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를 거누다-활쏘기 명상 에세이
숨이 활보다 먼저 갔다.
고요를 겨누다-활쏘기 명상 에세이
숨부터 바라보는 인생에게 나는 언제부터인가 삶을 ‘당겨야 하는 것’으로만 여겨왔다.
더 열심히, 더 멀리, 더 많이. 숨조차 고르지 못한 채 앞으로만 나아가야 했던 시간들.
어쩌면 나는 한 번도 과녁이 아닌 나 자신을 제대로 겨눈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활쏘기를 시작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숨부터 바라보는 삶을 배우기 시작했다.
손보다 먼저 마음을 들여다보고,
성과보다 중심을 생각하고,
무엇보다 나를 지켜내는 호흡을 익히는 법.
숨이 활보다 먼저 갔다.
이 에세이들은 단지 활쏘기에 대한 기록이 아니다.
늦게 시작한 마음의 회복 훈련이며,
다시 시작한 나의 고요한 리셋 여정이다.
활을 쏘는 순간 나는 더 이상 남과 겨루지 않는다.
나는 오직 나를 겨눈다.
숨이 화살보다 먼저 갔다. 활을 들기 전,
나는 먼저 숨을 들이쉰다.
깊고 천천히 들숨과 날숨 사이에 고요가 스민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내가 활을 들기도 전에, 이미 내 숨이 과녁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는 것을.
마음이 먼저 떠났고, 숨이 그 뒤를 따랐다.
몸은 아직 그 자리에 있었지만,
이미 나는 과녁 앞에 서 있었다.
활시위는 아직 당기지 않았건만,
내 안의 고요가 먼저 풀어졌다.
화살은 단지 그 고요함을 나중에 따라간 것뿐이다.
활쏘기를 배우며 나는 ‘기술’보다 ‘마음’이 먼저임을 배웠다.
자세와 힘, 각도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순간의 숨결이었다.
숨이 흐트러지면 마음이 흔들리고,
마음이 흔들리면 활이 떨린다.
활은 한 치의 떨림도 허락하지 않는다.
과녁은 정직하다. 내 마음의 흔들림을 고스란히 받아낸다.
그래서 나는 활을 쏘기 전에 숨부터 바라본다.
지금 내 숨은 어디에 머물러 있는가.
갈비뼈 아래 깊은 어둠에 잠겨 있는가,
아니면 불안처럼 허공에 부유하고 있는가.
나의 숨결이 고요히 자리를 잡을 때,
비로소 나는 활을 들 자격이 생긴다.
살아가는 일도 이와 다르지 않다. 우리는 행동보다 생각을 먼저 하고 말보다 마음이 앞선다.
하지만 때로는 숨조차 따라가지 못할 만큼 삶이 빠르게 휘몰아칠 때가 있다.
그럴 때일수록 나는 활터로 향한다.
숨을 되찾기 위해. 고요를 다시 세우기 위해.
오늘도 나는 활을 들었다.
아니 활보다 먼저 내 숨을 들었다.
과녁은 멀리 있지만, 그보다 먼 것은 나의 산란한 마음이다.
숨이 화살보다 먼저 가야 하는 이유다.
숨이 먼저 닿아야 마음이 잔잔해지고,
그 마음 위에 조용히 화살이 닿을 수 있다.
활쏘기는 결국 나를 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늘 내 안의 숨을 향한 귀 기울임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