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에 자리 잡은 성채는 흔들리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 어릴 때와는 다르게 조금의 충격만 받아도 곧 무너질 것처럼. 보통 정신은 청소년기 동안 성숙하고 튼튼해지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나는 그 끝자락에 와서 급격하게 약해지고 있었다.
내가 아끼고, 단단히 다져온 성벽은 더 이상 강철 같지 않았고, 먼지바람에 부서질 듯 한없이 취약해 보였다. 손을 뻗어 금을 막아보려 해도 균열은 멈추지 않았고, 머지않아…. 머지않아 속이 드러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겁이 났다.
멘탈이라는 확고했던 성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회광반조. [ 回光返照 ] - 해가 지기 직전에 잠깐 하늘이 밝아진다.
내 인생은 근래 그 어느 때보다도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뭐, 적어도 내 생각으로는 말이다.
소설, 한국, ㅎ. 대출증을 챙겨오고, 동네의 도서관에서 책을 골랐다.
책의 제목은 〈 회광반조 〉, 해가 지기 직전에 잠깐 하늘이 밝아진다는 걸 이용하여 만들어진 사자성어를 그대로 제목에 이용한 것이다. 책을 추천해 주는 SNS 계정에서 강력하게 추천하길래, 내용을 보기로 했다. 피폐한 분위기의 소설이라고 하던가.
피폐, 피폐라. 피곤할 피에 해질 폐.
생각해 보니까, 굳이 이런 책까지 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이미 내 인생이 ‘피폐’인데, 깔깔.
나는 책을 대출하여 집에 가지고 왔다.
끝은 허무했다. 늘 그렇지 뭐. 인생도 그런 것이다. 허무, 피폐.
피폐란 무엇일까.
나는 피폐에 대해 이런 정의를 내리고자 했다.
‘추악하지만 아름답다’고나 할까.
그래, 그렇게 결론지었다. 그 이후로는 그런 것들의 정의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조차도 없었으니까….
왜 내 인생이 이렇게 피폐해진 걸까?
무엇에 절어서 이렇게 되었단 말일까.
고카페인 함량 음료?
조언이라는 위선 뒤에 숨은 나를 공격하는 말?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 원인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나는 기억의 저편을 거슬러 올라갔다.
중학교 1학년 때였다.
내 사촌인 현우 형이 미국 MIT(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에 입학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시 설명하자면, 사촌 형이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는 말이다.
이르게 발표가 나는 전형에 지원했고, 12월 중순에 합격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곧 설 연휴에 우리도 귀경해 모든 가족이 모이자, 고모와 고모부는 온 동네 사람들과 가족들에게 자랑했다. 우리 엄마·아빠도 질 수 없다고 생각해 아들 공부에 열을 내게 된 것이고, 그 결과가 지금의 나였다.
내게는 현우 형만큼의 의지가 없었을까, 아니면 공부도 재능인 걸까?
기분이 허무하고 씁쓸하기는 해도, 이왕 현우 형이 생각난 김에 전화라도 걸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현우 형!”
“연우다. 오랜만이네? 그쪽은 이제 밤인가? 웬일로 전화야?”
“어. 그냥 오랜만에 생각나서. 이제 두 달만 있으면 새해잖아.”
“그러네. 벌써 일 년이 거의 다 지나갔다. 시간 참 빠른데?”
“어떻게, 요즘은 잘 지내?”
“나쁘지 않아. 여기 와서도 살만하긴 하더라고. 영어만 잘하면 되기는 하더라고. 다 엄마랑 아빠 덕분이지. 아니었다고 해봐, 내가 어디서 뭘 하고 있을지 짐작조차 안가.”
“그건 다행이네.”
“뭐, 할머니 생신 때 가족들 모이면 영상통화 할거긴 하지만, 미리 알면 좋으니까. 올해 크리스마스쯤에는 뵐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해드려. 십이월 초에 종강이니까.”
“알겠어, 형 몸조심하시고. 화이팅.”
“그래, 연우 너도. 공부 열심히 하고. 파이팅!”
짧은 통화 종료음과 함께 전화가 끊겼다.
