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중반, 탄광촌.
시골 읍내였지만 그곳은 생각보다 풍요로웠다. 읍내에는 여러 가지 가게들이 있었고, 소녀는 그중 한 제과점의 딸이었다. 유리 진열장에는 늘 케이크가 놓여 있었고,
빵은 만들어 두기만 하면 팔렸다.
부족함 없이 자라던 한 소녀.
어느 날 저녁, 엄마가 말했다.
“아빠 데리러 태흥라사에 다녀와라.”
아이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심부름을 좋아했고, 어른들 사이에서 귀염 받는 일이 싫지 않았다.
“아빠, 엄마가 집에 오래요.”
“응.”
“압~빠아아.”
“응."
농한기에는 남자들이 화투판에 모여들었고 길고 긴 겨울밤에 자연스러운 풍경이었다. 놀이로 시작했지만 판이 길어질수록 집 밖의 시간도 길어졌다. 소녀의 아버지도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빠는 화투판에 시선을 둔 채 대답했다
잠시 뒤, 아이는 큰 소리로 외쳤다.
“아빠, 고해! 아빠, 고!”
말의 뜻은 몰랐다.
그저 아빠 손을 잡고 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어른들은 웃었다.
“누구 딸이냐.”
“고 녀석.”
웃음은 있었지만, 누구도 아버지에게 일어나라고 말하지 않았다.
아이만 그 자리에 남았다.
담배 자욱한 공기 속에,
어울리듯 어울리지 않게.
시간이 지나면서 화투는 놀이가 아니게 되었다.
제과점은 조금씩 기울었고, 만회해 보겠다던 우유대리점은 사기로 끝났다. 노름빚 위에 사기가 얹혔다.
빵을 만들어 놓기만 하면 팔리던 가게였다.
하지만 빵을 만드는 사람이 자리를 비우면 오래갈 수 없었다.
엄마 혼자 이어가기엔 버거웠고,
잘되던 제과점이 탐이 났던 걸까.
가게 주인은 가족을 내보냈다.
소녀는 알게 되었다.
어른들의 세계는 아이의 목소리가 닿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동네에서 예쁨 받던 “제과점집 예쁜 딸”은
어느새 ‘엄마가 도망간 집의 딸’이 되었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위로의 말속에는 보이지 않는 선이 하나씩 그어져 있었다.
누구에게나 귀염 받던 아이는
어느 순간,
누구든 아무렇게나 대해도 되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