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더운 오후.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이다. 오늘따라 유난히 말수가 적은 영이의 오른쪽 볼이 톡 튀어나왔다. 민준은 괜히 신경이 쓰여 볼이 왜 부었냐고 물으려다가 만다. 관심 끄라느니, 오지랖이 넓다느니, 잔소리만 들을 게 뻔하다.
“너희 집 가자.”
영이가 선포하듯 말한다. 영 달가워하지 않는 말투지만 분명 가자고 말했다.
민준은 황급히 손으로 입을 가린다. 입가를 문지르는 척하며 저도 모르게 삐져나온 미소를 숨긴다. 민준이 집에 초대한 후로 한참이 지났는데도 영이의 입에서 놀러 가자는 말이 나오지 않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이 되던 차다.
“언제 갈까?”
들뜬 마음을 숨기고 차분하게 묻는다.
“오늘.”
올해 들어 가장 더운 날이라는데 발걸음이 가볍다. 영이와 함께 언덕을 오르자, 어디선가 아버지의 미소처럼 포근한 바람이 불어온다.
내리막길을 부지런히 걸어 용추빌라에 다다른다. 영이가 있어서인지 여덟 가구가 사는 4층짜리 빌라가 거대한 장난감처럼 느껴진다. 벗겨진 페인트와 이 나간 벽돌도 오늘따라 선명하게 보인다. 쪽팔리지만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다. 민준은 고동색 알루미늄 문을 잡고 말한다.
“들어가자.”
“아니다. 안 갈래.”
갑자기 영이가 고개를 젓는다.
“뭐? 왜?”
민준이 다급하게 묻는다.
“엄마가 집에 일찍 들어오래.”
영이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면서 말한다. 민준은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한 영이를 의심쩍은 눈으로 쳐다본다. 여태 같이 하교했지만 영이가 엄마와 연락하는 걸 본 적이 없다.
“더운데 물이라도 마시고 가.”
주스라고 말하면 좋을걸, 집에는 있는 건 소주와 물뿐이다.
“아냐. 됐어.”
“그럼 순대 먹을래?”
“안 간다니까?”
영이가 버럭 짜증을 낸다. 평소에도 자주 언성을 높이지만 오늘은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너나 처먹어. 거지 같은 게.”
민준은 입을 반쯤 벌리고 씩씩대며 돌아가는 영이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땐 이미 영이가 사라진 뒤다.
정작 화를 내야 하는 건 민준인데도 조금의 분노도 일지 않는다. 그저 한 방 맞은 듯 어리둥절할 뿐이다.
그 뒤로 영이는 집에 가자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민준을 찾아오지도 않았다. 그래서 민준은 나흘간 혼자 언덕길을 올랐다.
금요일에도 민준은 혼자 큰길을 걷는다. 영이가 준 선크림을 덕지덕지 발랐건만 태양은 여전히 따갑다. 열기를 잔뜩 머금은 아스팔트는 민준의 해진 신발을 녹일 듯이 뜨겁다.
언덕 초입에서 민준은 불현듯 깨닫는다. 영이가 없으니 제 마음대로 골목 사이사이를 누빌 수 있었다. 편의점에 가서 쌍쌍바를 사서 편하게 먹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발은 알아서 큰길만 찾아다니고, 편의점은 죄다 지나쳐 왔다.
영이가 옆에 있는 게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그걸 깨닫자 등골이 서늘해진다. 익숙함은 민준이 가장 경계하는 감정이다. 먹이를 구한 후 짧게는 삼 개월, 길게는 일 년마다 이사 다녀야 하는 민준에게 불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민준은 일부러 속도를 올려 걷는다. 몸에 들러붙은 찝찝함을 털어내려는 듯이 팔을 힘차게 저으며 다짐한다. 어떻게서든 영이를 집에 초대하겠다고.
그러고 맞은 일요일. 민준은 늘 그렇듯 아침 일찍 집을 나선다. 주말이면 학교에 갈 때보다 더 일찍 집 밖으로 나온다. 슈퍼에서 산 보름달 빵을 씹으며 동네를 배회한다.
