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 4일차

안나푸르나 앞에 서다

by 주승훈

#194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 4일차 – 대우랄리(Deurali) ABC(Annapurna Base Camp, 4,130m)


아침 7시, 창밖으로 산과 산 사이에 걸린 구름이 보였다. 이곳이 얼마나 높은 곳인지 실감이 났다. M83의 Outro를 들으며 지난 도전 속에서 마주했던 고난의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 기억 속에서 흘러나오는 눈물. 인간으로서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마음의 울림을 따라 이곳까지 왔다는 사실이 깊은 감사로 다가왔다.


아침을 먹고 9시에 출발했다. 안개가 걷히고 맑은 하늘 아래 걷는 길.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며칠간 이어진 비가 마치 한 편의 드라마처럼 느껴졌다. 길 위에는 설산이 서서히 드러나고, 야생화가 바람에 흔들렸다. 함께 걸으며 나누는 대화는 그 자체로 소중한 순간이었다.


해발 3,400m 부근에서 잠시 머리가 지끈거렸다. 내 몸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예전에 칠레 아타카마 사막 마라톤에서 3,300m가 최고 고도였는데, 그 이상을 넘어가니 몸이 신호를 보냈다.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유라님이 먼저 건네준 약과는 산 위에서 유난히 맛있었다. 가이드와도 나눠 먹으며, 마치 콩 한 쪽을 나누듯 정이 오갔다.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3,700m)에 도착했다. 4일 만에 잡힌 와이파이로 엄마에게서 “살아 있냐”는 문자가 왔다. 그 짧은 한 줄이 이상하게도 마음을 울렸다. 점심으로 마카로니와 볶음국수, 커피를 마셨다. 콜라 한 모금이 몸을 한결 가볍게 했다.


오전 11시쯤 ABC를 향해 다시 길을 나섰다. 걷는 동안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아이들이 가져야 할 건 ‘직관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이 길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많기를 바랐다. 오르는 길에서는 신발을 벗고 어싱을 했다. 히말라야에서 내려오는 1급수의 물이 발을 감싸는 순간, 자연과 내가 하나 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해발 4,130m,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그 자리에서 다 같이 점프를 한 순간이 내 마음에 한 칸을 차지했다. 천천히 가더라도 목표를 잃지 않고 묵묵히 가다 보면 결국 도착하게 된다는 것을 배웠다. 날씨가 어떻든, 비가 오든 안개가 끼든, 그저 걷는 것. 그것이 답이었다.


오후 3시쯤 핫초코를 마시며 또 하나의 ‘점’을 지도 위에 찍었다. 그러나 식당에서 일기를 쓰던 중 머리가 점점 아파오기 시작했다. ‘안 올 것’이라 생각했던 고산병이 나를 찾아왔다. 체력이 좋고 체격이 커도 이건 내 통제 밖의 일이었다. 저녁이 되자 머리가 쥐어짜듯 아프고, 메스꺼움이 심해졌다. 피자와 신라면을 시켰지만 피자 냄새에 헛구역질이 났다. 신라면 국물만 몇 모금 삼켰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가이드 장케와 함께 밖으로 나가 걸었다. 박영석 대장님의 기념비 앞에서 잠시 묵념했다. 그러나 속은 더 불편해졌고, 결국 토하고 말았다. 머리도 더 아팠다. 롯지 식당 한쪽에 깔린 매트에 누워 20분간 찬송을 들으며 주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장케는 “내려가면 괜찮아질 것”이라 했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설산의 일출을 보겠다는 마음 하나로 버티고 있었다. 타이레놀과 멀미약을 먹고 먼저 잠을 청했다.


수빈이 옆에서 도와주고, 챙겨주어 큰 힘이 됐다. 밤 12시, 눈을 떠 화장실로 가던 길에 엄청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안개는 사라지고, 마차푸차레 설산이 눈앞에, 뒤를 돌아보니 안나푸르나 설산이 거대한 실루엣으로 서 있었다.


그 순간 느낀 건 ‘웅장함’이었다. 내 존재가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 그리고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산의 존재감. 산 사람들은 거칠지만 그 안에는 따뜻함이 있다. 힘들 때 서로를 격려하고 진심으로 응원한다. 인간은 한없이 낮은 존재라는 것을 이곳에서 배운다. 나는 지금, 히말라야에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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