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고요하고 쌀쌀한 아침.
이제 막 해가 떠올라 아침이 왔다는 것을 온 세상에 알리고 있었다. 부스스하게만 보이는 햇살은 창문 안으로 스며들어와 내게 눈인사를 건넸다.
새벽부터 깨어나 잠자리를 뒹굴며 뭉그적대다가, 일출과 동시에 이부자리를 정리하고서는 부지런히 학교 갈 준비를 시작했다.
오늘은 다름 아닌 3년 만의 입학식이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어젯밤 잘 다려놓아 각이 빳빳하게 살아있지만, 소재 자체는 꽤 부드러운 교복을 단정히 입은 나는 거실 쪽으로 인사를 하자마자 집을 나섰다.
아직은 겨울이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초봄이었다. 언 땅이 막 녹기 시작하는 이때의 바람은 그냥 바람이 아니었다. 유난히 매서웠던 이번 겨울의 그림자가 완전히 걷히지 않고 몇몇 구석에 드리워 겨울의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작고 어린 봄은 풀렸다가 얼어붙는 날의 반복 속에서, 정신을 잃고 헤롱거리며 꽃을 터트릴 준비를 하는 개나리에나 손을 댈 수 있었다.
그래도 아주 찬찬히, 조금씩 풀리고 있는 날씨는 막 피어나려 애쓰는 개나리처럼, 꽝꽝 언 나의 마음을 응달에서 꺼내어 빛으로 서서히 녹이고 있었다.
하늘로 눈을 돌려보니, 쏟아지는 햇살이 망막까지 들어왔다. 곧바로 고개를 돌렸지만, 몇 번 눈을 감았다 떠도 잔상이 남아 눈에 아른거렸다.
눈을 껌뻑거리는 동시에, 보이지는 않아도 살갗으로 느껴지는 어린 봄바람은 안 그래도 복잡할 때 너무 먼 곳을 바라볼 필요는 없다며, 나에게 ‘올해도 열심히 살아보자’고 말하며 작은 응원을 속삭임과 동시에 등을 떠밀어주었다.
“그래, 나연우. 할 수 있다.” 그 한마디를 내뱉을 즈음에 교문 앞까지 도착했다.
그런데, 아차. 줄지어 늘어선 벚나무와 학교를 감싸는 울타리 그사이에 삐죽 튀어나와 있던 개나리 가지에 가방 왼쪽에 있는 물병을 끼워두는 망에 끼었다. 나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고, 앞으로 가다가 얇은 나뭇가지가 꺾이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니까, 개나리 가지가 꺾였다는 말이다. 나무에 미안한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이미 그 실수를 돌이킬 수는 없는 것이었다.
나는 학교 안으로 들어올 때 중앙현관이 아니라, 세 개의 현관 중 학교 건물의 오른쪽에 위치한 현관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조금은 긴 복도를 거의 끝에서 중간쯤까지 걷게 되었다. 반에 들어오니 나보다 먼저 온 친구들이 네다섯 명 정도 있었다. 내 자리를 찾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반의 분위기는 차분했다. 사람뿐만 아니라 공기까지.
내 자리는 비교적 앞쪽에 있었다. 2번째 줄 2번째 자리. 앞자리와 뒷자리 이름을 보니 아마 번호순으로 책상을 둔 것 같았다. 역시, 새 학기라 그런지 반에는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10608’. 내 학번과 이름이 적힌 책상의 가방걸이에 지난번 예비 소집일 때 받은 교과서들이 전부 담긴 무거운 책가방을 걸어놓고선, 창가에서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쪽 창 너머에는 먼 산이 없어서 아무거나 볼 만한 것을 찾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물론 지루하고 볼 게 없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핸드폰에 자동으로 손이 갔다.
8시 45분이 되자마자 종이 쳤고, 곧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우리 육 반 친구들 반가워요~ 선생님은 임은숙 선생님이에요. 우리 서정고등학교 일 학년 육 반의 담임을 맡게 될 거고, 교과는 오 반부터 팔 반까지 국어 선생님도 담당할 예정이에요. 아무쪼록 우리 반 친구들 만나서 반갑고, 앞으로 고등학교 일 학년 생활, 즐겁고 안전하게 잘 해봅시다!”
