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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정에 고요가 내려앉는다

고요를 겨누다 - 활쏘기 명상 에세이

by 정성현

비가 그친 우암정에 고요가 내려앉는다.

- 고요를 겨누다-활쏘기 명상 에세이


산에서 흘러내리는 도랑물 소리에 마음이 잦아든다.

물이 말라 있던 연못은 가득 차올라, 마치 오래 기다렸던 숨결을 다시 들이마신 듯하다.

연못 위로 나뭇잎이 반짝이고, 그 너머로 하늘이 일렁인다.

금방이라도 붕어 한 마리 튀어 오를 것 같은 그 풍경을 나는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눈으로만 간직하기엔 아까운 풍경이었다. 나는 조심스레 핸드폰을 꺼내 연못을 담았다.


하지만 결국 사진으로는 담기지 않는 게 있다. 그건, 그 자리에 있던 ‘마음’이다.

그 시간, 그 바람, 그리고 그 고요한 느낌. 화면에는 비치지 않지만, 마음에는 선명히 남는다.

화살은 언젠가 내 손을 떠난다. 표적은 멀리 있다. 하지만 활은 늘 내 곁에 있다.


그러니 나는 활을 아끼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한다. 활도 쉼이 필요하다.

늘 팽팽한 긴장 속에 있는 활은 힘을 잃는다.

한동안 그대로 놓아두고, 무위無爲의 시간을 허락해야 한다.

그래야 다시 시위를 당길 때, 활은 그동안 가만히 모아둔 힘을 아낌없이 쏟아낼 수 있다.

활.png

활은 궁사의 손과 욕망의 연장이다. 그 손이 평정을 잃으면, 활은 곧 칼이 되고 만다.

그래서 활은 살상에도, 명상에도 쓰인다. 유연하지만 한계가 있다.

무리하게 당기면 활이 부러지고, 내 손도 다친다.


활터엔 늘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는 연속으로 과녁을 맞히고, 누군가는 그 곁에서 조용히 실수를 되풀이한다.

앞의 사람이 관중을 하면, 내 차례가 오면 온몸에 힘이 들어간다.

나도 모르게 욕심이 앞서고, 마음이 흔들린다. 결국 화살은 과녁을 비껴간다.


사람 마음이란 늘 이렇다. 다짐하면서도 놓지 못하고, 포기하겠다 해놓고는 또 움켜쥔다.

무념무상, 평정심. 입으로 말하긴 쉬워도, 실제로 그 상태에 이르기는 어렵다.

국궁 초보자라면 누구나 바라는 게 있다.

바로 ‘5시 5중’. 다섯 발 모두 과녁을 맞혀야 받을 수 있는 ‘접장’ 칭호.

빠른 이는 반년 만에 이뤄낸다지만, 나는 2년이 넘도록 아직이다.

성급해질 이유는 없다. 그저 오늘, 한 발이라도 어제보다 나아지면 된다.


과녁만 바라보면 몸이 경직된다. 자세가 무너진다. 우아한 자세는 억지로 만드는 게 아니다.

몸과 마음이 조화를 이루어야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다.

활을 당기면서도, 나는 힘을 아낀다. 각 부위에 꼭 필요한 만큼의 힘만 담는다.

그래야 지치지 않고, 더 멀리, 더 오래 활을 쏠 수 있다.


그렇게 활을 내 몸의 일부처럼, 사유의 연장처럼 여긴다.

활을 잡고 서 있는 시간. 나는 나를 가장 선명하게 마주한다.

매번 결심하지만 안 되는 게 활쏘기이다. 그래서 매일 배워야 한다.

KakaoTalk_20250718_092823530.jpg 비 개인 우암정 과녁

우암정의 오후 바람은 묘하다.

고개를 쓰다듬듯 부드럽게 불다가, 갑자기 과녁 너머 나무들을 거세게 흔들어 놓는다.

그 바람에 흔들리는 건 나무만이 아니다. 내 안의 마음도, 흔들린다.

내 안의 의심도, 일렁인다. 하지만 나는 그 바람 속에서 활을 쏜다.


고요하게 흔들리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다. 오늘도 나는 활터에 선다.

과녁에 꽂힌 화살보다 내 안에 멈춰 선 한 줄기 숨이 더 소중한 날.

그렇게, 나는 활을 통해 나를 다듬는다. 그리고 조금씩, 내 마음의 과녁에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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