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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를 겨누다

활쏘기와 글쓰기로 찾은 인생의 고요

by 정성현

활의 고요가 나를 부른다.

나는 충북 옥천군 군서면 월전리에서 태어났다.

마을 어귀에는 관성정이라는 활터가 있었다.

어릴 적 나는 종종 그 정자 앞을 지났다.

거기엔 늘 말이 적고 곧은 어른들이 있었다.

그들은 누군가를 겨누지 않고,

조용히 멀리 있는 과녁을 향해 서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조용한 자세가 어떤 마음가짐의 상징이었는지.

단 한 번의 소리 없는 화살이 한 사람의 하루를

얼마나 정리해 줄 수 있는지.

세월이 흘러 나는 그 활을 다시 마주했다.


2023년 10월 15일, 69세가 되던 가을,

TV 다큐멘터리 ‘인간극장’에서 원주 황학정의

김택수 할아버지를 보게 된 것이다.

100세의 나이에 여전히 활을 쏘고 있는 그의 모습은

내 안에 잊고 지낸 무언가를 불러일으켰다.

“나도 저렇게 나이들고 싶다.”


김택수 할아버지는 누구를 이기기 위해 활을 쏘는 게 아니었다.

자신을 매일 조용히 겨누는 사람이었다.

그게 내 마음을 움직였다.

그날 이후 나는 활터를 찾았고 배움을 시작했고, 마침내 우암정 활터에 이르렀다.


생각보다 활쏘기는 조용했고 생각보다 깊었다.

숨부터 고르고 마음을 가라앉힌 후에야

비로소 손이 활줄을 잡을 수 있었다.

처음엔 명중이 전부인 줄 알았다.

하지만 점점 알게 되었다.


활쏘기의 본질은 맞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정렬하는 것이라는 것을.

오늘의 나를 바라보고 놓아주고

비워내는 일이라는 것을.


이 글은 활쏘기에 대한 기록이면서 나를 다시 살게 만든 고요한 철학의 여정이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취미가 아니라,

늦은 나이에 시작한 삶의 다시 쓰기다.

어릴 적 봤던 활터는 결국 지금의 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이제 그 부름에 조용히 응답한다.

활을 쏘며 나는 나를 겨눈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내 안의 고요를 조금씩 당겨낸다.


정성현

2025년 여름, 우암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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