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귀

by JS

불교에서 나오는 귀신입니다. 여러 종류가 있지만, 공통점은 배가 고파도 목구멍이 작아서 삼킬 수 없고, 먹어도 음식이 불로 변해 괴로워하거나 토한다고 합니다. 영원히 배고픈 채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들은 아무리 채우려 해도 결코 만족할 수 없는, 끝없는 갈증 속에 갇혀 있습니다.


세품아는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풍족하게 주고 싶어 합니다. 솜씨 좋은 셰프님께서 늘 영양에 신경쓴 밥을 제공하십니다. 우리 아이들은 늘 원합니다. 더 원하고 더 원합니다. 내가 먹을 수 있는 양보다 더 원할 때가 많습니다. 여러 가지 욕구가 차단된 곳이니 기본 욕구 중 하나인 식욕이 보다 왕성하게 작용한다고 생각됩니다.


사실 먹는 것에 대한 욕구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진짜 문제는 사랑에 대한 욕구입니다. 우리 아이들 대부분은 어린 시절에 받아야 할 많은 것들을 받지 못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따뜻한 시선과 부드러운 목소리, 조건 없는 보살핌을 충분히 받아본 경험이 없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어머니 없이 자란 아이에게 어머니의 사랑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 사랑의 맛을 본 적이 없으니, 그들은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또 한편으로는 맹목적으로 갈구합니다.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는 아이에게 사랑을 쏟으면 어떻게 될까요? 초콜릿을 처음 먹어본 어린 아이를 상상해 봅시다. 아이는 초콜릿의 부드러움과 달콤한 맛을 잊을 수 있을까요? 처음 맛본 강렬한 미각의 쾌락에 계속 탐닉하고 요구할 겁니다. 이가 썪는다, 건강에 해롭다는 말로 막을 수 없습니다. 더 달라고, 더 많이 달라고.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번 사랑과 관심의 맛을 보면 멈출 수 없습니다. 갈증이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갈증을 부르는 듯합니다. 이들은 사랑을 나눌 수 없습니다. 나만 받아야 하고, 자신에게 향한 관심이 끊기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진짜인지, 영원할 것인지 끊임없이 확인해야 합니다. 만일 사랑을 다른 사람과 나눈다? 그들은 견딜 수 없어 합니다. 마치 자신의 몫을 빼앗기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렇다면 과연 만족할 수 있을까요? 사랑은 무형의 것입니다. 초콜릿 같은 음식은 배가 부르거나 질릴 때가 있지만, 무형의 사랑은 아무리 먹어도 그 갈증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끝없이 요구하고 확인하고, 또다시 요구하고 확인합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모든 관심과 애정이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끼는 아귀처럼, 그들은 채워지지 않는 허기 속에 살아갑니다. 마치 마르지 않는 샘물을 찾으려 영원히 헤매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면 유아기부터 부모는 아이에게 끊임없이 사랑을 쏟습니다. 아이는 부모에게 끊임없이 사랑을 확인합니다. 제 아들도 실수로 물을 흘리거나 물건을 망가뜨리면 이제 자신을 싫어할 거냐고 혹은 화낼 거냐고 매번 묻습니다. 그러면 우리 부부는 고작 이런 실수나 잘못 때문에 네가 혼나는 일은 없다고 반복해서 알려줍니다. 언제까지? 안 물어볼 때까지. 이 과정은 아이가 세상은 안전하고, 자신은 조건 없이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내면화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이 없었던 아이들은 세상이 늘 불안하고, 관계가 언제든 끊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을 안고 살아갑니다. 만일 누군가와 관계가 형성되었다 믿으면, 너와 내가 특별한 관계임을 끊임없이 확인합니다. 그 대상은 자기만 바라봐야 합니다. 세품아에 오는 아이 중 가끔 이런 성향을 보이는 아이가 있습니다. 특정 선생님에게만 집착하며 다른 아이들에게 관심을 주면 질투하고 배신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아이들이 사랑을 '받는' 것만큼 '주는' 법도 배우고, 관계가 나누어질 때도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내면에 자리 잡은 아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려야 비로소 잠잠해질 수 있다는 것을 매일 깨닫습니다.


이 아귀를 마주하는 것은 우리에게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때로는 지치고, 때로는 좌절합니다. 아무리 쏟아부어도 채워지지 않는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기분이 들 때도 있습니다. 작은 관심 하나에도 과민하게 반응하거나,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사랑을 갈구하는 모습에 당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멈출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이 단 한 번이라도 사랑으로 인한 '배부름'을 느끼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배부름'을 아직도 고통받고 있는 다른 아귀에게 전달하리라 믿습니다. 유형의 것은 나누면 내 몫이 줄어 들지만, 무형의 것은 나눠도 줄어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커집니다. 배부름을 나눌 수록 나의 만족은 커짐을 알려 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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