정처 없이 걷다가 영이의 집 앞을 지나친다. 혹시 영이와 마주치지 않을까 철문 너머를 기웃대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늘에 어스름이 깔리고 나서야 집으로 향한다. 현관문을 열자 아버지가 거실로 나온다. 아주 멀쩡한 모습으로. 민준의 가슴이 울렁거린다. 술에 취하지 않았을 때의 아버지는 루마니아에서의 다정한 아버지를 떠올리게 한다.
“영이라 그랬어?”
아버지가 자상한 말투로 묻는다. 금방이라도 민준을 꼭 안아줄 것만 같다. 민준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네, 맞아요.”
“낮에 집에 왔었다.”
그 말에 심장이 철렁한다. 황급히 집안을 훑지만 어디에도 핏자국은 보이지 않는다.
“벨이 울려서 문을 열었더니 웬 성인 여자랑 여자 꼬맹이가 서 있는 게 아니냐.”
아버지가 마구잡이로 기른 머리칼을 손으로 쓸어 넘긴다.
“여기 민준이네 집 아니에요?”
아버지가 영이의 목소리를 흉내 낸다.
“안녕하세요. 저는 호강중학교 1학년 3반 주영이라고 합니다. 민준이랑 단짝 친구예요. 큭큭큭.”
조롱 섞인 웃음소리를 내더니 이어 말한다.
“아주 귀엽더구나. 공주처럼 레이스 달린 하얀 원피스를 입고 엄마 손을 꼭 쥔 모습이.”
불현듯 그네를 타면서 본 영이와 그 애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오늘도 비슷한 모양새였으리라.
“걔 엄마가 나한테 이걸 주면서 귀한 말씀 좀 들어보라고 하더구나.”
아버지가 전단지처럼 빳빳한 종이 한 장을 내민다. 종말이 가까워졌다는 글귀가 크게 박혀 있다.
“그러면서 십자가 목걸이를 나한테 주더군. 십자가라니!”
아버지의 목소리가 격양된다.
“그년 얼굴에 집어 던졌다. 그랬더니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뒷걸음치더구나. 끅끅끅.”
민준은 왠지 모르게 그 말이 반갑다. 조심스럽게 아버지의 의중을 떠본다.
“그럼…… 포기할까요?”
“포기? 포기를 왜 하냐. 십자가만 놓고 오게 해라. 아주 맛있게 먹어주겠어.”
아버지의 눈이 희번덕거린다. 그 기세에 눌려 민준은 묻고 싶은 것을 입 밖에 내지 못한다.
‘영이를요, 엄마를요?’
***
월요일.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영이가 의자를 끌고 와 민준의 옆에 앉는다.
“너네 아빠 죽이더라.”
목소리를 잔뜩 낮추었어도 굉장히 흥분한 상태인 게 눈에 훤히 보인다. 민준은 속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그치. 죽이지. 사람을.
“우리 엄마 목을 졸랐어.”
영이가 오른손을 뻗어 허공에 대고 목을 조르는 시늉을 한다.
민준은 놀람을 금치 못한다. 아버지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근데, 그게 그렇게 통쾌한 일인가? 제 엄마의 목을 졸랐는데? 민준은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갸웃한다.
“개짜릿해.”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영이가 몸을 바르르 떤다.
뭐야? 자기 엄마 아니야? 께름칙해하며 환희에 찬 영이의 얼굴을 바라본다. 이 아이는 도저히 종잡을 수가 없다.
종이 울린다. 영이가 이따 집에 같이 가자고 말하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일주일만이다. 아버지 덕분에 평행선을 그릴 것만 같았던 사이가 좁혀졌다. 민준은 방과 후가 기다려진다.
하굣길 내내 영이가 재잘재잘 떠든다. 꽤 신나 보인다. 하얗게 쏟아지는 햇살 사이로 얼핏 학교에서만 짓는 미소가 보이기도 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민준까지 사뭇 기분이 상쾌해진다.
“왜 웃어?”
뭐라 떠들어대던 영이가 갑자기 묻는다.
“아, 아냐.”
