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일기 2단계 Day 10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기까지
<질문>
머리로 아는 하느님이
가슴으로 내려오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시나요?
머리로 알고 이해하는 하느님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성경공부를 하고, 교리를 배우며 알게 된 하느님의 가르침은 특별히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가르침이 가슴으로 내려와 내 삶에 녹아들기까지는 왜 이리 어려울까요? 김수환 추기경님도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오는 데 70년이 걸렸다고 하셨습니다. 하물며 저는 아직 한 참 멀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은 편해집니다.
그래도 해야 한다고, 애써야 한다고 늘 다짐은 해봅니다. 매일 애를 써도 역시나 금세 제자리입니다. 그럼에도 다시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해봅니다. 아침에 눈을 떠 잠들 때까지 사랑을 실천하는 길은 늘 신나고 설레는 아름다운 길만은 아닙니다. 내가 기분이 좋아 누군가를 기쁘게 해 주고, 내가 여유가 있어 누군가를 도와주고, 내가 시간이 남아 누군가에게 시간을 내어주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실상 나의 하루는 내가 많이 힘들어도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어야 하고, 여유가 없어도 더 힘든 사람을 도와줘야 하고, 시간에 쫓길 때도 누군가에게 시간을 내줘야 할 때가 더 많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루카 10,27)
살다 보니 가끔 좋은 날도 있지만 힘든 날이 더 많습니다. 매일 신나고 설레는 순간보다 지치고 고단할 때가 더 많습니다. 싫다고, 귀찮다고, 힘들다고.... 자꾸 피하고 끊고 단절하다 보면 결국 혼자 남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만큼 누군가 나를 기쁘게 해 주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고, 누군가의 시간이 필요할 때가 꼭 오기 마렵니다. 그때 저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말씀이 바로 이거구나. 이렇게 내가 힘들 때, 도움이 필요할 때 나도 누군가에게 용기 있게 도움을 청할 수 있도록 내게도 그런 기회를 주신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마태오 7,12)
사마리아인은 다른 사람을 보고 그에게 다가가 그를 돌보고 그를 위해 돈을 썼습니다. 그를 위해 자신의 시간을 내어 준 것입니다. 그도 아마 그날 자신의 계획도 있고,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만났을 때 모든 것을 미뤘습니다. 그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그럼에도 그렇게 한 것입니다. 우리는 돌봐주어야 할 사람이 지인이거나 자신이 신세 진 사람일 때조차, 내가 힘들고 내가 내키지 않을 때는 외면하고 무관심해집니다. 자신을 희생해야 할 어떤 이유나 동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매일마다 선택의 과정을 겪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될 것인지 아니면 나만의 행복과 안락함을 위한 신앙인이 될 것인지를 택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 순간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만 존재합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돌보는 사람과 그냥 지나친 사람입니다. 매 순간 내 안에는 내적 갈등이 일어납니다. 사실 그냥 지나친다 하여 나에게 뭐라 할 사람은 없습니다. 당사자가 아닌 이상 우린 타인의 친절과 선행에 그리 큰 관심도 없습니다. 나 자신조차 나를 위로합니다. '지금은 내가 할 일도 많고, 너무 피곤하고, 또 다른 때에는 봉사도 많이 했으니까..'등등의 이유로 나 자신을 합리화합니다. 그리고 돌아서서 '그를 힘들게 한 사람이나 힘든 그를 도와주지 않는 나나 뭐가 다르지?'라는 생각이 들면 갑자기 두렵습니다. 그리고 '뭘 또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그래' 하며 서둘러 생각을 접습니다. 지나가다 반대편으로 지나간 사제나 그를 보고 다른 쪽으로 지나쳐 간 레위인처럼 말입니다.
쓰고 보니 <생각 과정>이 정리가 됩니다. 선택의 순간, 내적 갈등을 통해 그리스도인이 되거나 나만의 신앙인이 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선택한 후 도움의 과정을 경험합니다. 그동안 몸도 마음도 지치고 피곤하고 힘듭니다. 나의 힘듦을 내색하지 않고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도와줍니다. 상대방은 내게 엄청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며 어려움을 이겨냅니다. 어떤 때는 나의 힘듦을 엄청 생색내며 투덜거리고 도와주기도 합니다, 상대방은 도움을 받고도 비참해지겠죠.
한편, 나만의 신앙인이 되기로 선택하면 힘든 그 사람을 외면하고 무관심해집니다. 좀 찝찝하지만 이번엔 내 몫이 아니라 생각하며 합리화합니다. 시간이 흐르면 잊고 편해집니다. 그리고 습관이 되면 이젠 정말 생각조차 안 하게 됩니다. 아니면 시간이 흐를수록 이를 기억하고 두려움도 느끼며 이 모습을 반성하게 됩니다.
머리로 아는 하느님이 가슴으로 내려오기 위해서 '생각하고, 애쓰고, 행동하기'위해 노력합니다. 매 순간 내적 갈등을 겪으면서 위의 과정들을 반복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힘든 상황에 상관없이, 나의 내면이 평화로우면 그것이 진짜 평화일까? 진짜 행복일까?'하고 나 자신에게 묻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지 못했는데 우리 아이만 좋은 대학에 가면 행복한가? 다른 아이들은 취업에 실패하여 힘들어하는데 우리 아이만 취업하면 행복한가? 코로나로 인해 다들 힘들어하는데 우리 일만 잘되면 행복한가? 다른 사람은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데 나만 승진하면 행복한가? 다른 사람은 죽어라 일하며 빚 갚기 바쁜데, 나만 부동산과 주식으로 돈이 저절로 벌리면 행복한가?
살면서 나도 그랬던 것은 아닌지 겁이 덜컥 납니다. 기도하고, 성찰하고, 노력하면서 주님께로 가는 좁은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노력해하고 싶습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루카 1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