언제나 내 동경의 대상이자 아주 약간의 질투 대상인 사촌 형은 정말이지 늘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현우 형은 나에게 멀게만 느껴지던 사람이었고, …지금도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현우 형이 미국 유학을 떠난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친척까지 다 모여 가족 모두가 자랑스러워했지만, 그 자리에 있었던 나에게는 그저 멀고 다른 세계의 이야기 같았다. 현우 형은 항상 성적이 우수했고, 모든 일이 술술 풀리는 듯 보였다. 학교에서도, 집안에서도 늘 주목받던 현우 형은 나에게 대단한 사람이라는 인식과 동시에 딱 완벽한 사람으로 각인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형을 떠올릴 때마다 나와의 차이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나는 현우 형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아니. 그럴 자신이 없었고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터였다. 부모님에게 형과 비교될 때마다 마음속에서 무겁게 내려앉는 그 감정은 나를 더욱 움츠러들게 하였다.
불현듯 작년 추석쯤에 현우 형이 내게 해준 말이 떠올랐다.
‘인생은 어쩌면 이정표 없는 길이야. 때로는 두려움이 앞설지라도, 남의 길만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용기 있고 당당하게 내 길을 만들어 나가면 돼. 그러면 성공한 인생이야. 성공은 상대적인 것도, 절대적인 것도 아니야. 그냥 내가 어렸을 때부터 충분히 바라왔고, 언젠가 바랐을 인생을 살고 있는 것 그 자체가 성공했다는 거야. 그리고, 정말 지쳤으면 조금은 쉬어도 되잖아. 며칠, 몇 개월 어쩌면 몇 년 동안 마음을 추슬러야 할지라도 결국에 그 고갯길을 넘었다는 건 큰 의미가 있는 거니까. 그냥 그 고갯길을 넘은 후에는 나 자신의 기록을 경신하면 되는 거야. 그게 성공이고 인생이지. 뭐, 내가 삶을 얼마나 살았다고 아직 그런 걸 논할 나이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내 생각은 그래.’
그 말을 들었을 때는 펑펑 울었던 것 같다. 중간고사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이런 말을 들어서, 마치 나를 위한 하나의 시처럼 느껴졌다. 물론 시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발기발기 찢어지고 말았지만.
사교육 때문인지 그 속에 가려진 의지와 노력 덕인지는 몰라도 내 기준에서는 성공한 사람인 현우 형을 부러워하면서도, 나 자신과 비교하면 그저 불만 거리밖에 되지 않을 뿐이었다.
희망이 뭘까?
어스레한 밤길을 걷다가 스스로 답이 돌아오지 않을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참 힘든 날이었나보다.
학원에서는 선생님이 말하기를, ‘연우야, 중간고사 성적이랑 이번 테스트 성적이 말 그대로 심각하다. 어떻게 얼마나 선생님이랑 너희 부모님이 노력해야 점수를 잘 받을 수 있는 거니? 노력하고 있는 건 맞니?’
…내 노력을 남이 알아주지 않는 건 이제 조금은 괜찮았다.
그렇지만, 정말 아무리 그래도, 내가 노력하는 모습을 일주일에 세 번은 꼬박 지켜본 사람이 저런 말을 했다는 것에, 뒤통수를 야구 방망이로 얻어맞은 것처럼 아팠고, 아픔 다음에는 실소가 찾아올 뿐이었다.
그 어스레한 밤길을 지나 집으로 돌아오면, 엄마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학원은 잘 갔다 왔어? 잠깐 아빠랑 얘기 좀 하자.”
“…네.”
나는 방에 가방을 두고 와 자세를 고쳐 앉았다. 다가올 폭풍은 생각보다 큰 것 같았다.
“이젠 나도 그만 말하고 싶다. 우리가 투자를 하면, 너는 노력과 성적으로 보답해야 하는 거잖아. 까짓거 공부 그거 하는 게 아빠 회사 갔다 오고 엄마 집안일하는 거보다 어렵고 힘들어? 학원 선생님께 말 들었다. 수학 못지않게 영어도 중요한데, 벌써 이러면 내신이랑 나중에 수능은 어떻게 하고 취업은 또 어떻게 하려고 그래? 지금 영어를 문법 같은 기초라도 쌓아놔야 토익 시험을 보든 뭘 하든 할 거 아냐. 대학 잘 가고 그런 거라도 따놔야 좋은 조건에 좋은 곳으로 취업하지. 안 그러면 월 이백 초반씩 받아서 어떻게 집 사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결혼해서 화목한 가정 꾸리고 그러겠냐. 어?”