민준은 황급히 고개를 돌린다. 자기가 웃고 있다는 자각도 하지 못했다. 그런 민준이 귀엽다는 듯 영이가 씩 웃으며 묻는다.
“나한테 안 물어봐?”
“뭘?”
“너희 집에 왜 왔냐고.”
민준은 잠시 고민한다. 자기가 꼭 알아야 하는 건지 판단이 서지 않아서다. 먹이에게 왜 찾아왔냐고 물어보는 뱀파이어도 있을까?
“야.”
영이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민준을 부른다. 민준은 주인의 목소리에 잘 학습된 강아지처럼 정신이 번쩍 든다.
“나 주일마다 너희 동네 돌아다녀.”
말을 내뱉고는 영이가 민준을 힐끔댄다.
“돌면서 전도해.”
또다시 영이가 민준의 눈치를 살핀다. 민준은 알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인다.
“야.”
영이가 또 부른다.
“왜?”
“할 말 없어?”
“뭔 할 말?”
민준이 낙타처럼 느리게 두 눈을 깜빡인다.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걸까? 고민하는 사이, 민준을 지그시 바라보던 영이가 피식 웃는다.
“아니다.”
그러고는 민준의 어깨를 토닥인다.
“너 마음에 든다.”
뭐야? 어린애 주제에. 기가 찬다. 그런데 그 말이 썩 기분 나쁘지 않다.
도덕 수업 시간. 책상에 팔을 그러모은 채 생각에 잠겨 있는데, 누군가가 민준을 부른다.
“야, 한민준.”
고개를 들자 장성웅이 서 있다. 항상 붙어 다니는 최한결도 옆에 있다. 오늘도 서로의 몸과 손을 엮고 있다. 둥그렇고 검게 탄 애와 마르고 하얀 애가 붙어 있으니 볼링공과 핀처럼 보인다.
“불렀으면 대답을 해야지.”
성웅이 어린아이를 타이르듯 말한다. 민준은 대놓고 한숨을 쉰다. 영이도 그렇고, 성웅도 그렇고 얘네들은 왜 이렇게 대답에 민감하게 구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왜?”
민준이 살짝 짜증 섞인 투로 묻는다.
“우리 같은 조다.”
성웅이 주위를 둘러보라는 듯이 고개를 돌린다. 교실 아이들이 책상을 옮기며 모둠을 만들고 있다. 칠판에는 민준, 성웅, 한결이 같은 조라고 적혀 있다.
딴생각에 빠져 있느라 어떤 연유로 그런 결과가 나온 지 듣지 못했다. 다만 조를 못 구한 애들끼리 모였겠거니 짐작한다. 이들도 민준만큼이나 교실에서 환영받지 못하니까.
“원래 네 명이 한 조인데, 우리는 셋이야.”
한결이 말한다.
“승모가 있었으면 승모도 같은 조일 텐데.”
성웅이 덧붙인다.
“아니지. 승모가 있었으면 민준이가 전학 안 왔겠지.”
한결이 반박하자 성웅이 작게 감탄한다.
“그런가? 똑똑한데?”
“응, 내가 좀.”
민준을 불러놓고는 자기들끼리 쑥덕이는 아이들을 민준이 한심해하며 쳐다본다.
셋이 T자 모양으로 자리를 만들어 앉는다. 한결이 모둠 활동지를 가지고 온다. 대충 훑어보니 도덕적 삶이란 무엇이고, 왜 필요한지 토의하는 과제다. 처음 보는 과제지만 벌써 지긋지긋하다. 이 과제도 앞으로 아홉 번은 더 반복해야 할 테니까.
민준은 활동지를 한결에게 넘기고 끊겼던 생각을 이어 한다. 그게 더 재밌을 듯하다. 과거에 친하게 지낸 인간들을 하나씩 떠올리는 중이었다. 영이를 집에 데려갈 방법을 고민하다가 촉발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서 어느덧 사십 년 전까지 흘러갔다.
민준도 처음부터 인간과 교류하지 않은 건 아니다. 이십팔 년 전 일이 없었다면 지금도 보통의 중학생처럼 살고 있을 수도 있다.
“같은 조가 됐으니까 이제 비밀을 알려줄게.”
