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힘겹고 세상살이가 쉽지 않다고 느끼신 적이 있습니까? 제대로 되는 것도,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도 없다는 무력감에 빠져 본 적은 없으신가요? 나름대로 노력했는데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아 상처받고, 무슨 말이나 행동을 할 때마다 주변의 지적에 눈치 보시나요?
만약 나의 이야기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나아질 수 있을까요? 제가 두 가지 제안을 드릴 테니, 둘 중 보다 긍정적으로 와닿는 제안을 선택해 보세요.
첫째,
“당신은 뇌가 아픕니다. 전문가의 치료가 필요합니다.”
둘째,
“당신은 마음이 아픕니다. 휴식을 취하시고 마음을 정리하세요.”
정답은 없습니다. 자신이 어떻게 느끼는지가 중요합니다.
늘 사고를 치는 아이에게 “너는 마음이 문제인 것 같다.” 혹은 “너는 뇌가 문제인 것 같다.”라는 말을 교사가 해주면, 아이는 어떤 말에 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까요? 저는 당연히 ‘마음의 문제’라는 표현에 거부감을 덜 느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뇌의 문제는 전문가의 치료가 필요한 영역이지만, 마음의 문제는 개인이 의지로 이겨낼 수 있는 영역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제니퍼 프레이저의 책 <괴롭힘은 어떻게 뇌를 망가뜨리는가>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도덕적, 정서적,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뇌의 문제, 즉 치료의 영역이라고 하면
환자는 자신의 문제를 받아들이고 치료하는 데 거부감과 수치심을 덜 느낀다.’
이 글을 읽고 저는 반신반의했습니다.
‘치료보다는 의지로 이겨내는 편이 훨씬 쉽고 빠른데’
‘내 마음은 내가 조절할 수 있잖아.’
그래서인지 저는 세품아에서 만난 불안 속에 사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늘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냥 하면 되는데, 왜 안 하면서 불평만 늘어놓는 걸까.’
‘왜 저렇게 이상한 헛소리만 반복하는 걸까.’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세품아 안에서 가장 불안으로 힘겨워하는 아이에게 시험 삼아 말해주었습니다.
"너의 불안은 마음이 약해서가 아니라, 너의 뇌가 그렇게 반응하는 것이야"
그리고 뇌과학으로 불안을 설명한 책을 선물했습니다. 이 아이는 책을 받아 들고, 제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환한 얼굴로 물었습니다.
“정말이요? 진짜지요? 저는 마음이 아니라 뇌가 아픈 거죠?”
“뇌과학자들과 정신과 의사들이 그렇게 설명하더라고. 그런데 왜 표정이 좋아?”
“뇌가 문제라면, 고칠 수 있잖아요. 고치면 해결되잖아요. 저도 나아질 수 있잖아요! 저는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 줄 알았어요.”
때로는 문제를 어떻게 규정하는지가 해결의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 됩니다. 저는 정말 몰랐습니다.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아이들도 보기를 바랐고, 제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못하는 아이’와 ‘안 하는 아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그저 아이의 의지가 약하거나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쉽게 단정해 버렸습니다.
하지만 이 아이와의 대화로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나약한 마음’이라는 수치심을 덜어주고 ‘치료할 수 있는 뇌의 문제’로 함께 바라봐 주는 것, 고통의 시작점을 함께 고민해 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렇게 저는 또 아이를 통해 세상을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