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겠어요

by JS

세품아에 처음 온 아이는 긴장한 상태로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아이의 머릿속에 이곳은 감옥입니다. 처음 온 감옥, 낯선 어른 앞. 아이는 고민에 빠집니다.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지?’

‘여기서 누가 가장 힘이 세지?’

몸도 마음도 단단히 굳어 있습니다.


이때 저는 이런저런 질문을 던집니다. 대부분은 시시콜콜한 것들입니다. 긴장을 풀어주려는 목적도 있고, 이곳의 분위기를 알려주려는 마음도 있습니다.


“어디 살아?”

“XX동에 삽니다.”

“몇 살이야?”

“16살입니다.”

“여기는 ‘다나까’ 안 써도 돼.”

“아! 네. 알겠습니다.”


가벼운 대화가 오간 뒤, 조금 깊은 내용을 묻습니다.


“뭘 잘못했어?”

“동네 후배가 제 욕하고 다니길래 불러서 왜 그랬냐고 물었더니, 자꾸 아니라고 해서 화가 나 때렸어요.”

“흠. 그랬구만. 후배가 네 뒷담화한 건 확실해?”

“네. 제 친구가 듣고 저한테 알려 줬어요.”

“그렇구나. 그 친구가 한 말은 전부 사실이야?”

“네?”

“그 친구는 거짓말한 적 없는 친구야?”

“음… 잘 모르겠어요.”

“만약 그 친구 말이 틀렸으면 어떡하지?”

“음… 모르겠어요.”


저와 만나는 아이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표현은 바로 ‘모르겠어요’입니다. 이 대답이 나오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그만 물어보세요’, 혹은 ‘그렇게 믿고 싶지 않아요’라는 방어적인 표현입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의 경우, 두 번째 이유가 더 많습니다. 바로 ‘생각하기 귀찮다’는 것입니다.


생각하는 힘은 어린 시절, 자신의 행동에 대한 부모의 반응을 보며 성장합니다. 누워만 있던 아기가 웃었을 때 부모가 미소로 화답하면, 아이는 관계의 원리를 알고 더 많이 웃습니다. 성장하며 내 행동이 잘못되었을 때 신뢰 할 수 있는 어른 혹은 친구에게 지적을 받으면, 아이는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는 생각을 시작합니다. 이것이 교육의 가장 기본적인 과정입니다.


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생각의 힘을 기를 기회가 없습니다. 이런 아이의 행동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하고 싶으면 하고, 옆에서 하라고 하면 합니다. 그러니 잘못된 행동의 이유를 물으면 당연히 “모르겠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정말로 생각해 본 적이 없기에, 왜 그랬는지 본인도 모르는 것입니다.


다시 아이와의 대화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아이가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면, 저는 그 순간 새로운 규칙을 하나 만듭니다.


“자! 지금부터 우리 대화에서 ‘모르겠어요’는 없어. 개소리라도 괜찮으니까, 네 생각을 만들어서 대답해야 해.”


그 후 아이의 표정을 보는 것은 무척 흥미롭습니다. 억지로 머리를 굴리는 아이의 얼굴은 마치 수능 시험을 보는 수험생처럼 진지합니다. 아이는 마침내 대답을 ‘만들어’ 냅니다. 하지만 그 대답은 사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흩어져 있던 기억의 조각들을 더듬어 처음으로 조립하는 과정입니다. 저는 과장되게 맞장구를 쳐줍니다.


“그랬어!? 야, 그놈 진짜 너무하네. 네가 화낼 만했네. 때린 건 잘못이지만. 그래서 그다음은?”

“지금 생각해보니까 제 친구가 거짓말한 것 같아요. 평소에도 이간질을 많이 했거든요.”

“이야… 그놈은 도대체 왜 너를 이간질했을까요?”

“휴… 제가 만만했나 봐요.”


저는 사실 첫 대화에서부터 이 아이가 친구 무리에서 소위 ‘호구’ 역할을 하고 있음을 짐작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 사실을 결코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마지막 안식처였던 무리에서마저 내쳐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첫 번째 이유입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곧 부서지기 쉬운 자존심의 문제로 이어집니다. 아이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자기 자신을 속이는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나는 호구가 아니야. 내가 친구들과 친하니까 양보하는 거지. 나는 내가 원해서 여기에 있는 거야.’ 라고 말입니다. 그 밑바닥에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는 완전히 혼자가 된다’는, 뼛속 깊은 외로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자기 방어의 벽을 허물고 자신의 진짜 모습을 마주해야만, 비로소 성장의 첫걸음을 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런 아이들도 세품아에서 두세 달이 지나면 제법 능글능글해집니다. ‘모르겠어요’라는 대답은 사라지고, 자기 이야기를 더 들어달라며 교사에게 칭얼댑니다.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선생님을 귀찮게 하는 존재일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보기에 그것은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했다는 신호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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