갑자기 성웅이 민준에게 몸을 밀착한다. 땀 마른 냄새가 코를 찔러 상념이 뚝 끊긴다. 민준은 의자를 옮겨 몸을 조금 떨어뜨린다. 전혀 궁금하지 않고 알고 싶지도 않지 않지만 떠드는 걸 굳이 말리지도 않는다.
성웅과 한결이 상체를 수그려 다른 학생 뒤에 숨는다. 무언의 신호를 주고받더니 무언가를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성웅이 말한다.
“승모가 죽었잖아. 우리 학교 뒷산에서 발견됐어. 추락사였다고 뉴스 기사가 났지. 근데 그러면 어디가 깨지든 부러지든 해야 하잖아?”
대답을 바란 질문은 아니었는지 성웅이 말을 잇는다.
“내가 매일 산을 넘어서 등교하거든? 승모가 발견된 그 산 말이야. 거기서 동네 어른들이 하는 말을 들었는데 승모의 시체가 구운 오징어처럼 쪼그라들어 있었대. 누군가가 피를 쪽 빨아들인 것처럼. 여기서 끝이 아니야. 목에 두 개의 구멍이 나 있더래. 이 정도 간격을 두고.”
성웅이 검지와 중지를 펴 브이를 그린다. 그러더니 본인의 송곳니 부분에 갖다 댄다.
“뱀한테 물린 거 아니야?”
민준이 떨떠름한 척하며 대화의 방향을 바꾸어 보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성웅은 완강하다.
“절대 아니야.”
“이건 말이야…….”
한결이 고개를 한껏 숙인다. 곁눈으로 도덕 선생의 눈치를 살피며 나지막하게 말한다.
“괴생명체의 짓이 분명해. 뱀파이어 같은…….”
“켁, 켁, 켁.”
민준이 사레에 들린 것처럼 기침을 주체하지 못한다. 멍청한 중학교 1학년의 입에서 본인 종족이 거론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어때? 구미가 당기지? 너라면 우리 이야기에 관심 가질 줄 알았어.”
성웅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씩 웃어 보인다.
‘내가? 관심을 가졌다고?’
민준은 그간 자신의 태도를 돌이켜 본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떻게 그런 결론이 도출됐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첫날 알았어. 거기가 누구 자리인지 아냐는 질문에 반짝이던 너의 눈. 조심하라는 경고에도 두려워하지 않던 용기. 그런 자질을 갖춘 애가 이 이야기에 반응하지 않을 리가 없지.”
성웅이 비장한 눈빛으로 민준을 바라본다. 민준은 시선을 피하다가 이번에는 한결과 눈이 마주친다.
“아직은 우리 둘만 알고 있어. 앞으로 사람을 더 모을 거야. 너까지 하면 셋. 하나 정도만 더 있으면 좋겠어.”
한결이 안경을 추어올린다. 그러고는 목표물을 찾듯 가느다란 눈으로 교실을 휘 둘러본다.
“사람을 모아서 어떻게 하려고?”
민준은 관심 없다는 태도를 고수하며 묻는다. 하지만 속은 바짝바짝 타들어 간다.
“호강 탐정단을 꾸릴 거야. 의문의 죽음을 본격적으로 파헤치는 거지. 하지만 아주 은밀하게 진행해야 해. 왜냐면,”
성웅과 한결이 동시에 한 곳을 바라본다. 그곳에는 태영이 앉아 있다.
“승모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면 쟤가 쥐잡듯이 잡거든.”
성웅이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쟤는 왜 그 말을 못 꺼내게 하는데?”
민준이 묻는다. 진지한 얼굴로 고민하던 한결이 먼저 답한다.
“반장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이 아닐까?”
“승모랑 꽤 친했잖아. 슬픈 일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거겠지.”
성웅도 의견을 낸다.
민준은 태영을 흘끔 바라본다. 그는 모둠 활동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세상 물정 모르는 모범생이 사실은 뭔가를 알고 있는 걸까? 만약, 먹이 사냥에 방해가 된다면 쟤도 승모란 애처럼 구운 오징어로 만들어 하나……? 고민하며 그를 길게 응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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