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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작가 Feb 06. 2023

블랙핑크 지수랑 같은 이름이네요? 나 완전 팬인데!

런던에서 맥주 따르기 8번째



돌아왔다. 오랜만에.

그간 열심히 펍에서 맥주를 따르고 있었다.


본래 직업이 에디터인지라 글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외교부 워킹홀리데이 해외통신원으로 일하면서 갈증을 다소 해소하곤 했다. 유튜브도 본격적으로 재개했다.

나름 바쁘게 살아왔다.





출근 전 나의 모습.


런던의 1월과 2월은 호되게 춥다. 뼛속까지 춥다. 런던에 차문화가 발달된 이유는 아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여행하기 안 좋은 계절이다. 파업도 많이 한다. 요즘 사정은 교사 임금 문제로 시끌벅적하지만, 기차 파업은 여행객에겐 최악의 조건으로 다가오기에..

런던 여행은 여름에 오시길 강력 추천.





런던 펍 근무 벌써 9개월 차다.


시간의 빠름을 실감하면서,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했던가. 의사소통 불통으로 남몰래 눈물을 훔쳤던 과거의 나, 25개의 파인트잔을 동시에 들고 근육통으로 밤잠 못 이뤘던 지난 날들.

과거를 망각한 채 미소를 띠고 주 5회 펍으로 도시락을 품 안에 고이 들고 출근한다. 밥심으로 살고 있다.


게다가 일하며 사람들 만나는 것에 재미를 느끼고 있다. 첨엔 맥주에 듬뿍 빠졌다가 지금은 사람이다!


영국 사람들 그리고 영국 문화와 어울려 보면서 내린 결론은 이들은 참 젠틀하다는 거다.

본투비 젠틀인 것 같다. 몸에 밴 느낌. 사람마다 매너의 차이는 다르지만 사람에 대한 관심이 이들 몸속에 탑재되어 있다.

개인주의면서도 서로의 이름과 일상이 궁금한 사람들. 바로 영국인들이다.





서비스 만렙이라고 말하기는 뭐 하지만, 펍을 방문한 손님들에게 최선을 다해 대접하려고 노력한다. 사실 나의 마음은 이중적이다.


계산서 처리할 때 보면 모니터에 ’Walkout Combo'라는 게 있다. 매니저가 먹튀 테이블을 처리할 때 쓰는 건데, 영국에서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펍뿐만이 아니라 카페, 옷가게, 고급 레스토랑 등등에서도 말이다. 세상이 먹고살기 좋아졌다고 하지만, 이것만 보면 아닌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도덕성이 없거나.


먹튀는 한국에서 크게 뉴스에 반영되나 영국에서는 워낙 빈번해서 뉴스는 무슨, 일상이다.

테이블 담당하는 서버가 책임지고 일해야 한다. 나는 내 사전에 내가 일하는 동안 먹튀는 없다 주의. 동료 테이블까지 다 지켜보고 책임진다.

일 참 잘한다고? 근데 그것도 아니다, 영국인들에게는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다 주의다.


‘야 너 담당 테이블 먹고 튀었어!’

‘그래? 어쩔 수 없지.‘


멋있다 그런 개념.

일이 너무 많아서 야근을 했어요, 따위는 먹히지 않는 영국 직장 문화가 너무 좋다. 서비스직이 이러는데 사무직은 얼마나 더 좋을까. 떠난 일에 대한 책임은 다소 아깝더라도 물지 않는 그런 사회. 무책임한 게 아니라 나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훨씬 더 건강하다고 본다.


다시 본론으로.

나의 마음은 이중적이다. 서비스할 때 최선을 다하는 이유는 내 네 얼굴 똑똑히 기억하고 있으니 먹고 튈 생각마라우도 있다.

무섭다고? 영국 펍 9개월 차 근무해 보니 알겠다. 여기서는 얼굴, 이름 그리고 관계 인지가 아주 상당히 중요하게 작용한다. 서비스할 때 자연스럽게 손님과 친해지고 이름만 물어보더라도 먹튀 현상은 없어진다. 확신한다.

