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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작가 Nov 08. 2021

무작정 걷기 시작하다

백수가 걷는다 (1)

 


      "네~ 감사합니다." 이 남자, 손님인데 자기가 감사 인사를 한다.


 마트 캐셔는 지쳤나 보다. 그의 인사에도 묵묵히 계산만 한다. 방금 전 인사하고 나간 손님은 그에 별로 개의치 않아한다. 서비스직인가? 그래서 퇴근 후에도 습관처럼 나온 듯한 말투인 건가 싶다. 캐셔의 메마른 대응에 대한 남자의 반응이 궁금했는데 아무것도 없어서 재미가 없어졌다. 내가 계산할 차례다. 나는 남자와 달리 마트 캐쳐처럼 아무 말 없이 지갑을 꺼내 현금을 건넸다. 그리고 물건을 들고, 적립도 없이 그냥 빠져나왔다. 생각해 보니, 캐셔가 적립도 영수증도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에 시달렸겠지. 하고 그를 응원한다.


‘밝은 성격, 활발함, 긍정적인 마인드.' 세 번 이상 만난 사람들이 아는 나의 모습이다. '차분함, 조용함, 드러내지 않는 마음.' 한 번 만난 사람들 또는 때때로 보이는 나의 모습이다. 나의 가면은 이렇게 두 가지다. 현재는 후자이고 싶다. 투명인간이고 싶다. 나는 백수다. 그렇기 때문에 그래도 된다고 생각한다.


저녁 7시 반, 퇴근한 사람들로 거리가 빽빽하다. 광화문이다. 광화문에 온 이후로 어쩔 수 없이 아침이든 저녁이든 심지어 오후든 직장인들을, 무언가에 매여있는 사람들을 마주친다. 그들을 탓하는 게 아니라 그냥 백수는 원래 시니컬하고, 모든 지 탐탁지 않아하는 존재이니까. 오늘도 마음에 드는 게 없다. 비는 다행히 그쳤지만, 신발이 닿는 거리는 축축하고 킁킁 시큼한 냄새.. 술 냄새가 났다. 술은 좋아하지만, 술 냄새는 좋아하지 않기에.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며 옆으로, 오른쪽으로 3보. 게걸음으로 살짝 피한다. 술 냄새를 맡으면, 함께 마셨을 안주와 함께 토가 떠올라진다. 김치전과 김치찌개를 먹었을 때는 더더욱. 테이블에서 직접 맡는 소주 냄새는 이와 다르다. 소주 냄새를 맡으면 인생이 떠올라진다. 너와 나와 그리고 우리 모두가 함께 걸어온 서사가 소주 한 방울에 담겨있다. 짠을 외치며 잔을 부딪혔을 때 인생이 어우러지고 뭉쳐져서 강한 힘을 가진다. 그 힘은 누구도 무찌를 수 있다. 알코올이 소진된 다음날에는 쓰지 못해 아쉬울 뿐이다.





  택시를 잡는 사람, 횡단보도를 걷는 남자 무리들, 비도 안 오는데 우산을 쓰고 있는 사람들. 그들을 지나쳐서 집으로 향하고 있다. 그들을 스치는 이 순간이 괴롭다.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어?"

 "같은 혈액형인데 너는 참 다르다."

 "1년을 넘겨서 저흰 다행인 것 같아요."

 "말할 게 많다면 지금 토로해요."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그 순간들이 세찬 비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나의 시야를 가린다. 나는 백수. 백수는 걷는다. 젠장. 나는 백수다.  






<백수가 걷는다>는 오늘부터 브런치에 연재를 시작한 시리즈물입니다. 여행객이 된 백수가 국내 및 해외여행을 다니며 여행지에서 있었던 일들을 직장이나 사회생활, 관계 등 개인적인 이야기들과 엮어 풀어냅니다. 색다른 여행 에세이가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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