담임이 될 선생님의 인사와 함께 내 마지막 격동기인 1년의 막이 올랐다. 정말 중요한 1년을 함께할 반 친구들의 이름을 보니 전혀 모르거나 한두 번만 본 이름들이 태반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을 꼽으라면, 이쪽으로 떨어진 게 나 혼자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민준이도 같은 학교, 그것도 우리 반이었다. 만약에 민준이까지 없었다면 이 학교에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 고립된 내 상황은 희망에 가득 차면서도 절망에 가득 찬, 그런 모순되고 기이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입학식이라면 중학교 때처럼 강당에서 뭐라도 할 줄 알았지만, 그쪽 건물은 보수공사 중이었다. 그런 이유로 한 반만 조그마한 시청각실에 대표로 가고, 나머지 반의 아이들은 자기 자리에 앉아 멀뚱히 TV를 보기만 할 뿐이었다.
TV로 개학식 겸 입학식이 진행되는 상황을 보기만 해서였을까, 길게만 느껴졌던 시간이 지나 쉬는 시간이 찾아왔다. 모두가 어색한 공기를 깨줄 사람을 기다리며 쭈뼛대고 있었고, 나도 그 부류에 속해 있었다. 다행히도, 그다음 쉬는 시간에는 조금 더 사정이 나았다.
둘 내지 네 명이 모여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또 누구는 복도로 나가서 친한 친구와 대화하고 있었다. 아주 평범한 입학식 날의 풍경이었다. 복도를 바라보는 내 머릿속에서는 오로지 한 개의 문장만이 맴돌고 있었다.
17번째 해는 무탈하게 보낼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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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왔다. 나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무거운 가방을 벽 쪽에 있는 공간에 내팽개쳤다.
고등학교 첫날인데도, 입학식 날인데도 중학교처럼 단축수업 같은 건 없었다. 그래도 학원을 가기 전까지는 20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마침 엄마도 밖에 나가 있었기에 나는 훨씬 자유로웠다.
적어도 잔소리는 듣지 않을 수 있었다.
방에 들어와 침대를 보니, 왜인지 단 5분 만이라도 눕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나는 옷을 갈아입지도 않은 채, 바깥의 공기와 먼지를 잔뜩 머금은 그 옷을 입고서 긴 책장 옆에 있는 푹신한 침대에 뛰어들고서는 여름을 제외한 계절에 쓰는 무겁고 두툼한 이불을 덮었다. 몇십 초가 지나 숨이 조금 막혀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이불을 옆으로 제쳤다. 오른쪽으로 돌아눕자, 문학부터 비문학 분야까지, 정말 각양각색의 책들이 한데 모여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저 책은 정말 귀퉁이가 닳을 정도로 많이 읽었었는데.
문득 어제 그 한밤중에라도 숙제를 다 해놓지 못했다면 이렇게 달콤한 순간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누워있다가, 앞으로의 생활이 어떻게 될지 궁금해졌다. 이번 한 해는 무탈하게 보낼 수 있을지, 고등학교 3년이라도 별일 없이 보낼 수 있을지, 무사히 모의고사, 첫 시험, 그다음 시험과 거의 2년 반 후에는 수능을 볼 수 있을지. 생각을 이어나갈수록 나오는 것은 내게서 더 멀리 떨어져 있는 일이었지만, 적어도 상상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계속 앞으로 있을 시험을 생각하니 작년의 성적표가 떠올랐다. 그저 머릿속으로 성적표를 그리기만 했을 뿐인데, 내 얼굴은 금방 일그러지며 온갖 싫은 티를 다 내고 있었다. 중학교 1학년과 2학년 때만 해도 공부를 잘하는 것 같았는데, 3학년 때 주저앉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얕은 한숨을 뱉었다.
뭐, 그래도 고등학교가 중학교보다 힘들기는 하겠지만, 뭔가 좀 다르지 않을까? 하는, 정말이지 말 그대로 근거가 하나도 없는 막연한 희망을 품게 되었다.
