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섬주섬 봉투를 하나 꺼내본다. 청첩장이다. 친구에게서 받았다.
오늘은 결혼, 그중에서도 친한 친구의 결혼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미드 <프렌즈> 시즌7 1화에서 모니카는 약혼을 발표한다. 모니카와 레이첼은 서로에게 베프이자 한때는 룸메이트였던 사이.
모니카가 결혼을 약속한 날은 곧 모니카의 날이지만, 레이첼의 마음은 싱숭생숭하기만 하다.
레이첼은 불안정한 마음을 담아, 로스에게 솔직하게 말한다. 극 중 로스는 레이첼의 전남자친구.
"우리 일생에 저런 거(결혼) 할 수 있게 될까?"
그러다 레이첼과 로스는 실수로(?) 키스를 하고 만다. 그 바람에 둘은 재결합에 대한 의혹을 받으며 친구들 사이에서 주목받는다. 이에 모니카는 뿔이 난다.
"왜 꼭 오늘이어야만 하는 거야?"
오늘은 나의 날이잖아, 스포트라이트는 내가 받아야 하는데. 배려가 없었던 레이첼에 잔뜩 실망한 모니카.
레이첼은 왜 그랬을까?
"너희가 약혼했다는 사실에 너무 기뻐."
레이첼이 한 말처럼 사실 레이첼은 모니카의 소식에 매우 기뻤다. 모니카의 약혼 사실에 행복해하고, 축복을 빌었다.
하지만 현재 레이첼은 싱글. 찌질한 전남친들만 있었고, 곁에는 아무도 없다. 정해진 게 전혀 없고 불안정한 상태다. 신체와 정신 모두 온전하지만, 미래에 대해서는 불안감만 가득할 뿐. 제대로 된 남자부터 만나야 하는데 그것도 불확실하다. 모든 게 불확실하기만 하다.
"너희가 결혼한다는 사실이 날 초라하게 만들어. 나는 가망성도 안 보이거든."
모니카에게 솔직하게 털어놓는 레이첼.
친구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고 소원하고 뭐 다 하겠다. 행운을 빈다. 그런데 말이야, 나는? 내 삶은? 내 인생은? 나는 아무것도 없다. 남친도, 남편도, 결혼도, 약혼도 뭐 아무것도 정해져 있는 게 없다.
반지도 없는 마당에 누가 누구의 행복과 안녕을 빌 수 있을까. 오히려 나의 안녕과 행복과 행운을 네가 빌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
다 가진 모니카가 해줘야지, 라는 이기적인 마음도 든다.
레이첼의 속마음을 알게 된 모니카는 오해를 풀고 둘은 화해한다.
레이첼이 된 나는 온 마음을 다해 이해할 수 있었던 '프렌즈' 에피소드. 결혼한다는 친구의 말에 내가 웃을 수 없는 이유는 아마도 그런 거겠지? 레이첼을 보며 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나는 아직 준비된 게 없는데. 우린 분명 같이 어렸는데. 결혼이라는 인생의 큰 도약을 하게 된 친구를 보며 나는 생각한다. 분명 같은 선에서 출발했는데 너는 저만치 끝에 가있는 것 같다. 내 앞에는 1000미터, 아니 그 이상이 남아있는데 말이다.
너는 벌써 도착지점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나는 언제 물을 마실 수 있을까. 아니, 물을 마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당황해하는 나를 보며. 멀리서 달려오는 나를 보며 너는 해맑게 손을 흔든다. 빨리 와. 언제 올 거야? 오긴 할거니? 라고 장난스럽게 묻는다.
'반지 좀 봐봐. 청첩장 나왔어. 웨딩 사진 좀 볼래?'
아무런 해 없이 물어보는 너이지만 나는 그만. 속이 안 좋아서 그대로 주저앉고 만다.
다시 일어나 걸어야 한다. 나는 친구니까, 가장 친한 너의 친구니까.
평정심을 잃지 않고, 정신을 놓지 않고 너의 결혼식을 향해 걸어간다. 너의 새로운 인생. 또는 인생의 전환점이자 새 출발을 진심으로 응원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