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겨울밤의 돈가스

요시모토 바나나 《키친》

by 페이지

하늘이 얼어붙고 밤이 길어질수록 바삭하고 기름진 음식이 먹고 싶어진다.


한입 베어 물면 '바삭'하는 소리가 맛있게 나고 속은 촉촉하고 부드러운 튀김 종류가 특히 더 당긴다. 그래서 갑작스레 기온이 뚝 떨어진 요즘엔 종이에 까만 선 하나를 그어놓고 볼펜이 쓰러지는 쪽을 택하리라 하는 날이, 그러니까 그토록 야심한 시각에 먹느냐 마느냐를 고민하는 날이 많아진다.
볼펜이 먹겠다 쪽으로 쓰러지는 날이면 다음날 퉁퉁 붓는 얼굴쯤은 당연히 예상해야 한다. 하지만 안 먹는 쪽으로 쓰러진 날이면 밤새 먹는 꿈을 꾸며 괴로워한다. 어떤 쪽이 숙면에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밤마다 이러한 고민을 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괴롭다.

나는 배고픈 상태를 무척이나 참지 못하는 편이다. 자주 배가 고파지고 그때마다 무언가를 먹지 않으면 계속 배고픈 것이 떠올라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을 정도.
특히 아침에 막 일어났을 때와 밤에 잠자기 직전에는 그 정도가 심각하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커피를 끓이고 식빵을 토스트기에 넣는다.
어릴 때 굶주리거나 특별히 그것과 관련된 기억이 없는 것을 보면, 내 배고픔의 원인은 마음의 상태에 달려있는 것 같다.
떠올려보면 느긋할 때보다 불안할 때 배가 더 고팠던 것 같다.

나는 지금 칼로리가 높고 기름기 있는 음식이 먹고 싶다고. ……신기하네.
같은 밤하늘 아래서 지금 둘 다 배를 쫄쫄 곯고 있다니.
《키친》 중

유이치는 이렇게 말한다. 칼로리가 높고 기름기 있는 음식이 먹고 싶다고,라고. 그 말을 들은 미카게는 돈가스 덮밥을 시켜놓았지만 차마 자랑할 수 없다. 그것이 더없는 배신처럼 느껴져서 유이치의 머릿속에서 함께 굶어주고 싶을 뿐이다.
미카게는 유이치와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죽음으로 에워싼 어둠 속에서 둘의 마음이 커브를 그리고 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불안한 마음에 농담처럼 건넨 말 '손목을 긋는 일은 없겠지'에 유이치가 '힛' 웃으며 전화를 끊자 엄청난 탈진감이 몰려온다.

아무쪼록, 좀 더 밝은 빛이나 꽃이 있는 곳에서 천천히 생각하고 싶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다.
《키친》 중

한없이 어두운 마음으로 통화를 끝낸 미카께의 앞에 드디어 돈가스 덮밥이 나온다. 모양새도 먹음직스럽고 먹어보니 정말 맛있는, 굉장한 맛의 돈가스 덮밥이!

이 돈가스 덮밥은 거의 행복한 만남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솜씨다. 고기의 질하며, 소스의 맛 하며, 계란과 양파를 익힌 정도 하며, 고실고실하게 지은 밥하며,
어디 흠잡을 데가 없다.
《키친》 중

미카게는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아마 유이치와는 영영 되돌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녀는 돈가스 덮밥 일 일분을 더 포장해서 가게를 나와 무작정 유이치가 있는 도시로 간다.
추운 겨울밤, 눈앞으로 온 빈 택시를 타고.
택시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달이 별빛을 지우면서 밤하늘을 건너가고 있는' 하늘을 본다. 그리고 드디어 유이치가 머무는 여관이 있는 도시에 도착한다. -(유이치는 엄마를 잃은 상실감에 빠져 잠시 집을 떠나 어느 도시의 여관에 머물고 있는 중이었다)-

밖은 오싹할 정도로 추워, 금방 손과 볼이 얼었다. 장갑을 꺼내 끼고는, 달빛 어린 언덕길을
돈가스 덮밥이 든 배낭을 메고 올라갔다.
《키친》 중

여관 문은 굳게 잠겨있었다. 미카게는 쌓여있는 정원석을 딛고 지붕으로 올라가서 유이치의 방으로 이동하려다가 지붕에 매달리기도 하고 팔을 긁히고 더러운 물구덩이에 다리가 잠기기도 한다. 여하튼 미카께는 우여곡절 끝에 유이치의 방 창문을 노크하고, 유이치는 당연히 놀란 채 창문을 열어 꽁꽁 얼어붙은 미카께의 손을 잡아당겨 준다. 나는 이 장면이 《키친》에서 가장 낭만적이라고 생각한다. 미카게가 식당에서 돈가스 덮밥을 먹다가 너무 맛있어서 일 인분을 포장하고 그 길로 택시를 타고 그가 있는 먼 도시까지 달려가서, 지붕을 올라가 방 창문을 노크하고, 얼어붙은 손을 잡아당겨 주는. 머릿속에 예쁘고 착한 그림이 저절로 그려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미카게의 말에서 '사랑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돈가스 덮밥 배달하러 왔어.
혼자 먹기가 아까울 정도로 맛있어서.
《키친》 중

