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이별부터 생각했나요

에세이 - 여자 친구와 다퉜다

by 날갯짓

여자 친구와 다퉜다. 부부 싸움도 칼로 물 베기라고 했던가. 부부는 아니지만, 연인의 싸움은 더 사소하고 계기는 더욱 범속하다. 사실 그냥 ‘내가 먼저 잘못했어’ 하면 모든 것이 쉽게 흘러갈 것을 굳이 자존심이라는 댐을 쌓아, 범람과 침수의 악재를 일으키고 만다. 이번 싸움도 그랬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고, 누구도 잘못이 없지 않았다. 사소한 말다툼은 마음속에 남아있던 잔재마저 끄집어내어, 서로를 할퀴고 생채기를 일으켰다.


사실 이전까지만 해도 내 자존심의 벽은 너무나도 견고해서, 쉽게 사과하지도 쉽게 용서하지도 못했다. 그 이유는 내가 속이 좁았거나, 아니면 생각보다 더 속이 좁아서였을 것이다. 내가 잘못한 상황에서는 분명히 사과를 한다. 하지만 관계적인 측면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서로의 잘잘못 없는 상황, 그 속에서 나는 사과를 쉽게 허용하지 않았다. (사람을 만나다 보면 자연히 발생하는 피치 못할 갈등 상황들은 많다.) 나는 생각보다 계산적이었고, 생각만큼 관대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리석다. 사람과 사람이 부딪치면서 생기는 불협화음은 반드시 발생하고 또 이해와 용서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나는 실제 음악에 재능이 없는 것처럼 관계를 조율하는데도 젬병이었다.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결국 끝이 보이지 않는 커다란 싱크홀을 남기고 말았다. 나는 그 속에서 방어기제라는 구명조끼를 입고 열심히 화해의 상황을 회피하며 유영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면 ‘어라, 이제 혼자 있어도 괜찮나?’라는 생각이 불현듯 떠오르고 두 개의 사다리에서 고민하게 된다.

그녀가 건네주는 화해의 사다리와 그 옆에 놓인 자유의 사다리다. 그녀가 건네주는 화해의 사다리는 상대방이 자존심을 굽히고 던진 것이라, 군데군데 녹이 슬었고 다리도 몇 개 부서져있다. 언제든 다시 그 갈등으로 떨어질 수 있는 기미가 보인다. 그에 비해 자유의 사다리는 왠지 튼튼해 보이고 심지어 반짝반짝 윤이 난다. 누군가의 소속에서 벗어나 내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 얼마나 멋진가. 그래서 예전의 나는 대부분 자유라는 사다리를 선택했다. 그런데 그 사다리를 잡다 보면 왠지 모를 죄책감과 스스로에 대한 창피함이 손과 발에 얼룩처럼 묻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바보 같았던 선택일 수도 있다. 하지만 관계를 계속 유지했다고 해서 이상적인 것은 분명히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상대방이 내 눈물을 밟고 싱크홀을 벗어난 경우도 많다. 결국 어떤 사다리를 잡든 후회라는 녀석은 내 어깨에 올라타 한참의 시간을 괴롭힌 후에 스스로 내 몸안에 스며든다. 그게 어떤 형태로든 성숙해지는 것이겠지.


나는 오늘 여자 친구와 화해를 했다. 흥정을 하는데 신경전을 나누는 장사치의 마음도 아니었고, 침을 튀기며 식민지의 영역을 나누는 강대국의 마음도 아니었다. 서로의 잘못의 비율을 열심히 계산하는 내 머리를 잠시 내려놓았다. 원래라면 수학포기자임에도 싸울 때만 계산이 빠삭하게 돌아갔었다. 잠시 스위치를 껐다. 그리고 싱크홀의 뚜껑도 잘 닫았다. 자존심도 고이 접어두었다. 그리고 그저 진심으로 사과했다. 내가 잘못했다고.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깨달았다. 내가 간과한 부분이 있었다고. 사랑의 크기를. 사랑의 깊이를. 그전에도 사랑을 했지만, 나는 그 깊이를 알지 못했다. 사다리를 놓아주는 쪽이 오히려 평지에 있었음을. 평안했음을. 진정 사랑했기에 죄책감도 미련도 후회도 없는 것임을. 예전의 내가 나를 지키는데 용을 써서 편두통의 주요 고객이 되었던 것과 달리, 사과를 하는 쪽이 되어보니 오히려 마음이 싸악 편해졌다. 맞다. 어떤 형태로든 성숙해지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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