“….”
“또 말이 없구나.”
“….”
“에휴, 그래. 그만 말하련다. 나도, 아빠도 지쳤다. 포기할게. 이제 그냥 들어가서 엄마 말대로 너 하고 싶은 일 해라.”
이 대화는 나에 대한 마지막 희망이었을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을까? 내게서 ‘네, 앞으로는 진짜 열심히 해서 성적 올릴게요.’라는 대답을 듣고 싶었던 걸까?
이제 제발 그만 말해줬으면 좋겠다. 그만 피폐하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끝까지 나를 짓밟는 것 같았다.
…희망이 뭘까?
헐어버릴 대로 헐어버린 마음에 병균이 들어온 건지, 내가 나약해서 그런 건지. 매일 무기력하고 세상이 암울해 보였다. 나를 중심으로 주위가 점점 색을 잃고 흑백으로 변해갔다. 흑백 영화 필름에도 흥미로운 장면은 있지만, 내 흑백 필름은 딱딱하고 지루한 동시에 암울하기까지 했고, 끝내 구원 없는 결말로 흘러가고 있었다.
기말고사는 내가 놓아주었다.
더 이상 무언가를 붙잡고 있다가는, 외려 생명의 끈을 놓칠 것 같았다. 이제 누군가가 내게 강요하지도 않고, 나도 내게 강요하지 않았다. 마음속의 공(空)이 모든 걸 집어삼켜, 장자가 호접지몽을 꾼 것처럼 내가 공(空)인지, 공(空)이 나인지 구별할 수가 없었다. 사실은 구별할 필요도 없었다.
몸 군데군데에 나 있는 자상도,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다. 나마저 신경을 쓰지 않았기에, 정말 아무도 없다고 할 수 있었다. 내 주변이 흑백화가 됨과 동시에 그저 내 영혼도 복잡하고 화려한 것이 아닌, 단순한 공(空)이 되었다. 마음속의 빈 곳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그 작은 구멍으로도 사람의 심장이 빨려 들어가기에는 충분했다.
이제 와서 느끼는 충동이란 별거 없었다. 그냥 검고 하얀 마음, 이따금 형언할 수 없는 충동에 어떤 감정이 생기곤 했는데, 그 감정은 내가 홀로 있을 때만 마음속에 머물렀다. 사물이 아니라 단순한 감정임에도 너무나도 피폐해진 내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런 직접적인 감각은 없었으나, 나는 그렇게 보았다.
그런 흑백의 감정이 무채색의 마음속에 머물 때면, 살갗을 도려내고, 근육을 찢고, 뼈를 정으로 깎는 것만 같았다. 살은 멀쩡한데도, 통각은 제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다. 식도와 그 옆의 기도는 화끈거리며 내 숨을 끊으려 하고 있었으며, 허파는 통각과는 달리 제구실도 못 하고 있었다. 내 몸은 부위마다 따로 놀고 있었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희망이 없는 피폐의 끝은 이런 것이었다. 몸마저도 어떤 부분은 흑, 어떤 부분은 백이 되는 느낌이 들었다. 내 두 팔을 모두 뜯어먹고 싶었다. 칼만 주변에 있다면 칼집에서 그것을 뽑아내 복부를 무자비하게 찌르고, 베고서는 기타 부위들도 난도질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제 남은 내 소원은 딱 하나, 죽고 싶다는 것이었다. 아름답지 못한 흑백의 세상을 보며 죽은 눈으로 살아가느니, 그저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감정은 전혀 진정이 되지 않았다. 감정은 원망과 아픔, 피폐를 먹고 몸집을 불려, 대처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는 이미 광대하여 크기가 얼마나 큰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무언가가 되어버린 후였다.
흑과 백으로 나뉜 세상 속에서 나는 흑에도 백에도 속하지 못한 어중간한 회색으로 살다가 스스로 죽을 운명이었나보다.
