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바람이 되고 싶습니다"라는 시를 쓴 적이 있다. 고등학교 내 문학 경진대회 비스무리한 곳에 제출하기 위함이었다. 그 시는 나름 높은 등수로 통과했다. 곧 미술 선생님의 수채화 그림과 국어 선생님의 수려한 붓글씨로 대체되어 나무 액자 속에 놓이게 되었다. 꽤나 그럴듯해 보였다. 그 시는 몇 개월의 기간 동안 학교 복도 내에 비치되었다. 일개 고등학생이 쓴 시가 퍽 대단하겠냐마는 내 이름 석자가 쓰여진 나무액자가 꽤 맘에 들었다. 나는 일부러 내 시가 놓인 복도를 여러 번 서성거렸다.
그 후, 시가 학교 내에서 효용가치를 다했을 때, 즉 유통기한이 다 되었을 때 액자가 놓인 자리는 새로운 시로 대체되었다. 복도에 비치된 기존의 액자들은 모두 본래의 주인에게 돌아갔고 나도 나의 시 ‘바람이 되고 싶습니다’를 집으로 가져갔다. 나무 박스로 정성껏 포장된 녀석을 들고 집에 가는 길은 내내 설레었다. 왜냐하면 어머니가 그 시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기대했던 반응은 물론 칭찬이었다. 당신이 낳은 아들이 이렇게 시를 쓰고, 그 시가 학교에서 우수작으로 선정되어 복도에서 잠시 몇 개월을 살았다고. 나무액자는 꽤 무거웠지만, 내 가슴속 기대에 비하면 한낱 깃털 같았다.
다행히 부모님은 꽤 기뻐했던 것 같다. 물론 자기를 닮아서라는 멘트도 빼놓지 않았다. 내 시는 부모님의 감성적이었던 젊은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아버지는 거실에 못을 박으셨고, 그 액자는 집안의 중심에 걸어지게 되었다. 매일 아침, 그 액자는 베란다에서 쏟아지는 햇볕을 받는 식물처럼 광합성을 하는 듯했다. 학교라는 장소를 넘어, 집이라는 사적 공간에서도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거실에 놓인 시를 볼 때마다 시인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빛은 그리 길게 유지되지 않았다. 그 액자는 어느 날 집의 중심에서 방으로 옮겨졌고, 새로운 가구와 짐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면서 방 한켠에 기대어 놓여졌다. 곧 짐들에 둘러 쌓여 모습을 보기 힘들어졌다. 그때 즈음엔 내 꿈도 함께 식어가고 있었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있었고, 구체적이지 못한 시인이라는 꿈은 우선순위에 밀려 관심에서 멀어졌으리라.
어느 날 그 액자는 퍽 소리를 내며 깨졌다. 어머니가 청소를 하다가 깬 것이다. 중간에 커다란 금이 생겼고, 나뭇가지처럼 퍼져 있었다. 차라리 산산조각 나서 유리를 치워버렸으면 깨끗했을 텐데, 뭔가 떼 버리기도 그냥 두기도 애매하게 깨져있었다. 어머니는 썩 미안해하셨던 것 같다. 아버지도. 나는 괜찮다고, 오히려 부모님께 아무것도 아닌 일로 유난 떨 필요 없다고 안심시켰다. 그렇게 시가 담긴 액자는 내게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렸고, 어느새 잊혀 갔다.
서울에서 홀로 지내다 가끔 집에 내려갈 때마다, 그 상처 입은 액자를 마주했다. 괜찮다고는 했지만, 여전히 상처 입은 모습을 보는 것은 조금은 씁쓸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집에 사는 건 부모님이고, 계속 그 깨진 액자와 마주하는 것도 부모님인데 액자를 버리거나 수리하지 않는 것이 조금은 신기했다. 무신경하신 것일까. 아니면 그 깨진 모습마저 삶의 일부분처럼 동화되어 버린 것일까. 가끔 그 액자를 마주할 때마다 삶에서 잃어버렸던 감정이 살아나기도 했다. 하지만 순간뿐이었다. 치여 살았으니까.
어느 순간부터 액자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내가 집에 내려가는 횟수가 현저히 줄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나도 부모님의 무신경을 본받았을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내게 시가 소중하지 않게 되어 버린 걸 지도 모르겠다. 난 시인이 되고 싶었었다. 그랬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