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어린 시절부터 익숙하게 들려오던 숨바꼭질 소리는 여전히 마음 한구석을 간질인다. 엄마는 해안가 모래밭에 몸을 낮춘다. 그 모습이 익숙하면서도 편안하다. 모래 속에서 우러나오는 기운이 배어 있어서일까. 호미를 들고 모래를 슥슥 긁어낸다. 손끝에 닿는 작은 진동에 눈빛이 반짝인다. 마치 보물을 찾는 아이처럼 들뜬 표정이다
"엄마, 추운데 그만 들어가자"라고 말해도 웃으며 고개를 저을 뿐이다. "조금만 더."
그리고 다시 모래 속에 시선을 고정한다.
호미 끝에 걸리는 작은 무언가를 조심스레 집어올린다. 어느새 엄마의 발치에 알록달록한 조개가 쌓인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은 바닷속 보물 상자처럼 눈부시다. 마치 그 안에 감춰졌던 시간이 다시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엄마는 다섯 남매 중 맏이였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생계를 위해 일터로 향했다. 남겨진 동생들의 부모 역할은 오롯이 엄마 몫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어린 동생들을 보살피고, 밥을 짓고, 재잘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보냈다.
꿈 많던 소녀였지만, 대학 진학은 엄마의 삶에 허락되지 않은 사치였다. 대신 10살 터울 나는 어린 동생들을 위해 길을 열어주는 큰딸로 살아야 했다. 동생들을 무사히 대학까지 보냈지만 정작 엄마는 대학이라는 꿈에 다가가지 못했다. 동생들이 “누나”,“언니”라고 따르는 동안, 어린 소녀였던 엄마는 언제나 가장 어른스러워야 했다.
엄마에게 바닷가에서 조개를 캐는 일은 쉼이었다. 육아와 살림이라는 무거운 짐을 잠시나마 내려놓고 부드러운 모래 위를 맨발로 걷는 시간. 조개를 찾는 순간만큼은 숨죽이며 작은 기쁨을 찾아내는 놀이 같았다. 숨어 있는 조개를 발견할 때마다 엄마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어쩌면 그 작은 조개껍데기 속에는 엄마가 몰래 품었던 소녀의 시간이 숨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맨발로 모래를 밟으며, 호미를 들고 다시 보물찾기하듯 모래를 헤집는다. 그 순간, 엄마는 바닷바람에 실려 온 옛 기억을 만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릴 적 해안가에서 숨어 있던 기쁨들이 반짝이는 조개껍데기 속에 담겨 있는 듯하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엄마는 여전히 숨바꼭질을 즐기고 있다.
추억을 찾는 일은 즐겁다.
그 속에는 알록달록 보물이 숨어 있다.