밤늦게 밖으로 나가 등굣길을 걷다 보니 일렬도 서 있는 개나리 나무와 그 가지들이 보였다. 나는 고의로 가지를 꺾었다. 흑백 속에서 그 꽃잎은 보지 못했지만, 개나리꽃은 아마 흰색일 것 같았다. 왜냐하면 가지가 검은색이었으니까, 무언가 반대되는 색을 가졌으리라고 어설픈 짐작을 한 것이다. 개나리 가지를 꺾고 나니 엎지른 물처럼 마음 그 바닥에 잔류해 있던 희망도 마저 증발해 버렸다.
곧 기행을 끝내고 집에 돌아왔다. 누가 나를 찾지도 않는데 이불 속에 나를 묶어놓고 꼭꼭 숨었다. 어쩌면 내가 나를 죽이기 위하여 찾고 있다고 생각해도 무리는 아닐 듯했다. 스스로를 옥죄기 위해서 이불 속이라는 좁은 공간에 제 발로 들어가 숨을 막았다 해도 무리는 아닐 터였다.
어쨌건 간에 이불 속에서 눈물을 흘리는 동시에 숨을 내쉬다 보니, 공기는 이미 혼탁해져 무엇이 내 몸 위의 이불이고 무엇이 내 몸 아래의 침대인지 분간할 수가 없게 되었다. 혼미한 정신 속에서도 나는 생존이라는 그 본성을 목표로 했던 걸까.
이산화탄소가 가득한 공기, 옅어지기 시작한 의식에 근육에 힘도 잘 들어가지 않았지만, 생존 본능이 들어 정말 힘겹게 두껍고 무거운 이불을 걷어냈다. 창문은 살짝 열려있었다. 달빛과 인공적인 불빛이 동시에 창문 사이로 스며들었고, 열려있는 창문으로는 숲 쪽의 신선한 새벽 공기가 들어와 내 방과 폐 속을 돌고 있었다.
솔방울샘에서 멜라토닌이 분비되고 있는지는 몰라도, 음울하면서도 묘한 새벽 감성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저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었는데, 그건 너무 어려운 소원이었을까.
내게는 기저에 절망이 짙게 깔려있었다. 처음에는 ‘누가 이런 나를 알아주었으면’ 했지만, 곧 ‘아무도 이런 나를 알려고 하지도 말고, 내 곁에도 오지 말았으면’ 하는 이기적이면서도 음울한 생각으로 바뀌게 되었다.
나는 아까까지 든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었다. 앞으로 몇 주는 같이 지내게 될 것 같은데, 그저 ‘그 감정’이라고 불러주기에는 퍽 정이 없는 것 같아서, 메마른 정을 바닥까지 긁어모아 한두 방울 정도를 확보해 그 감정에게 붙여줄 이름을 생각해 냈다.
흑백감, 좋다. 흑백감. 이름에 만족했는지 흑백감은 아스라이 사라져갔다. 분명 조금 전까지 한껏 흑백감에 대해 묘사했음에도, 그때 들었던 구체적인 감정과 생각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흑백감, 이름을 부를수록 제법 나쁘지 않게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계속 그 이름을 부르니 좀 전에 사라졌던 구체적인 생각이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피폐함, 어두움, 우울함, 음울함과 환멸, 나약함과 아픔에다가 남아있던 세상에 대한 정과 희망 몇 방울, 이게 바로 내가 느꼈던 ‘흑백감’이었다. 그 흑과 미량의 백이 만나 하나의 감정을 이룬 것이다. 흑백감에서 백은, 분명 따로 떼어놓으면 긍정적인 감정임에도 흑과 만나니 기존의 백에 대한 반동이 일어 검은 백이 되었다.
언제 또 흑백감이 찾아올지는 모르겠으나, 그때는 찌르든 매든 조이든 뭔 짓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곧 나는 흑백감에 살해되기 전에, 내가 먼저 선수를 쳐야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참, 이런 내가 과연 행복할 자격이 있을까?
누군가 흑백감은 무엇인가? 물으면,
나는 아주 단순한 대답할 것이다.
백(白) 하나에, 흑(黑) 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