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화살보다 먼저 가는 순간, 고요는 시작되었다
국궁 초보자의 활터 이야기
숨이 화살보다 먼저 가는 순간, 고요는 시작 되었다
차에서 내리면 고양이 ‘관중’이가
야옹하며 반겨준다. 고양이 밥을 챙겨주고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는다.
관중이는 기분이 좋은지 내 다리에 얼굴을 부비며 부드럽게 인사를 건넨다.
우암정은 참 아름답다.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고
산새 울음이 멀리 들려온다.
나는 과녁을 바라보며 몸을 가볍게 풀고
오늘의 활쏘기를 준비한다.
사대에 서면 먼저 인사를 드린다.
“활 배웁니다.”
좌우에 계신 선배님들이 “많이 맞추세요.” 라고
따뜻한 덕담을 건넨다.
그리고 조용히 첫 활줄을 당긴다. 활줄을 당기기 전 나는 먼저 숨부터 고른다.
허리를 곧게 펴고 두 발을 가지런히 벌린다.
그리고 깊게 숨을 들이쉬고 천천히 내쉰다.
손이 활줄에 닿기도 전에 내 안의 소란함이 먼저 가라앉는다.
화살을 쏘기 위한 준비 시간이 오히려 나를 가장 조용하게 만든다.
어쩌면 활쏘기의 핵심은 과녁을 맞추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을 먼저 내려놓는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화살은 과녁을 벗어났지만 내 숨은 중심을 지켜냈다. 그걸로 충분한 하루였다.
처음 활을 배운다고 하니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그거 무기 아니에요?”
사극 속 전쟁 장면이나 올림픽 양궁 선수를 떠올리는 모양이다.
하지만 내가 만난 활 ‘국궁’은 조금 다르다. 소리보다 숨이 많고 경쟁보다 기다림이 많은 무기다.
국궁은 한국의 전통 활이다. '각궁'이라고 한다.
쇠가 아닌 나무, 물소 뿔, 소 힘줄 같은 자연 재료로 하나하나 정성껏 만든다.
수백번을 구부리고 말려야 비로소 활 하나가 완성된다.
그 모습은 꼭 사람을 닮았다. 빨리 만들 수 없고 억지로 당기면 부러진다.
그래서 국궁은 기술이 아니라 마음으로 배운다.
초보자들은 대부분 각궁이 아닌 개량궁을 사용한다.
처음 활터에 섰을 땐 과녁만 바라보았다.
하지만 선배는 말했다.
“과녁보다 너를 먼저 봐야 해."
활을 쏘기 전에는 기다림을 배우고,
쏘고 나서는 미련 없이 놓는 연습을 한다.
국궁은 말보다 숨이 많고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며 빠름보다 균형이 먼저다.
누군가 묻는다. “활로 뭘 할 수 있나요?”
그럴 때 나는 말한다.
“활로 나는 나를 겨눕니다.” 그거면 충분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