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일기 2단계 Day 11
더 깊이 만난 하느님
< 질문 >
나는 어디에서 하느님을
더 깊이 만나는가?
지난 10일 동안 기록을 돌아보며
내가 더 민감하게 하느님을
느끼고 체험하는 부분을 나열해주세요.
하나,
좋아하는 많은 문화콘텐츠 영역 안에서 하느님을 만납니다. 그것이 더 특별한 것은 이를 통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다른 사람들의 삶, 생각을 알고 그 안에서 나만의 하느님에서 벗어나 더 크신 하느님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내 작은 경험과 생각만으로는 감히 느껴보지 못할 기쁨, 감당하지 못할 고통을 배우고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지난 금요일에 본 드라마 <허쉬>의 대사가 내내 가슴에 남습니다. 정규직 전환에 실패한 한 인턴사원의 자살에 대한 주인공의 내레이션입니다.
‘수연의 죽음은 결국 자살이 맞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수연의 죽음을 종용했거나 방조했다는 점에서 지수의 말처럼 타살과 다름없었다고. 만약 동기이자 사장의 조카였던 규태가 수연에게 미안하다고 위로의 말 한마디라도 전했다면. 자신이 만약 그 순간 달려가 당직을 바꿔줬더라면. 만약 동기인 지수가 수연이를 혼자 남겨두지 않았더라면. 만약 선배 이기자가 당직을 맡기지 않았더라면. 만약 국장이 수연을 무시하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사장 조카 들러리를 위한 인턴 채용 자체가 없었더라면 수연이는 그들과 작별하지 않았을까. 한 번만 더 안녕한지 물어봤더라면. 한 명만 더 함께 버텨보자고 손을 내밀었다면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아니라 모두의 무관심이 수연이를 벼랑 끝으로 몰았던 것은 아닐까. 아무튼 남겨진 사람들은 이제 진실과 만날 준비를 해야 했다고.’
나는 수연이처럼 이 시대를 살아가는 20대의 간절한 취준생이 아니기에, 그들의 소식을 그저 미디어를 통해서 접할 뿐입니다. 그런 나에게 드라마 속 수연이도 되고, 인턴 동기도 되고, 신문사 선배도 되고, 국장도 되고, 사장도 되어 생각하게 해 준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간 속에 하느님께서 내게 묻고 계십니다. 이 아픈 청춘들에게 우리는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지. 그들이 살고 있는 이 힘든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물론 이 번에도 정답은 알려주시지 않았습니다. 그저 애쓰라고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둘.
공동체 안에서 만난 한 이웃의 삶을 통해 하느님을 만납니다. 그분이 해주신 힘든 하지만 담담한 말씀 속에서 깊은 감동을 느끼며 어떻게 하느님을 따라야 하는지 배웠습니다.
“... 저도 잘 모르지만, 제가 생각하는 그리스도 신자는 제 앞에 주어진 일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내 몫으로 행하는 거라 생각합니다. 저도 너무 힘들죠. 그래서 너무 힘들지만 견딜 힘을 달라고 주님께 늘 기도합니다. 그러다 보면 또 견뎌지고 또 지나가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그런 삶에 대해 안쓰러우면서도 '왜 저렇게 살까. 왜 저렇게 밖에 못살까. 저렇게 산다고 누가 알아주나. 그 하느님은 도대체 뭔데.' 하며 무시하고 비웃기도 할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에서 보면 그의 삶은 그저 고생이고 아무것도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뜻으로 살아가는 그분을 보며 감동과 존경을 느낍니다. 그분의 영혼은 늘 맑은 아름다움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안진 님의 '지란지교를 꿈꾸며'에 나오는 것처럼.
'... 천 년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는 오동나무처럼,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자유로운 제 모습을 잃지 않고 살고자 애쓰며 서로 격려하리라. 우리의 손이 비록 작고 여리나 서로를 버티어 주는 기둥이 될 것이며. 우리의 눈에 핏발이 서더라도 총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며, 눈빛이 흐리고 시력이 어두워질수록 서로를 살펴주는 불빛이 되어주리라... 세월이 흐르거든 묻힌 자리에서 더 고운 품종의 지란이 돋아 피어 맑고 높은 향기로 다시 만나 지리라.'
저도 하느님을 만나며 세상 떠나는 날까지 아니 떠난 후에라도 오래도록 그리스도의 향기를 지닌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셋.
언제나 성경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 묻고 대화하고 답을 얻고자 노력합니다. 머리로 알던 하느님을 가슴으로 만나기 위해 성경 또한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읽기 위해 노력합니다. 성서에서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때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왜 정답을 알려주시는 대신 그토록 애매한 비유로 매번 말씀하셨는지... 읽고 생각하고 묵상해 봅니다. 제가 주님을 알고 만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을 알고 만남으로써 제 삶이 예수님을 뒤따르는 삶으로 변화하는 것이 진짜 중요함을 배웁니다. 주님의 은총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인가를 안다는 것은 바오로 사도의 고백처럼 모든 사람에게 모두가 되어 이를 전하고 내어주고 더 크게 자라도록 할 수 있어야 함을 다시 배웁니다.
지난 열흘간 어느 때보다 가까이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여느 때 같으면 생각 없이 지나쳤을 많은 시간, 많은 장소에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단계 Day 일기 2단계 Day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