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화(敎化)

by JS

“세품아에 있는 아이들은 교화가 잘 되나요?”

이 질문을 처음 들었을 때, 저는 잠시 말문이 막혔습니다. 사전적 의미는 알지만, 그 단어를 저의 일과 연결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해, 저는 교화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의 언행은 마음만 먹으면 어른을 속이기 어렵지 않습니다. 특히 6개월 혹은 1년이라는 정해진 시간 안에서는 얼마든지 변화한 척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겉으로 드러나는 언행으로 아이의 변화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대신 저는 ‘교화’라는 막연한 단어 대신, 아이들이 더 나은 판단과 선택을 하도록 그들의 ‘수준’을 올리는 것을 목표로 삼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꾸준히 좋은 판단의 예시를 들려줍니다.

“이 상황에서 그런 말은 안 돼.” “이때는 네가 이렇게 판단했어야 해.”


문제는, 아이들이 이 설명을 거의 알아듣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문제 행동을 일으키는 아이들 대부분은 본능적으로 움직입니다. 세상의 중심에는 오직 자신의 기분과 감정만이 존재하며, 자신의 언행이 타인에게 어떤 불편함을 주는지 인지하는 능력이 현저히 부족합니다. 그래서 어른의 눈에는 명백히 잘못된 언행을 했을 때, “죄송합니다” 한마디면 될 일을 사과 대신 적반하장으로 화를 내기 일쑤입니다. 아이에게는 자신의 잘못된 행동보다, 그로 인해 지적받아 상처 입은 감정이 훨씬 더 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어른들이 가장 쉽게 꺼내는 말이 있습니다.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몽둥이가 약이야.”

“덜 맞아서 그래.”


하지만 정말 그럴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고 치는 아이들 중에 어른에게 맞아보지 않은 아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요? 오히려 너무 많이 맞아서 문제죠. 아이의 지금 모습은, 그동안 그렇게 폭력으로 다스려진 결과물입니다. 더 큰 문제는 매로 다스려야 한다는 폭력의 논리를 아이들도 똑같이 학습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형들이 동생들을 때리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배운 대로, ‘정의’를 실현하고 동생을 ‘교육’하기 위해 주먹을 듭니다. 선배들이 후배들을 집단으로 폭행하는 것 역시 대부분 이 논리에서 시작됩니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똑같은 가해자들끼리 나이 몇 살 많다고 벌을 주는 황당한 상황이지만, 아이들의 시점에서는 어른들이 자신에게 그랬듯 똑같은 방식으로 훈육하는 것이기에 무엇이 잘못됐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폭력으로 교육하면 그 순간의 언행은 교정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변화가 아니며, 폭력과 압박이 없는 환경으로 돌아가면 아이는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 뿐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아이들을 훈육해야 할까요? 교과서적인 답변밖에 드릴 수가 없습니다.

바로 ‘어른이 모범을 보이는 것’입니다. 내 아이가 어떤 상황에서 특정 방식으로 대처하길 바란다면, 바로 내가 그 방식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훗날 내 아이가 즐겼으면 하는 취미가 있다면, 바로 내가 그 취미를 즐기는 것입니다. 세품아에 온 아이들에게는 잠시나마 우리 교사들이 보호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보여주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다양한 상황에 대처하는 방식, 삶을 즐기는 모습, 힘든 상황에 무너지지 않는 정신력, 때로는 힘들다고 솔직히 말하며 동료와 아이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용기. 그리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실수와 실패에도 다시 도전하는 태도.

당장 눈앞에서 변화가 이뤄지지는 않겠지만, 언젠가는 되겠죠? 이 모든 노력은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세상을 온전히 품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그 마음으로 우리는 하루하루를 열심히, 즐겁게, 가끔은 힘겹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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