어쨌든 긍정적인 생각을 이어가니 새로운 시작에 대한 두려움이 아주 조금은 걷혀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저 올해는 작년처럼 아픈 한 해가 아니라 희망차고 행복한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는 것. 역시, 막연한 것이더라도 희망을 품고 있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닐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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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고등학교에 들어온 지도 나흘이 지났다. 일주일 전에는 학교 안의 길도 제대로 찾지 못했지만, 이제 그 정도쯤은 대략적으로나마 알게 되었다.
다만 내게 곤란한 것이 하나 찾아오고 말았다.
조금은 늦었지만, 바로 오늘 기초조사서라는 이름으로 인적 사항부터 가족관계와 본인의 성격까지 묻는 서류가 배부되었다.
작성을 끝내기 직전까지는 막힘없이 술술 써 내려갔지만, 가장 마지막에 이렇게 큰 장벽이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제일 중요한 내 미래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것이다. 중학생 때 내 꿈을 확실하게 정하지 못했고…. 아니, 정확히는 거절당했다고 하는 게 맞겠다.
…어쨌건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는 엄마 따라 ‘대기업 회사원’이라고만 썼었다.
이번에도 엄마는 저 빈칸에 그저 대기업 회사원을 쓰라고 했다. 엄마는 학부모 칸에 실제로 그렇게 썼다. 하지만 이번에는, 적어도 학생 칸에는 내가 내 미래를 생각해서 적고 싶었다.
음, 뭐라고 써야 할까…. 어쩌면 끝나지 않을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근거라는 지지대가 없는 막연한 희망은 아리송하게나마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는 느낌이 있었지만, 그 희망과 미래에 대한 불안, 그리고 초조함. 모순된 감정들이 한데 뒤섞여 있는 나는 시한폭탄과도 같은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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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야, 너 이제 중학생 아니야. 공부 열심히 해야 해.”
“네.”
정말이지 근 일주일간 귀가 따갑도록 엄마와 학원 선생님들에게 이 소리를 들었다. 이미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긴 했지만, 저 말이 아예 틀린 말도 아니었기에 딱히 저 말을 듣지 않을 상황이나 방법은 없었다.
고등학교가 중학교와는 공부량과 시험이 차원이 다르다는 이야기는 중학교 3학년 2학기 시작부터 지겹도록 들었던 말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고등학교에 들어온 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은 새내기였기에 저 말을 체감해 볼 기회는 아직 오지 않았었다. 학교가 바뀌어서 그런지 중학교의 새 학년, 새 학기보다는 뭔가 쓸 것도, 신청할 것도 많고 복잡했다.
그래도, 하루 종일 아침부터 밤까지 공부하느라 바쁘고 어지럽고 코피 흘리는 하루보다는 이렇게 자잘한 일 때문에 바쁜 하루가 백배 천배는 낫다고 생각했다.
이런 하루도 제법 괜찮은 하루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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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뭘까?’
쏜살같이 지나가는 여러 주제 그리고 물음표 속에서 내 머리는 이 말을 잡아냈다.
희망이라는 게 뭘까. 나는 오랜 시간 동안 희망이 어떤 존재인지 정의하지 못해 혼란스러워했다. 마치 손에 잡히지 않는 것처럼, 그저 아득히 멀리 있는 별처럼 보일 때도 있었고.
한참을 고민하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정의하지 못했다. 때때로 희망이 너무 작아 보이고, 너무 멀게만 느껴져서 그것이 진짜 나에게 필요할까, 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었고.
…그렇다고 해서 희망이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희망이 없으면 정말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모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겪어본 적이 있기는 하지만 잠깐이었을 뿐이고, 이유는 몰라도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은 유리 파편처럼 잘게 조각 나 일부분만 알아볼 수 있을 뿐이었다.
뇌가 기억을 은폐하거나, 희석하는 방법도 알고 있는 건가?
곧 주제는 희망에서 꿈으로 옮겨갔다.
확실한 내 꿈은 가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가치 있는 사람이면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 테니, 뭘 해도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지 또 머릿속으로 생각을 이어나가다가, 다시 주제가 꿈에서 희망으로 멋대로 옮겨갔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소리 없는 웃음이 나왔다.
아직도 남아있는 그 소량의 막연한 희망 덕분이었을까.
어찌 되었든, 막연한 희망이라도 품고 있는 게
아무 희망도 품지 못한 상태보다는 낫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