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 공동체 안에서 함께 하는 사람
<질문>
나는 본당 공동체에서 누구와 함께 하나요?
그 만남에서 어떤 기쁨을 얻고 있나요?
처음에 질문을 읽으면서 순간 멈칫했다.
요즈음 나는 본당 공동체에 속해있지 않은데...
그리고 만남에서 기쁨을 얻은 적이..?
그렇게 다시 천천히 묵상을 시작했다.
다시 읽어보니 단체가 아닌 본당 공동체였는데...
여전히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있는 내 모습이 부끄럽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본당 활동에 충실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본당 활동에 열심히 참여할 때 주님께 가장 가까이 갈 수 있었던 것 같다.
힘들면 힘든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교만을 누르고 겸손을 배우며
주님을 찾고 주님께 의지할 수 있었다.
결혼 전에는 청소년부 주일학교 교사를 했고, 결혼 후에는 부부 독서,
그리고 첫 영성체 부모반 교리교사 활동을 했다.
사실 본당 활동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에 우리 삶의 축소판이라 생각한다.
단체마다 해야 할 일이 있고, 이왕이면 잘해야 하고, 평가도 따른다.
하지만 봉사자들은 저마다 참여하는 동기가 다르고 추구하는 가치도 다 다르다.
그래서 더욱 '신앙'이라는 이름 아래
나에게는 관대해지고, 남에게는 엄격해지는 것만 같다.
... 성당에 다닌다면서 어떻게 저렇게 입만 열면 험담만 하지?!?!
... 봉사활동을 하는 건지 취미 생활을 하는 건지!?!?
... 능력이 안되면 봉사를 하지 말던지!?!?!
... 그렇게 자기 고집대로 할 거면 밖에서 자기 일을 하세요!?!?!
... 그렇게 믿음이 부족해서야.....
... 여기가 회사인가요? 여기서도 눈치 보고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하는 건가요!?!?!
늘 듣던 다툼의 원인들.
내가 하긴 쉬운데 들으면 너무 화가 나는 얘기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우리는 주님 뜻에 따라 그분이 걸어가신 힘든 가시밭길을
기꺼이 함께 걸어가기 위해 이 곳에 왔음을.
그 길이 결코 빛나는 결과와 명예를 자랑하는
기쁜고 신나는 길이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우리의 만남은 늘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끝이 난다.
바뀌지 않고 변화가 힘든 나 자신이지만
그래도 시작할 때만큼은 오늘은 내가 조금은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기를,
그래서 주님께 한 걸음 더 가까이 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그리고 내 부족함을, 내 미움을 여전히 드러내고 확인한 시간이었기에
더 많은 반성을 통해 내 탓이오를 외치며 끝기도를 한다.
기도 안에서 함께 마음을 나누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비록 부족한 모습이지만 같은 마음으로 주님께 다가가는 모습이
특정한 한 사람이 아닌 공동체에서 만난 모든 분들께 느끼고 배우는 기쁨이다.
전에 신부님께서 ''공동체 감수성'에 관해 말씀해주시면서,
'잃어버린 양의 비유' (마태 18, 12-14)를 들어 이런 질문을 던지신 적이 있다.
1) 내가 만일 ‘한 마리 양’이었다면 그 심정은 어떨까?
2) 내가 만일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목자’라 면 그 심정은 어떨까?
3) 내가 만일 ‘남은 99마리의 양들’이라면 그 심정은 어떨까?
우린 모두 어느 순간 '한 마리 양'이 될 수도, '99마리 양들'이 될 수도,
그리고 찾아 나서는 '목자'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더욱 한결같은 마음이어야 함을 배운다.
그때그때 내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마음으로 사람을 대한다면,
우린 영원히
따뜻한 공동체가 아닌 이기적인 한 개인에 머무를 수밖에 없음을
더 절실히 느낀다.
내가 기쁠 때만, 내가 좋아하는 일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만나는
교회 공동체가 아니라
내가 힘들 때도, 내가 힘든 일도, 내게 힘든 사람도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기 위해
교회가 아닌 나 자신이 먼저 노력하고,
내 힘이 아닌 우리의 힘으로 주님 안에 하나 될 수 있어야 함을
다시 또 배우고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