고 줄리네 뒷마당을 염탐해서 그냥 닭들이 있을 뿐이라고 결론지어 보고한다. 브라이스의 아빠는 아들의 비겁함에 실망하며 달걀을 내다 버리라고 한다. 그 뒤로 브라이스는 2년 동안 부엌 쓰레기통에 줄리가 가져오는 달걀을 버린다.
이 사건으로 브라이스는 자신의 비겁함에 고개를 숙이게 되고, 줄리는 심장이 깨질 정도로 상처를 받는다.
2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나는 줄리의 눈을 피하고 아빠의 눈을 피해 달걀을 몰래 내다 버렸다. 왜 그랬을까? 왜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을까? '미안하지만 우린 달걀을 먹지 않아. 달걀을 좋아하지도 않고 필요도 없어.... 보아 뱀에게 주지 그래?'라고! 정말 줄리의 마음이 상할까 봐 두려웠던 걸까? 아니면 줄리가 두려워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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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브라이스에 대한 내 감정이 아직도 그렇게 빤히 보이는 걸까? 혹시 내 맘을 알고 있었다면 어쩜 그렇게 잔인하게 굴 수 있었을까? 어쩜 내 달걀을 그토록 오랫동안 날이면 날마다 버릴 수 있었을까? 할 말을 조금도 찾을 수가 없었다. 브라이스의 얼굴을, 맑고 환히 빛나는 그 푸른 눈동자를 우두커니 바라보기만 했다. "미안해, 줄리." 브라이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당황해서 얼이 빠진 채 비틀비틀 집으로 걸어갔다. 심장이 와장창 깨지고 말았다. -108페이지
줄리와 브라이스처럼 줄리의 가족과 브라이스의 가족도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다르다.
줄리의 아버지는 장애를 가진 동생, 즉 줄리의 삼촌을 사설 요양병원에서 돌보기 위해 수입의 많은 부분을 지출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줄리의 집은 늘 '덤불이 창문까지 웃자라고 사방에 잡초가 삐져나왔으며 헛간 안뜰은 짐승들이 헤집어놓기 좋은 환경'으로 방치되어 있었고 집에서 사용하는 모든 물건은 낡고 오래된 것뿐이었다. 그럼에도 가족을 돌보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 공감하는 가족들은 초라한 집에서도 서로를 위하며 소박한 행복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브라이스의 아버지는 어수선한 줄리네 앞마당 때문에 스스로 괴로울 정도로 외적인 부분을 중요시했다. 어머니는 그 정도가 약했지만 줄리의 아버지가 그림을 그린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부부가 동시에 "대신 앞뜰이나 손질했으면 세상이 훨씬 더 아름다워졌을 텐데."라고 말한다.
줄리네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중시했다면, 브라이스네는 눈에 보이는 것을 중시했다.
<플립>을 읽는 동안 나는 레몬 번트 케이크와 피칸 파이가 눈에 들어왔다.
브라이스가 이사 온 첫날, 줄리의 엄마는 환영의 의미로 브라이스의 엄마에게 레몬 번트 케이크를 만들어 선물했다. 줄리는 그날 저녁 후식이 될 예정이었던 레몬 번트 케이크를 맛보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워한다.
엄마는 그날 밤 우리의 후식이 될 예정이었던 아름다운 레몬 번트 케이크를 로스키 아주머니에게 선물했다. 흩뿌린 새하얀 설탕은 부드러워 보였고 케이크는 아직 따뜻했으며 공중으로 달콤한 레몬 향기가 흩날리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케이크였다! 하지만 그건 로스키 아주머니의 손에 들어갔고 돌려받을 길은 없었다. 두 여인이 식료품점이나 일기 예보에 관해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케이크의 냄새라도 꿀꺽꿀꺽 삼키는 수밖에 없었다. -24페이지
그리고 줄리와 브라이스가 이웃이 된 지 7년 만에 브라이스의 엄마에게서 저녁식사 초대를 받았을 때 줄리의 엄마가 만들어갔던 블랙베리 치즈케이크와 피칸 파이. 저녁식사가 끝난 뒤 줄리의 가족은 블랙베리 치즈케이크가 아닌 피칸 파이의 남은 부분을 들고 돌아온다. 그리고 주방에 모여 파이에 우유를 곁들여 먹으며 그날의 저녁에 대해 이야기하며 가족의 사랑을 재확인한다.
"말도 안 되지. 난 우리 아빠 옆에 있을래." 엄마가 주방 저편에서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엄마도 마찬가지야." 아빠가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자리에 앉아 있던 아빠는 엉엉 운 것은 아니지만 분명 두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아빠는 얼른 눈을 깜빡거리고 말했다. "그 우유에 파이 좀 곁들일래?" 매트 오빠가 다리를 벌리고 의자에 걸터앉으며 대답했다. "이야, 지금 막 그 생각했는데." 마이크 오빠도 말을 보탰다. "맞아요. 배고파 죽겠어요." 마이크 오빠가 찬장을 뒤적이자 내가 외쳤다. "내 접시도 하나!" 엄마가 외쳤다. "하지만 좀 전까지 음식을 먹었잖니." "자, 트리아나, 당신도 파이 좀 먹어 봐. 맛이 기가 막혀." 그날 밤엔 행복하고 벅찬 가슴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어둠 속에 누워서 생각하니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감정이 들락날락하는지 놀라울 뿐이었고 이런 기분으로 하루를 끝마칠 수 있어서 무척 즐거웠다. -221페이지
연어 찜, 가살 리소토, 신선한 채소 찜으로 잘 차린 브라이스의 엄마가 테이블에서 줄리의 가족은 허기를 느낀 채 돌아왔다. 그리고 화려한 장식도 특별한 맛도 없지만 늘 마시는 우유에 곁들여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피칸파이를 나누어먹는다. 줄리의 엄마가 브라이스가 이사 온 첫날 선물로 브라이스의 엄마에게 줘버렸기 때문에 먹지 못한 레몬 번트 케이크와 달리 줄리는 피칸 파이는 먹을 수 있었다. 화려한 장식과 달콤한 맛이 아닌 날마다 먹어도 질리지 않고 속을 채울 수 있는 피칸파이의 담백하지만 풍부하면서도 든든한 맛은 가족의 허기를 채워주었다.
레몬 번트 케이크는 상큼한 레몬향은 좋은데 레몬의 신 맛은 부담스럽고 은근한 버터향은 좋은데 진한 버터의 맛은 느끼할 때 먹으면 레몬의 적당한 상큼함과 버터의 적당한 고소함을 맛볼 수 있다. 번트에 구워서 선물용으로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가끔 먹는 레몬 번트 케이크를 특별하고 훌륭하겠지만 날마다 먹기에는 부담스럽고 질리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