내가 조금만 서비스를 진정하게 한다면, 그들의 안부를 물어봐주고 그들의 하루 가운데 음식이 어땠는지 맥주는 맛있는지 관심을 기울여 준다면 적어도 먹튀 현상은 면할 수 있다.

영국 사회에서 학연, 지연 등등 관계를 맺는다는 것에서 아주아주 큰 의미가 있다. 섬나라라 그런 걸까. 외부인에 있어 마음을 여는데 상당한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 같지만, 한 번 문을 열고 그 경계선 안에 들어가는 순간 나는 너, 너는 내가 된다.


손님과 직원으로 만났더래도, 내 서비스가 마음에 쏙 들었다면 그들은 물어본다 나의 이름을.

나는 내 이름을 조심스럽게 그러나 또박또박 아주 또렷하게 한 글자 한 글자 내뱉는다.


지. 수.


“블핑 지수? 블랙핑크 지수랑 이름 똑같은 거 맞죠?’

‘얘가 지수의 찐 팬이에요!’

‘저 지수의 엄청난 팬이에요’


네??!!





블랙핑크. 감사하다.

블랙핑크 지수 님 너무나 감사하다.

내 이름을 이렇게 정확하게 발음하는 손님들은 이분들이 처음이었다.


블랙핑크뿐만 아니라 BTS, 한소희,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 작가들과 배우들..

한류는 이제 지극히 일상이 되어버렸다. 한국 배우 및 가수들을 외국팬들이 좋아하는 것은 내가 티모시 샬로메를 좋아하는 것처럼 동일하다. 예전엔 놀라운 일이었지만 한류는 문화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놀라는 일이 아니라 일상화된 일이다.


일상이다. 한국 문화는 그들에게 이제 일상이다.


영국 런던 자취살이 9개월 차. 한식 먹기 이렇게 쉬울 수가. 런던 대형 마트에서 짜빠게티를 구입하면서, 이 모든 것들을 감사하며 살고 있다.

감사합니다 BTS, 블핑, 더글로리, 한소희 등등.


하루는 영국인인 키친 매니저가 휘리릭 비빔밥을 만들어 주었다. 실제로 펍에서 쓰는 순창 고추장까지 챙겨 주었다. 어설픈 재료들이어도 내 눈엔 완벽했다. 비벼 먹으니 꿀맛이었다. 집에서 만들어 봐야지 싶어도 엄두가 안 나는 비빔밥을 서양식 주방에서 빠르고 맛있게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감동의 눈물이 날 수밖에.


BTS 멤버님들, 젓가락 사용해서 한식 드셔주셔서 감사합니다.





브루독에는 브루독 맥주만 판다.

게스트 맥주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흑맥주나 사워맥주처럼 독특한 계열이 주로 이룬다.


브루독에 들어와서 스텔라 있나요? 기네스 있나요? 라는 질문은 실례다.

처음엔 ‘브루독에 왔으면 브루독 맥주 드셔야죠’라며 속으로 울컥했던 아마추어였다. 요즘엔 상냥히 웃으며 ‘이게 스텔라와 같은 계열이에요. 이건 기네스보다 단데 기네스 좋아하면 좋아할 맥주입니다‘라고 말한다. 당연히 모를 수도 있지. 전지구적인 시점에서 브루독은 만 분의 1 밖에 안 되는 브랜드일 뿐.


브루독에 들어와서, 잘 모르더라도 라거를 주문하면서 ‘라스트 라거. 라스트 라거(다소 확신에 찬 목소리), 라스트 라거 주세요!’ 라고 소리치는 영국인들이 있다. 처음엔 굳이? 싶었다. 이해가 잘 안 되었다.

이제는 그게 그들의 매너 방식이라는 걸 안다.

영국인들에겐 이름이 정말 소중하다. 그들은 이름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꽃’


영어 이름 대신 한국 이름을 쓰기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발음하기 어려워하는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아, 제시카할 걸 그랬나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러긴 싫었다. 지수는 나의 본래 이름이니까.


지수! 할 때마다 귀여워지는 외국 친구들과 함께 나는 오늘도 맥주를 따르고 서빙하고 주문을 받는다. 이곳 런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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