유이치는 돈가스 덮밥을 먹기 시작했고, 미카게는 그들이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시간을 나누었던 장면들을 떠올린다. 그때는 미카게, 유이치, 그리고 유이치의 엄마(사실은 아빠였지만 성전환수술을 해서 엄마가 된 엄마) 에리코, 이렇게 셋이서 함께였다. 소중하게 빛나는 추억들 속에서 밥을 먹었던 추억은 가장 빛났다.
낯선 도시의 여관. 절망과 죽음을 가슴에 담고 있던 유이치의 얼굴이 밝아진다. 밥을 함께 먹는 것만으로 두 사람 사이에는 예전의 분위기가 되살아났고, 미카게가 걱정하던 일은 깨끗이 사라져버렸다.

유이치는 돈가스 덮밥을 먹고,
나는 차를 마시고,
어둠은 이미 죽음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그것으로 족했다.
《키친》중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은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부엌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미카게는 할머니와 단둘이 살았는데 어느 날 할머니가 갑자기 죽었고, 할머니의 장례식이 끝난 뒤부터 미카게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다가 유일하게 부엌에서만큼은 편안하게 깊이 잠이 들 수 있다는 걸 알고서, 그 뒤부터는 부엌에서 계속 '잠만 잔다'. 그러다가 살아생전 할머니와 친하게 지냈고 할머니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하던 꽃집 청년 유이치의 제안으로 유이치와 유이치의 엄마인 에리코가 살고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된다. 그곳에서 미카게는 소파에서 잠을 자고 요리를 하며 반년을 지내고, 요리연구가의 어시스턴스가 되면서 그 집을 나와 독립한다. 미카게는 어시스턴스로 바쁜 생활을 하던 중, 에리코의 죽음에 대해 알게 된다. 에리코는 게이 바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스토커 같은 남자의 칼에 찔려 어이없고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게 되었다는 것. 유이치는 에리코의 죽음을 한 달이나 지나서 미카게에게 알렸고 둘은 그 때문에 다시 만나게 된다.

이 소설에는 죽음과 꿈이 자주 등장한다. 죽음은 단절, 꿈은 연결의 의미를 가지고서. 할머니가 죽고 혼자가 된 미카게는 유이치와 에리코가 사는 집에서 함께 살게 되고, 에리코가 죽자 살아갈 의미를 잃은 유이치에게 미카게는 다시 생을 불어넣어 준다. 그리고 그 사이에 유이치와 미카게가 함께 꾸는 꿈이 있다. 꿈인지 현실인지 모르는 상황, 아무래도 꿈같은데 그 꿈을 둘이 동시에 공유하고 있었다는 그런 이야기.

《키친》에서 부엌은 무언가를 창조하는 곳이면서 누군가를 살리는 숭고한 행위를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사람은 먹지 못하면 살아갈 수 없다. 어떤 형태의 부엌이라도 상관없이, 세상에서 부엌이라는 공간을 가장 좋아하는 미카게는 아마도 삶에 대한 애정이 풍부한 사람일 것이다. 에리카가 죽은 뒤, 방치되었던 그 집의 부엌도 깨끗하게 정리해놓고 유이치가 좋아하는 음식을 잔뜩 차려놓는 장면을 보면, 미카게가 유이치의 생을 얼마나 간절히 바라는지 알 수 있다.

밤이 투명하게 밝아올 무렵, 우리는 다 만들어진 대량의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샐러드, 파이, 스튜, 크로켓, 튀김 두부, 나물, 당면으로 속을 넣은 만두, 닭살 무침, 탕수육, 찐만두,
국적이 뒤죽박죽이었지만
천천히 시간을 두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전부 먹어치웠다.
《키친》중

미카게와 유이치. 고아로 남겨진 남겨진 두 사람이 어둠에 갇혀 있지 않고 삶에 대한 의지를 갖게 한 것은 바로 음식이고, 그것은 부엌이라는 공간에서 시작된다. 그들에게 음식은 단지 배고픔을 채워준다는 의미를 넘어서서 죽음에서 생으로 이끌어준 구원적인 존재이다.

차갑게 얼어붙은 겨울밤, 따뜻한 방에서 먹는 돈가스 덮밥.
두 사람이 '거의 행복함 만남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인 돈가스 덮밥을 함께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리고 여전히 잠 못 이루는 겨울밤, 나는 하얀 종이에 그은 까만 선 앞에서 이쪽과 저쪽의 경계를 허물지 못하고 볼펜을 굴리며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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