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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작가 Nov 14. 2021

동료에 관하여, 송도

백수가 걷는다 (4)



      송도. 인천 송도는 정말 난생처음, 그러니까 생애 첫 방문이었다.

 서울에서 송도까지는 정말 멀다. 이동 거리 시간은 1시간 반으로 나와 있었다. 내려야 할 역만 잘 내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랬는데 아뿔싸. 폰을 보느라 한 정거장 지나쳤다. 정거장 지나쳤어 벌써? 하는 사이에 하나 더 지나쳤다. 젠장. 백수는 시간이 많으므로 크게 상관없지만, 친구가 기다리는 중이다. 퇴근하는 친구 시간에 맞춰 7시에 만나기로 했다. 나는 되돌아가는 것이 귀찮아 네이버 길찾기가 알려준 또 다른 방향으로 지하철을 갈아탔다. 그렇게 30분이 더 지연되었다.





'택시 타고 와. 나 택시 타고 가려고.'


 퇴근 후 숙소에 들러 옷을 갈아입고 온다는 친구. 백수에게 택시는 사치야. 퇴사 후 딱 한 번 택시를 타본 경험이 있다. 그것도 홧김에. 짐도 무겁고, 내 처지도 뭔가 초라해서 홧김에 탔던 거지. 그렇게 애용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문자를 보냈다.


'알았어.'


백수 주제에 자존심은 있다.





 송도는 다른 세계였다. 얼라이브(alive) 도시였다고 기억한다. 차도 많고, 학원가는 물론 술집도 도로 주변으로 많이 형성되어 있다. 해양경찰청을 보았는데 어찌나 크던지. 친구가 '너 취하면 해양경찰청에 맡길 거야.'라고 했는데 맡겨진다면 그 또한 하나의 추억으로 자리매김할 것 같았다.

2시간 남짓 걸린 서울에서 송도로의 이동은 피로감을 선사했지만, 크고 큰 빌딩들과 알 수 없는 깃발들 앞에서 새로움을 맛보았다. 활력을 느낄 수 있었달까. 누군가에게 일상인 곳이 처음 온 이들에겐 미지의 장소라고 하지 않았던가. 횡단보도를 건넜다. 오피스룩을 갖춰 입고 걸어가는 나를 상상해보면서.


 



 백수에게 소주 한 잔이란. 일상과 같은 것. 누구와 함께 하느냐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안주도 중요하지 않다. 이상하게 백수일 땐 그냥 소주만 마셔도 잘 들어간다. 소주 is 인생이랄까.

한때 회식 중 소주 한 잔이 그렇게 맛있다는 기대감을 가진 적이 있다. 취준생 때였을 것이다. 퇴근 후 부장님과 같은 높은 사람들과 술 한 잔 걸치는 로망이 있었다. 회식을 피하는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모든 게 좋아보기만 했던 취준생 시절이었다. 그런 시절도 있었구나 내게. 소주는 자고로 백수일 때가 가장 맛있다.





 식사하고 나오는데 친구가 계산을 자처한다. 여기까지 왔잖아 네가.라고 하길래 슬그머니 빠졌다. 사실 송도에 온 건 사실이지만, 이전에 대기업 한 턱 받은 것도 있기에 내가 내려고 했다. 친구는 대기업을 다닌다. 대기업에 갓 취업한 병아리 사회초년생. 그에 백수는 지지 않긔.

돈은 결국 친구가 내줬다. 밥 사 주는 사람 = 좋은 사람. 아 일부러 소 말고 돼지로 주문했는데.. 후회되는 백수였다.





띠리링 띠리링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동기의 전화. 나이는 친구보다 어리지만, 둘은 반모(반말모드)한다. '신입생 오티 같아. 다들 친해.' 매주 동기들과 놀러 다니는 친구. 그런 친구를 보며 배가 아파온다. 동기 때문에 퇴사를 결심했기 때문에 배가 더 아픈 것 같다.


'A 부장은 왜 부장인지 모르겠어요. B 대리가 그 자리에 앉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C의 아이디어는 진짜 이해 못 하겠어요. 요즘 누가 그런 거 해요? 안 그래요?'

'D 대리 작업 봤어요? 저 진짜 D 작업 개구린 것 같아요.'


뒷담을 서슴없이 했던, 위 아랫사람 구분 없이 선을 넘나들었던 그 동기가 결정적으로 더러워서 피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사실 좀 무섭기도 했다. 언제 돌아서서 내 욕을 할지 모르는데 말이다. 안 그런가?

친구는 동기들과 게임 한 판 하러 숙소에 들어갔다.


'아 배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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