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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바람처럼 화살도 마음을 닮는다

마음이 닮은 화살 하나

by 정성현

우암정에 내려앉는 오후의 바람처럼 화살도 마음을 닮는다.

- 마음이 닮은 화살 하나


사대에 선다. 오후의 우암정엔 바람이 깔린다. 내 숨결과 바람이 만나 하나의 선이 된다.

어디를 향해 쏠 것인가. 과녁은 멀리 있지만 내 마음은 훨씬 더 멀다.

화살을 쥐었지만 내가 진짜 겨누는 건 과녁이 아니다.


마치 누군가 속삭이듯 고요하게 그 바람과 나의 숨결이 만나는 찰나 나는 내 안의 말을 겨눈다.

마음속에 남은 말 한 줄이 오늘의 과녁이 된다.

“괜찮아”라 하지 못했던 순간, “미안해”라 말하지 못했던 밤, 그 사람의 말이 날 흔들었다.


말은 칼보다 깊다. 힘껏 당기지 않아도 된다.

마음을 담으면 화살은 가볍게 날아간다.

감정도 바람도 담은 화살은 방향을 알고 있다.

명중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올바른 자세, 균형을 잃지 않는 마음이면 된다.

내가 진짜로 바라보는 게 무엇인지 그걸 향해 섰는지만 분명하면 된다.


고요히 당기고 조용히 놓는 것 그 순간이 삶이다. 우암정의 바람은 묘하다.

내 고개를 쓰다듬다가 과녁 너머 나무를 흔든다. 함께 흔들리는 건 나무뿐이 아니다.

내 마음도 내 의심도 바람 속에서 요동친다. 그러나 나는 그 바람 속에서 활을 쏜다.

고요하게 흔들리는 법을 익히기 위해서다.


때로는 아무 생각 없이 쏘았는데 맞을 때가 있다.

내 안에 멈춰 선 숨 하나가 더 값진 날이 있다.

표적 앞에 섰어도 자세가 흐트러졌다면 시위를 놓는 대신 멈추는 용기가 더 중요하다.

하지만 단지 실패가 두려워 움츠러들었다면 망설이지 말고 쏴라.


화살이 표적을 빗나가더라도 다음번에 더 잘 조준할 수 있는 법을 배울 것이다.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결코 알 수 없다.

화살 하나하나에 마음이 담긴다. 그 마음이 쌓이면 언젠가 바람을 타고 정확히 날아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오후의 우암정에서 활을 든다. 내 안의 말을 겨누며 고요를 배운다.

화살 하나하나가 마음에 기억을 남긴다.

그 기억들이 합쳐지면서 나는 점점 더 활을 잘 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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